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더불어 책이 숨쉰다

사진마을 2018. 07. 10
조회수 3532 추천수 1


사진책만으로도 1만여 권 숲과 더불어 책이 숨쉰다


[고흥 폐교 빌려 도서관 연 최종규 씨]


본업은 사전 집필가이다 

펴낸 책 33권 중 절반이 우리말 관련

 

고등학생 때부터 헌책방 드나들다

대학 때 우리말 공부 위해 본격 발길

 

한 선배가 권한 사진집 보고 

‘글보다 사진 한 장’ 가치 깨달아

 

인천에 사진책도서관 연 지 4년만에

아이 사람답게 키우려 찾은 곳이 고흥

 

폐교 빌려 교실과 복도에 빼곡히 

사진 외 인문, 만화 등 트럭 10대 분량

 

귀한 책 더 많은 사람들 볼 수 있게

읍내에 2호 도서관 여는 게 목표


cjg05.jpg » '사전 짓는 책숲집, 책노래' 내부



도서관 앞마당엔 아무런 손길이 닿지 않은 풀들이 무성하고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등이 하늘하늘 날아다니며 꽃에서 꿀을 빨고 있었다. 이곳은 한국에서 사진책이 가장 많은 도서관이다. 어림잡아 1만 권 이상의 사진책이 있는 그 도서관의 이름은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다. 국립도 아니며 대학교 소속도 아니고 대기업의 소유도 아니다. 서울에 있지 않다. 도서관지기는 최종규(43·사전집필가)씨다. 지난 5일 전남 고흥군 도화면 문안길 220에 있는 그 도서관을 찾아가 최 씨를 만났다.
 최 씨가 고흥의 폐교 흥양초등학교를 빌려서 도서관을 꾸린 것은 2011년이었으나 그때가 시작은 아니었다. 2003년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2007년에 이오덕 선생의 유고 정리를 마친 최 씨는 그해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동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큰 아이가 태어났고 부부가 뜻을 모았다. “아이를 시골에서 사람답게 자라도록 하자” 지도를 놓고 석 달을 연구했다. 경남과 전남에 있는 핵발전소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났을 때 대피반경, 골프장, 공장 등 위해시설을 피할 것을 따져보니 고흥만큼 아름다운 곳은 또 있겠지만 나머지 조건은 고흥이 최고였다.


지도 펴놓고 석 달간 샅샅이 훓어

5톤 트럭 다섯 대 분량의 책을 고흥으로 옮겼다. 초등학교 교실 세 칸과 복도에 책꽂이를 놓고 빼곡하게 책을 채웠다. 사진책 뿐만 아니라 문학, 인문, 환경, 교육, 어린이, 만화, 그림책들도 한 식구가 되었다. 그 후로도 날마다, 해마다 책이 늘어났는데 현재 몇 권인지 세어볼 수도 없고 세어본 적도 없는데 만약 지금 이사한다면 처음의 두 배인 트럭 열 대 분량이 되었다는 것은 눈에 보인다고 한다. 
  최 씨가 지금까지 지은 책은 모두 33권에 이른다. 그 중 절반 넘는 것이 우리말 관련이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3-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등. 올해 안으로 나올 책만 해도 ‘우리말 동시 사전-형용사 편’,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4-공문서 즐겁게 쓰기’ 등 7권이 예정되어 있다. 스스로 사전집필가라고 말하는 최 씨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진책을 포함한 책들을 모아 도서관을 열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헌책방에 다니기 시작한 최 씨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우리말 공부를 위해 옛날 사전을 찾으려고 헌책방을 본격적으로 들락거렸다. 기억나는 책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오윤의 <칼춤> 화집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가 누군지 몰랐고 살 돈도 없어 책을 집었다가 놨다. 헌책방엔 불문율이 있다.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다. 다른 손님 한 분이 자기가 사도 좋겠는지 물었다. 돈이 없기도 하고 “저는 눈으로 봤으니 아저씨가 가져가세요”라고 했다. 그 후로 다시는 그 책을 볼 수가 없었다.


cjg03.JPG » '사전 짓는 책숲집, 책노래' 입구


처음 낸 책이 '모든 책은 헌책이다'

