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타고 80년대로 '빠꾸 오라이'

사진마을 2018. 08. 23
조회수 4795 추천수 0

kyc04.jpg » 90년 5월 수색역


사진가 김용철 35년만에 첫 사진집

1988년부터 1998년까지 '경의선'

통기타, 삶은 계란, 기차길 옆 오막살이



사진가 김용철의 사진집 ‘경의선’(눈빛, 2만 원)이 나왔다. 부제를 보면 이 책의 내용을 약간 짐작할 수 있다. ‘추억 속으로 간 기차, 1988-1998’
 경의선이란 낱말이 귀에 익지 않는다면 다른 이름 하나를 던져 보겠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기억할 것이다. 백마역 화사랑. 화사랑 옆에도 몇 개의 주점이 있었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 ‘썩은 사과’…. 사진가 김용철의 작가노트를 보니 화사랑과 더불어 ‘숲 속의 섬’이 언급되어있는데 거긴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것인지 세월이 내 기억을 묻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사진집은 김용철이 1988년에 (나중에 부인이 될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되면서 신촌 기차역을 처음 알게 되었고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화전, 강매, 능곡, 파주, 백마 같은 작은 역들을 다니면서 1998년까지 찍은 사진들로 만들어졌다. 경의선을 문자 그대로 보면 서울역에서 신의주역까지를 잇는 기찻길이지만 해방이 되면서 개성에서 끊어지고 한국전쟁 이후 문산에서 끊어지게 되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추이에 따라 다시 이어진다면 이제 서울역에서 파리뿐 아니라 런던까지 연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22일 오후에 김용철 사진가와 전화로 인터뷰를 하다가 그의 사진 중에서 ‘경의선’ 외 다른 것도 보고 싶어서 물었더니 엘마의 사진이야기를 안내했다. 그래서 “블로그에 가서 사진을 보고 다시 통화하자”고 끊었다. 다른 사진도 봤고 23일 오전에 다시 통화를 이었다.


kyc01.jpg » 92년 9월 경의선  

kyc02.jpg » 91년 9월 강매역

kyc05.jpg » 90년 5월 경의선

kyc07.jpg » 89년 4월 백마역

kyc03.jpg » 92년 4월 운정


 -사진가 생활 35년 만에 처음으로 사진집이 나왔다. 기분이 어떤가? 어떻게 눈빛에서 책을 내게 되었는가?
 “자기 이름을 건 사진집이 나온다는 것은 사진가의 꿈이다. 지난해 여름에 눈빛에 사진을 보내고 의사를 타진했다. 나는 누구이며 내 작업 중에 경의선이 있다고 이야길 했다. 그러고 보니 (책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이규상 대표가 그 사이에 내 사진을 충분히 지켜보신 모양이다.”
 
 -이번 책 ‘경의선’은 어떤 계기로 찍게 되었나?
 “87년에 군에서 제대했다. 88년에 연애를 시작하면서 처음엔 신촌역을 먼저 알게 되었고 경의선이 뭔지도 몰랐다. 신촌역 자체가 참으로 신기했다. 무슨 영화 세트장 같기도 하고 예스러웠다. 시골…. 역 느낌이 났다. 그리곤 경의선을 타게 되었다. 이윽고 복학했고 사진작업으로 경의선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젊은 날이었고 연애하던 시절이니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신촌역이 아니라 서울역에서도 경의선을 탔다. 문산까지 가는 경의선은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면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녔다. 그 덕분에, 혹은 그 바람에 중간 중간 마음에 드는 아무역에서 내릴 수 있었고 한 시간 만에 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리까지 촬영하러 갈 수 있었다.  일산에 운정에 신도시가 들어서는 과정도 쭉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 책을 받고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이 화사랑이었다. 없더라?
 “이 책은 3부로 나눴다. 하나는 객차 안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철로주변이며 마지막은 역사 주변이다. 화사랑도 있긴 있는데 빠졌다. 사실 굉장히 많이 찍었는데 너무 많이 찍은 게 탈이었다. 필름으로 찍으면 쌓아두고 정리를 못 했다. 2008년에 스캐너를 사서 정리하고 나머지를 버렸다. 그때 경의선 사진도 대거 버렸다. 지금 생각을 하니 좀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그때 큰 마음 먹고 스캔을 해놓지 않았다면 여전히 필름무더기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블로그에 가보니 꽃 사진도 있고 다른 작업도 있더라.
 “‘메아리’라고 이름 붙인 연작이 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울하기도 하고……. 벽에다 걸고 싶은 사진은 아니다 싶었다. 어느 호텔에 갔더니 로비와 벽에 그림이나 사진이 있었다. ‘최대한 예쁘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꽃 작업을 한다.”
 
