서울사진축제 직접 가보니

사진마을 2016. 1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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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감흥 없고 의미 나열 반복

실험은 있으나 사진은 없어...

 

                                                           누구를 위한 사진인가 바로가기


kys08.JPG » 한 관객이 송호철의 동영상작품을 보고 있다

 

 

요 며칠 겨울처럼 추웠는데 오늘은 가을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사진전시장 가기 좋은 날씨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 다녀왔다. 보도자료를 통해 대략 짐작은 하고 갔지만 몇 가지 새로 발견하는, 적지 않은 득이 있었다. 먼저 지난번 기사에서 내가 주장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하게 해두자. 나는 지나친 편향성을 짚었고 이주(디아스포라)라는 전체 주제와 사진이 겉돈다는 이야길 했다.


 편향성이란 것은 사진이 개척해나가는 여러 가지 길에 대한 방법의 편향성을 말한 것이다. 설치나 빔 투사나 영상이나 합성 등의 방법도 있지만 그냥 찍는 스트레이트도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치졸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관객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할 여지를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할 뿐이다. 그런데 이번 서울사진축제에선 다양성의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졌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오늘 전시를 꼼꼼히 보고 왔으니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중심으로 다시 논평을 한다. 

 

kys02.JPG » 고정남 코너의 작품들. 이상 시집과 시 동판 등이 액자로 걸려있다.  
 가서 보니 고정남은 일제 강점기 한국화가들의 유명작을 차용하여 재해석했다고 적혀있었다. 쉽게 말해 지금 모델을 세워 고희동, 김종태, 이쾌대의 작품의 내용을 설정하여 따라 찍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뜻 밖에 이상시인의 시와 시집 등을 액자에 넣어서 전시하고 있었다. 그 액자 옆에는 고정남의 작품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상시인의 삼중당 문고판 시집이 어떻게 고정남의 작품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목포, 군산, 연천 등을 스트레이트로 찍은 사진이 몇 장 걸려있는데 어떤 상징성을 찾기 어려웠다. 작품 설명을 열심히 읽어도 전시장에 걸려있는 고정남의 작품들 간에 연결성이 없었다. 이상의 얼굴 그림, 이상의 시집(재해석도 아니고 그냥 시집이다. 이것이 재해석이라면 액자에 넣고 전시장에 걸었다는 행위가 재해석이란 뜻인데 마르셀 뒤상의 변기를 떠올렸다면 과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군산의 눈 쌓인 대나무가 무슨 연결성이 있는가? 글에 의존하지 않고 그냥 사진만 봐서는 절대로 전체를 읽어낼 수가 없다. 


김규식은 가서 보니 SNS를 이용한 작업이었다. 작은 사진을 수십 개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뭘 하는지 이해가 되었으나 별로 동감은 되질 않았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구나…. 라는 정도다. 김상돈은 스트레이트로 찍은 사진은 맞았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불상이라든가 동네 담벼락에 그려진 무릉도원(?)이라든가 하는 사진은 부조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사진을 왜 그렇게 허술하게 찍었는지 정말 궁금했다. 스트레이트로 찍는다는 것이 그냥, 막 찍는다는 뜻이 아니란 점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부조화를 찍으면서도 아주 정교하고 성의가 있는 김승구의 시티라이프가 퍼뜩 떠올랐다. http://photovil.hani.co.kr/502839


 김태동의 딥틱은 한인타운의 풍경과 인물을 붙였다. 뭔가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겼기 때문에 관객에 따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겠다. 김홍식의 렌티큘러는 가서 보니 책받침이었다. 마침 전시장에서 정규도슨트의 설명 시간과 겹쳤는데 그 도슨트가 썼던 표현이 책받침이었다. 예전에 책받침이나 스티커를 보면 각도에 따라 다른 상이 보이는 시각적 트릭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발소에도 그런 그림을 붙이곤 했었다. 어쨌든 사진을 여러 장 겹쳐서 입체적으로 보이게 했다는데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사진이란 도슨트의 설명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참 편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소현은 영상 작업인데 한강의 괴물을 인형으로 만들어 그 인형이 꿈틀거리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상영하고 있었다. 사진을 이용한 작업이다. 사진을 여러 장 빨리 보여주는 것이 영상이니 그렇다.

 

kys01.JPG

kys03.JPG » 김규식의 <더 텍사스프로젝트> 홍등가의 침실을 재현해놓았다.