  또 한 번은 헌책방에서 어느 선배가 권한 사진집이었다. 사전을 만들 때도 이미지를 알아야 한다면서 사진을 보라며 추천했다. 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는 미국의 기독교 집단인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을 담은 책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사전과 사진이 연결되었다. 살짝 충격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아무리 글로 잘 설명해도 사진 한 장으로 보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그 사진책을 본 것이 나중에 도서관 주제의 큰 기틀이 되었다.
  최 씨는 2004년에 첫 책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게 된다. 그는 “사전 집필을 본업으로 생각하는 나는 언제나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았다. 사회가 헌책방을 무시하는 기운이 있었다. 헌책방은 수준이 낮거나 케케묵은 곳이 아니라 오래된 책에서 새로운 값어치를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쉼터다. 그런 내용이다”라고 했다. 당시 그 책에 들어갈 헌책방 사진을 찾으려 했으나 헌책방은 사진가들의 주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본인이 1998년부터 찍었던 헌책방 사진으로 그 책을 꾸렸다. 2000년부터 헌책방에서 헌책방사진전을 수십 차례 열었다. 짧아도 20년 단골인 헌책방 사장님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다. 올해 7월 초에 ‘내가 사랑한 사진책’이 눈빛에서 나왔다. 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출판사 쪽에서 독자들이 한 장의 사진도 없이 오직 글로만 상상해서 사진과 책과 삶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도서관의 특이한 이름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에 대해 최 씨는 “내가 사전집필가다. 인천과 달리 고흥은 숲이 있다. 숲하고 책을 같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그림책 마을을 보면 깊은 시골에 있다. 우리 도서관에 와서 책을 한 권도 안 봐도 된다. 책이 숲에서 나왔기 때문에 새소리, 바람소리 느끼면서 눈 감고 쉬면서 숲을 느끼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도서관의 사진책 책꽂이에 만화책도 섞여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그림과 사진과 만화가 다를 바가 없어 서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최 씨는 “데즈카 오사무가 1950년대에 만화를 그리면서 영화기법을 썼다. 한쪽 페이지를 통째로 한 컷으로 채우면서 클로즈업을 하거나 인물을 하나만 넣거나. 획기적이었다. 만화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이다. 일본에선 사진가가 만화책을 보고 배우고 만화가들이 사진에서 영감을 얻는다. 사진 찍는 사람들은 그림책과 만화책을 꼭 같이 봐야 눈이 트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고흥읍의 비어있는 건물에 2호 도서관을 여는 게 목표다. 도화면 동백마을은 고흥에서도 둘레에 있어 교통이 불편해 많은 사람들이 찾기 힘들다. 이곳 도서관의 귀한 책들을 읍내로 들고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은 게 꿈이다.
  최 씨는 인천에서 태어나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통번역 공부를 하려고 1994년 한국외대 네덜란드어과(당시 화란어과)에 들어갔는데 대접에 소주를 가득 부어 마시게 하는 신입생 신고식에 질렸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의를 느꼈는데 학기가 시작되자 네덜란드어 사전도 없는 교수들의 수업에 더욱 질렸다. 헌책방을 뒤져서 “1학년 주제에” 네덜란드 사전을 샀다. 교수들이 수시로 그의 사전을 빌려 갔다.  
 

통번역 공부하려 입학했는데 실망 
  최씨는 “외국어를 배우려면 한국어도 잘 알아야 하는데 이게 바로 요즘 나오는 번역의 문제다. 외국어는 잘하는데 우리말을 못하니 번역말씨, 일본 한자말, 영어 그냥 갖다 쓰기, 짜깁기로 이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통번역을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외국말 공부, 외국문화 공부, 우리말 공부, 우리 문화 공부를 3:2:3:2로 나누어 하루 내내 공부했다.
 대학을 접기로 하고 미래의 계획을 다시 설계하려고 보니 이 사회가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권장하는데 막상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책방의 책 목록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이오덕 선생의 ‘우리 글 바로 쓰기’를 빼고 나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20살이지만 0살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로 했다. 한국말을 배우려면 문화와 역사를 배워야 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책을 봤고, 새 책은 대학 구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고, 옛날 책은 헌책방에서 읽었다. ‘책은 사서 봐야 한다’라고 하지만 형편이 되질 않아 무작정 살 수가 없었다. 새 책은 엄두도 내질 못하고 헌책방에서 죽치고 앉아 열 권을 다 읽고 나면 한 권은 샀다. 그랬더니 서점 주인이 봐주었다고 한다.
  1998년 12월에 다섯 학기를 마치고 대학을 그만 두었는데 그 사이에 ‘우리말을 살려 쓰는 우리’라는 소식지를 내면서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는 우리 말글을 찾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한글 학회에서 주는 ‘국어운동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에 윤구병 씨가 운영하던  보리출판사에 들어가 보리국어사전 집필에 착수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사전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최 씨가 2016년에 쓴 ‘새로 쓰는 비슷한 말 꾸러미 사전’은 그해에 서울시와 서울서점인협회에서 ‘올해의 인문책’으로 뽑혔다. 최 씨는 “막상 고흥과 전남에서는 조용했다”라고 말했다.