 -표지 사진이 혹시 나중에 부인이 되는 그분인가?
 “맞다. 사실 아내 덕분에 경의선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니 한 컷이라도 포함하고 싶었으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사진을 넘기고 나서 선택은 철저하게 출판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어느날 이규상 대표가 표지사진으로 선택했다면서 ‘이분이 내가 생각하는 그분인가?’ 묻더라. 보니 이규상 대표가 아내 사진을 표지로 골라놓았더라. 책 안에도 두 컷이 들어있는데 자연스럽게 찍혔다.”
 
 -앞으로는 어떤 사진을 할 것인가?
 “매일은 아니어도 사진 작업할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이번에 반도갤러리에서 경의선으로 전시를 했었는데 연세 있는 분이 카메라를 들고 구경오셨더라. 부러웠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진 작업을 계속 하면 좋겠다. 나의 블로그에는 ‘메아리’ 연작이 가장 많이 있는데 이번에 전시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메아리’는 혼자 가는 길이라면 ‘경의선’은 공감대가 형성이 되는 작업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경의선을 타고 한번이라도 그런 작은 역까지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찍은 ‘경의선’ 사진에 공감하더라. ‘메아리’는 서서히 마무리를 하고 ‘눈에 보이는’ 새로운 소재거리를 찾으려고 한다.”
 
 전화를 마치고 다시 사진집 ‘경의선’을 읽었다. 경의선을 타고 백마역에 가본 사람이 아니라 그 옛날 비둘기호를 타봤거나 지금의 무궁화호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이 ‘경의선’에 빠져들 것이다. 옛날을 찍은 사진은 이래서 위험한 것인가?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경의선> 작가의 말

 서울역에서 출발해 문산역까지 52.5km를 달리는 기차다. 이름대로라면 서울역에서 신의주까지 503.9km를 달려야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종착역은 문산이다.
 세월이 흘러 경의선이 달리던 일산, 파주에는 신도시가 생겼고 정차역이 늘어났다. 기차도, 역사도, 주변 환경도 현대화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 가슴엔 옛 경의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애 시절, 아내는 고양시 행신동에 살았고, 경의선 신촌역 부근에서 일했다. 우리는 종종 신촌역에서 만나곤 했다. 내가 먼저 도착할 때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름하고 어스름한 대합실에서는 색 바랜 노선표와 요금표, 화전, 강매, 능곡, 백마, 금촌, 파주, 문산 같은 낯선 지명을 훑어보았다.
 보따리를 이고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백마역으로 데이트 가는 연인들, 휴가 나온 군인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합실을 차지하고, 역무원은 승차권 귀퉁이에 펀치로 구멍을 내고 있었다. TV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신촌역 대합실로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어디로든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칠이 벗겨진 대합실 창틀 너kyc001.jpg » 경의선 표지머 기차와 선로는 정겨웠고 기차는 허름했다. 두껍게 덧칠해진 페인트는 그마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녹이 슬었고, 케케묵은 냄새마저 풍겼지만 나는 왠지 싫지 않았다.
 경의선에 오르기만 하면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덜커덩덜커덩 기차 특유의 소음을 들으며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객차 연결 통로에서 담배를 피우고, 난간에 매달려 바람을 맞고, ‘스포츠서울’의 만화 ‘발바리의 추억’을 보고, 캔 맥주를 마시며 큰소리로 얘기를 나눴다. 이 객차 저 객차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우는 아기를 달래는 젊은 엄마, 5일장에서 손주에게 줄 선물을 손에 쥔 할머니, 통기타를 든 군인, 바짝 달라붙은 연인들이 내 주변 자리를 차지했다. 가끔은 덩치 큰 미군들도 볼 수 있었다.
 아마 7-80년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라면 백마역의 ‘화사랑’ ‘숲 속의 섬’ 등을 기억할 것이다. 달달한 연애의 장소이자 손꼽아 기다렸던 휴가를 즐기는 장소였다. 때로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이곳에 모였다. 경의선은 호박, 고추, 깻잎을 담은 보따리를 장터로 나르는 아낙네의 발이자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발이었다.
 나는 백마역에서 연애를 하고, 경의선 옆 행신동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경의선을 타고 출퇴근을 했다. 경의선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나는 지금도 경의선을 타고 여행을 한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까지 가고 싶다. 북한 사람들의 달달한 사랑과 사람 사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2018. 6  김용철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눈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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