 

kys04.JPG » 박형렬 작품의 부분, 저게 사람이었구나.
 박현두의 작품은 “합성이 아니다”라고 도슨트가 강조했다. 합성이 아니고 모델을 불러서 연출했다고 하다. 박형렬은 가서 보니 행위예술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었다. 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사람이었다. 그냥 보도자료만 봐서는 알 수 없었으니 전시장에 가서 보길 잘했다. 깜찍한 행위예술이었다. 귀여웠는데 단박에 의정부고 졸업사진들이 떠올랐다. 그 학생들에게 시키면 아마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다.
 성지연은 스트레이트 사진 맞다. 아주 재미없는 그 흔한 유형학사진이다. 게다가 뒷모습이고 게다가 장소성마저 일부러 없앴다고 하니 볼 것이 없어졌다. 송호철은 예전에 다른 전시장에서도 본 적이 있는 빔 작업이다. 문래동. 안옥현도 유형학이긴 하지만 얼굴도 보이고 장소도 있어서 볼 것도 있다. 그러나 유형학 사진에서 얼굴들은 한결같이 왜 그렇게 뚱하거나 멍하거나 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변순철의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유형학 ‘전국노래자랑’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http://photovil.hani.co.kr/390261
 양철모는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호남에서 올라왔다는 어떤 분의 흑백사진(이것은 양철모 작가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이 두어 장 있고 그분이 서울서 산, 살고 있는, 살았던 동네 사진이 컬러로 몇 장 있다. 무슨 이야길 하려는지 이해가 되고 의미도 있어 보이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일부러 허술하게 보이게 찍었다고 주장할 것 같은데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서울사진축제의 21명 작가 작품이 그랬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강력하고 의미 있고 진지하고 시대적인데 더 이상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게다가 의미는 주로 작품해설에 적힌 글을 읽어야 읽힐 뿐 사진을 봐선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전반적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많다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실험만 있고 완성도가 없다.
 
 옥정호는 본인이 저 의상을 입고 자신을 촬영했다고 한다. 힘들었겠다. 원범식의 디지털 콜라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로 합성했다. 작가의 상상에서 가능한 것을 억지로 재현하다 보니 억지스럽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아이디어가 실현되다가 만 느낌이 들었다. 유비호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소복 입은 여인네가 아주 서서히 움직이는데 정가가 구슬프다 못해 괴기하게 들려서 다른 사진을 보는 내내 거슬렸다. 이런 작업은 방을 따로 둬서 분리시켜야 하는데 왜 방치했는지 모르겠다. 임노아도 동영상인데 무분별한 영어식 표기의 간판문화에 대한 메시지라고 한다. 설명을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이런 사진문화가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사진문화란 뭣이냐 하면 이렇다. 작업을 했는데 작업의 본령인 사진에선 아무런 호소력도 내용도 충격도 없다. 그 옆에 있는 작가노트나 작업설명이나 서문 같은 글을 읽어야 이해가 된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텍스트 없이 이미지만 가지고 보여줄 실력이 없다 보니 그런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사진문화가 번져나오는지 궁금하다.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으로 가기 위해 징검다리 삼아 썼던 ‘이미지와 텍스트’를 참고하길 바란다. 사진의 가치는 코드화되지 않은 이미지 속에 있다. 사진을 한다면서 잔뜩 코드를 끌고 와서 사진을 본령을 저버리는 것은 사진작업이 아니다.
 
 정지현은 대형사진이라 현장에서 보는 맛이 있었다. 거기까지. 조이경은 영화를 만들었다. ‘바람 불어 좋은날’이라 이장호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따 왔다고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솔직히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보고 나왔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다. 조준용은 부친께서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찍은(찍힌) 사진을 빔으로 만들어 경부고속도로에 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옮겼다. 사진은 사진이다. 월남전에서 벌어온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한성필은 그냥 사진으로 보인다. 황규태는 여기에 왜 있지? 전시장 가운데 공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여 툭툭 튀어나온 설치형태의 옛날 사진 전시를 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스트레이트 사진이 별로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스트레이트 사진이 더 낫다는 뜻이 아니다.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고 실험적인 사진(사진이 아닌 영상작업)으로 넘쳐난다. 아이디어가 참신한 것이 많이 보였으나 그 아이디어가 무르익지 못한 채 그냥 전시장에 나왔다. 이곳은 서울사진축제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다. 와서 보길 잘했다. 내년엔 분명히 ‘서울아트축제’로 이름을 바꿀 것을 권한다. 사진전공자들이 사진을 이용해 실험적인 방식을 선보이는 무대 맞다. 그러므로 사진전공자들이나 사진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가서 볼 것이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어느 분이 쪽지를 보내 질문해왔다. 그래서 답이 아니라 나의 의견(Opinion)을 보냈다.
 
 Q: 사진전공자와 사진을 보는 관객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을만한 사진이 존재할까요?
 전공자가 아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어디로 찍으러 갈지를 고민하고 전공자들은 어떻게 찍을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이미 이런 고민의 명제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둘을 만족할 만한 전시는 주로 다큐사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O: 사진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겠지요. 또한 마음가짐도 달라야하지 않을까요? 사진계를 선도해나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진전공자들은 사진 관객을 위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관객 없는 사진계는 공염불이자 사상누각입니다. 관객이 외면하는 사진전은 필요가 없습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쓰면서 왜 서울사진축제를 열까요?
 사진전공자와 사진을 보는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진이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전공자들이 자신만을 위한 사진을 찍는다면 그것은 사진을 올바로 전공한다고 볼 수 없어요. 다큐멘터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고 관객들은 그 다양성에서 자신의 취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서울사진축제는 너무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을 하는 것입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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