cjg01.JPG » '사전 짓는 책숲집, 책노래' 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 최종규 씨.
 
 -도서관에 있는 책들 중에 특히 권할 만한 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주제로 본다면 어린이를 다룬 책과 숲을 다룬 책을 권하겠다. 어린이를 찍은 사진이 한 장이라도 들어있다면 그 책을 들여다 놓으려고 한다. 졸업앨범도 많이 갖다놨다. 어린이 사진? 찍기가 쉬우면서도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찍는다는 것은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른 모델은 쉽다. 어린이는 한 번 마음이 뒤틀리면 두 번 다시 못 찍는다. 어린이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자격이 조금 있다고 봐야 한다.
  또 하나 권하는 것은 숲이다. 자연이 아닌 숲. 숲을 어떻게 찍는지를 본다. 우리 도서관에는 숲 사진책이 많다. 구경거리로 찍을 때와 다른 점이 있는 책들을 살펴보라. 자세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 관련책-
 ‘소꿉’ (편해문, 고래가그랬어, 2009)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 (나가쿠라 히로미, 서해문집, 2007)
 ‘세계의 어린이 7 : 부’ (코마츠 요시오, 웅진출판주식회사, 1991)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아베 고지, 안단테마더, 2016)
 ‘腕白小僧がい’ (토몬 켄, 小學館, 2002)
 ‘み’ (하나부사 신조, 福音館書店, 1982)
 ‘地球星の子どもたち’ (타누마 타케요시, 朝日新聞社, 1994)
 ‘the childre’ (세바스티앙 살가도, aperture, 2000)
 ‘戰爭·平和·子どもたち’ (로버트 카파, 寶鳥社, 2001)
 
 -숲 관련책-
 ‘낙동강 before and after’ (지율, 녹색평론사, 2010)
 ‘백’ (공병우, 돈화문 공안과 사진부, 1980)
 ‘마라도’ (김영갑, 두모악, 2010)
 ‘아기 여우 헬’ (다케타쓰 미노루, 청어람미디어, 2008)
 ‘숲으’ (호시노 미치오, 진선출판사, 2005)
 ‘landscapes of the American West’ (안젤 아담스Ansel Adams, Quercus, 2008)
 ‘旅ゆけば猫’ (이와고 미츠아키, 日本出版社, 2005)

 
 -이 세상의 모든 책을 모두 도서관에 갖다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기준이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구입하는가?
 “사진책이 만 권 있다고 했는데 사실 세어볼 적이 없어서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을 것이다. 새로 나온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사고 강의하러 다른 지역에 가게 되면 그곳의 책방과 헌책방에 가본다. 예를 들어 대구엔 대륙서점이란 곳이 있다. 대구에서 가장 훌륭한 곳이다. 그곳 사장님이 창업주의 따님이다. 내가 모르는 책을 잔뜩 배울 수 있다. 사진책 말고도 좋은 책이 산더미다. 이곳에 가면 내 지갑이 털린다. 강사료를 40만 원 받았다면 50만 원어치 책을 산다. 이제 좀 절제할 생각이다. 절반 정도로 줄여야지. 사진책을 사는 기준은…. 작가와 출판사를 응원해주고 싶다면 산다. 예를 들어 ‘김지연 할머니’의 책은 다 무조건 산다. 편해문의 책도 좋다. 반면에 아무개 작가의 책은 거저 준다고 해도 받고 싶지 않다. 일본의 출판 시장이 한국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 지난번에 일본에 갔을 때 10권 정도 사왔는데 나머지는 눈에 불이 나도록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한영수 선생의 사진책도 나올 때마다 산다. 그 밖에도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이라면 들여다 놓으려고 한다.”
 
 -한 달에 몇 권씩 새로 들여오는가?
 “그건 정확히 밝힐 수 없다. 그러나 사고 싶은 책은 아직도 대단히 많다. 알라딘 같은 곳에도 (사려고 하는 책의) 보관함에 사진책만 2천 권이 들어있다. 돈은 벌면 되는데 도서관에 책을 더 놓을 공간이 없다. 이것이 안타깝다.
 
 -이오덕 선생의 책과 자료들을 총정리했다고 들었다.
 “2001년 1월 1일부터 보리국어사전을 맡아서 5년 계획의 첫 삽을 떴다. 그런데 2년 반 정도 지났을 때 출판사 내부의 관계자와 의견이 맞지 않아서 그만두게 되었다. 바로 그 무렵에 이오덕 선생이 돌아가셨다. 다른 신문들을 보니 선생에 대한 추모글이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내가 700매짜리 추모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전화기를 꺼버리고 조용히 살았다. 귀가 간질간질하여 전화기를 켜자 바로 전화가 왔다. 이오덕 선생의 큰 아드님이 내가 쓴 추모글을 보고 나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아버님의 원고를 좀 정리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3년 정도 걸리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라고 해서 맡았다. 하기로 했다. 3년 동안 책으로 낼 수 있게끔 정리를 했다. 이럭저럭 50권 정도는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일기, 편지, 수필, 교육평론, 우리말 이야기, 자연을 노래한 책, 악보도 10여 곡 있고 아이들의 문집, 그림을 모아놓은 것 등 방대했다. 일을 끝내고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갔고 그때부터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고흥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좀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그렇다. 큰 아이가 태어나면서 계속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시골로 가자. 우리의 보금자리는 그냥 집이 아닌 보금자리 더하기 숲이 되어야 한다. 숲이 같이 있는 보금자리. 처음부터 자급자족은 못 하겠지만 꾸준히 배워서 어떤 풀, 어떤 나무, 어떤 흙은 어떻게 살리는지, 똥오줌은 어떻게 땅으로 돌려주고 집은 어떻게 짓고, 옷은 어떻게 짓는지, 이런 것을 느릿느릿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서 석 달 연구하여 고흥을 골랐다. 이곳이 얼마나 깊은 곳인지 와봐야 안다.”



cjg02.JPG  
 최종규씨를 만나기 위해서 고흥으로 가려고 보니 고속버스나 기차의 선택이 있었다. 버스는 고흥터미널까지 바로 가는 것이 있다. 기차는 순천역까지 가서 다시 시외버스로 고흥터미널로 갈 수 있다. 고흥터미널에서 최 씨의 도서관이 있는 동백마을로 가려면 두 시간에 한 대씩 시골버스가 있다. 서울서 가려면 가깝지 않은 곳이다.
 
 -올해로 고흥살이가 8년째다. 어떤가? 가족들은 좋아하는가?
 “8년째 고흥에 산다는 것은……. 우선 고흥이 아니어도 좋았겠다는 것을 배웠다. 위해시설이 있더라도 산을 낀 시골숲으로 갔어도 됐을 것이다. 둘째로는 둘레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우리가 갈 길만 보고 생각하면 되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레에서) 우리를 괴롭힌다고 마음을 쓸 일이 없다. 도서관을 놓고 본다면 행정기관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고 마을로 본다면 농약문제다. 우리보고 그런다. 시골에 살면서 왜 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땅은 10년은 묵혀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좁은 땅이 있다. 집터였던 곳인데 쓰레기를 캐내니 트럭 한 두 대만큼 나오더라. 뭘 심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2년이 더 지나면 시작해볼까 한다. 아이들은 만족이 아니라 만족 이상의 수준으로 좋아한다.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한다. 우리 아이가 엊그제 해거름에 마을 뒷산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저기 이불이 있다’
 ‘이불이 어디 있니?’
 ‘저기 구름이 산을 덮어주는 이불이야’
 ‘그래 그렇구나. 멋진 이불이구나’
 이 말밖에 더 할 수 없었다. 어버이로서 내가 배웠다. 그 해거름 시간에 도시의 웬만한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에 있어서 산과 구름을 볼 수가 없다. 본다면 우리 아이처럼 그런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느낄 기회가 없으니 말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도서관에 대해 이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이제 8년째인데.
 “처음에 우리가 고흥에 왔을 때 그 전에 없던 도서관을 만들었으나 동네에선 관심이 없었다. ‘오거나 말거나’ 왜냐하면 그전까지 이 마을에 (외부에서)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고 나서 이웃마을에 귀촌자가 몇 생겼다고 하더라.
 어쨌든 동네 분들의 반응은 첫째는 무관심이고 둘째는 우리 집에 아이가 있으니, 동네에 아이들 소리가 나게 되었으니 좋아하였고 셋째는 ‘그런데 왜 막장에 왔는가?’ 였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막장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새마을 운동 때부터. 마을사람들은 이곳을 동백이라고 하지 고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내가 인천에서 왔다고 했지만 나더러 ‘서울에서 살았다면서 왜 막장으로 왔냐’는 소리를 4년이나 들었다.”
 
 -4년이 지난 그 다음부턴 달라졌다는 것인가?
 “4년이 지난 후엔 아예 말을 안 하시더라.”
 
 -그럼 이 지역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문화라는 것은 컬쳐(Culture)를 번역한 한자다. 그런데 가만 보니 컬쳐는 살림이더라. 문화는 살림이다. 하루아침에 가꿀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두고두고 뿌리를 내리는 것. 살림살이가 문화다. 목돈을 들여 뭘 세우고 축제를 하는 것은 반짝 행사일 뿐이다. (그런 축제 같은 것은) 지역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외지에서 온 사람과 지역에서 사는 사람에게 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여행 오는 사람들은 한 달이든 석 달이든 느긋하게 머물면서 누릴 수 있고 지역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다른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 그런 것이 문화다. 돈이 들어 가야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게 내다보고 자급자족하고 아이들에게 교육을 한다. 그런 집이 두 집, 석 집 늘어나면 된다. 마을 어르신들이 스스로 비닐을 버리고 농약을 쓰지 않게 될 때가 오면 된다.
  그렇게 차근차근 바뀌는 것이다. 우리 도서관에도 책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에) 가끔 외부 손님이 오면 한 시간 넘게 눈감고 바람소리만 듣다가 간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 온 사람도 있다. 미국, 영국, 호주…. 어떤 분은 이민 간 교포인데 아이들을 데리고 며칠 동안이나 여기 있다가 갔다. 책 안보고 놀다갔다. 저녁엔 읍내 나가서 자고 아침에 다시 오고. ‘훨씬 크고 좋은 숲이 호주에도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좋은 숲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들이 여기서 하는, 마음이 담긴 작은 숲에서 더 사랑스러운 기운을 받을 수 있다.’라고 하더라. 맞다. 그게 우리 도서관이 할 몫이다. 책을 중심으로 할 사람은 읍내 쪽에 고흥읍 2호 도서관이 생겨 그쪽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cjg001.jpg
 
 -최근에 책이 또 한 권 나왔더라.
 “안목출판사에서 나온 필립 퍼키스의 책 중에 사진이 거의 없는 글 중심의 책이 있다. 사진 없는 사진책. 할 수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면 사진작가가 눈표범을 만났는데 셔터를 누르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본다. 물질로 뭘 담아내겠는가? 내가 이번에 내는 책은 ‘내가 사랑한 사진책’이다. 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들어있지 않다. 내가 본 사진책 50권에 대한 리뷰를 모은 책이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다룬 사진책이 전주 김지연 작가의 ‘감자꽃’이다. 김지연님께서 내가 쓴 글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내가 이런 글을 썼구나…….’ 내가 쓴 글은 내 손을 빌려서 나온 것이지 내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교정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전국에서 이 도서관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안내를 할 것인가?
 “주소를 찍으면 올 수 있다. 그런데 주소를 블로그에 올렸다가 여러 문제가 있어 지웠다. 이제 다시 주소를 올릴까 한다. 여기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고흥군청에 연락을 하고 오면 좋겠다. 고흥까지 와서 도서관만 보고 갈 일이 아니지 않은가? 식당도 물어보고 교통편도 물어보고 그리고 우리 도서관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군청에 물어보면 좋겠다. 예전에 누가 이곳을 찾아오려고 군청에 전화를 했는데 (군 담당자가) ‘고흥군에는 최종규란 사람이 없고 최종규가 하는 도서관이란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더라. 모르지. 이제 바뀌었는지.”
 
 -옷을 시원하게 입으셨다.
 “내 체질이 햇볕과 바람을 많이 쐬야 한다. 자연 소재가 아닌 옷을 입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너무 괴롭다. 그래서 짧은 옷을 입는다. 어르신들이 보기에 불량하게 보이겠지만 나는 내 몸을 지키려면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입고 다닌다’라고 말할 수 없지 않으냐……. 치마바지를 입으면 자전거를 타기에도 편하고 좋다.”
 
고흥/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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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사진책/ 헬렌 레빗 <A Way of Seeing>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아파트의 꼭대기층에 있는 헬렌의 집 현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숨이...

취재

사진에서 떠오르는 현대사 [2]

  • 사진마을
  • | 2018.06.19

미 문서기록보관청 뒤지다가 ‘1950 Korean War’에 번쩍     한국 근현대 희귀 사진 발굴 박도씨   애초엔 권중희 선생과 함께 백범 암살...

사진책

바람이 나를 이끌었다

  • 사진마을
  • | 2018.06.01

<한겨레> 사회2부 수도권팀 박경만(56·사진) 선임기자가 여행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사진 에세이 <바람의 애드리브>를 펴냈다. 30년 경력의 기자인 ...

게시판

희망과 미래 찾는 사진들

  • 사진마을
  • | 2018.05.31

청암언론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제5회 송건호 대학사진상’ 수상작이 정해졌다. 모두 421점이 경쟁을 벌인 이번 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

취재

아이들 그림에서 바스끼야를 찾았다

  • 사진마을
  • | 2018.05.24

29년 경력의 의류 패션전문가 권오향씨는 지난해 성남의 대표적 복지단체 중 하나인 ‘(사)참사람들’의 무급 이사장이 됐다. 그는 지속 가능한 복...

전시회

한국적 풍경사진을 위하여

  • 사진마을
  • | 2018.05.18

신문, 잡지에서 사진기자 생활 현직 <퀸> 사진기자 김도형씨 30년만에 첫 개인전 열어... 풍경전문작가 데뷔 선언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

전시회

"바위가 부처, 부처가 바위"

  • 사진마을
  • | 2018.05.11

이호섭 작가 개인전 <부처의 땅, 남산> 경주 남산에서 3년간 마애불 찍은 사진 알고보니 바위, 알고보니 마애불 이호섭 작가의 개인전 <부처의 ...

전시회

날씨가 말을 걸다

  • 사진마을
  • | 2018.05.08

디뮤지엄, 대형 기획전시 개막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4G영화처럼 마틴 파, 올리비아 비, 예브게니...

사진이 있는 수필

시각적 문맹에서 벗어나려면

  • 사진마을
  • | 2018.05.04

사진이 있는 수필 #23 내가 하겠다고 먼저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어쩌다가, 하다 보니” 사진교육을 시작한 지 10년이...

내 인생의 사진책

죽음처럼 불안한 우연의 처연한 신비

  • 사진마을
  • | 2018.05.02

내 인생의 사진책/윤진영 <DECOMPOSER>   이집트의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에 함께 묻힌 <사자의 서>에는 ‘진실의 깃털’이라는 흥미로운 심판 이...

취재

죽은 사진기도 그가 손대면 숨쉰다 [1]

  • 사진마을
  • | 2018.05.02

오래된 죽은 사진기도 그가 손대면 숨쉰다 카메라 수리 53년 '달인' 김학원씨 “세상에 못 고치는 카메라 없다… 소리만 들어도 무슨 고장인지 ...

전시회

섬이 바위, 바위가 섬

  • 사진마을
  • | 2018.04.30

유동희, 홍성희씨의 부부 사진전 ‘바위와 섬’이 5월 1일부터 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길 74에 있는 명동성당 1898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 오...

사진책

브레송과 카파

  • 사진마을
  • | 2018.04.20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관련기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사진가를 다룬 책 두 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다룬 책 ‘앙...

전시회

바다와 힘, 그리고...

  • 사진마을
  • | 2018.04.20

김상환 작가의 사진전 <Hidden Dimension>이 서울 은평구 증산동 포토그래퍼서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고 있다. 지도를 보니 서울 지하철 6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