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영화와 당시, 21년 만의 취재기

곽윤섭 2012. 05. 11
조회수 11857 추천수 1

 마지막 자막에 흐르는 사진 4장, 감동의 재구성
‘만리장성’ 넘은 아리랑, 둘보다 나은 하나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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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리아’가 지난주에 개봉됐다. 시사회 초청을 받아 보고 왔다. 내 평생에 영화를 보다가 엔딩크레디트 올라갈 때 그렇게 감동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세속적인 이유다. 왜냐하면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만든 이들의 이름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그 사이에 내가 1991년에 일본에서 찍었던 사진이 넉 장 올라갔기 때문이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현정화(하지원이 연기했다)와 리분희(배두나가 연기했다)가 그 당시 일본에서 열렸던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의 실제 현장에서 같이 웃거나 경기에 임하거나 헤어지는 사진들이다.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고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사진을 대여했다. 엔딩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면 내 이름도 나온다. 너무 작아서 나도 잘 안보였다.

 

남북 선수들이 함께 웃고 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장

 

 영화도 감동이었다. 시사회는 공짜로 보는 자리이니 시니컬한 관객도 있고 진정한 애호가들이 진지하게 보는 경우도 있다. 영화 도중 몇 명이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해운대, 투모로우, 2012 같은 블록버스터 재난영화를 보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라는 반응을 듣기도 한다. 현실처럼 만들려고 애를 썼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영화가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현실의 순간에서 사건과 사고와 상황을 만날 때 미리 예정된 ‘관습’에 의거해 경험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상황은 대개의 경우 예측할 수 없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판단하지도 못하고서 겪거나 당한다. (관객이 아닌) 실제의 우리는 하나의 프레임과 하나의 앵글로 바라보며 연대기적으로 시간적 구성에 충실한 내러티브를 읽어낸다.
 그러나 영화는 전혀 다르다. 감독은 전지적이다. 다큐멘터리영화라고 하더라도 감독이 개입할 여지는 많다. 영화가 발명되고 나서 처음 선보인 (대부분 다큐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들도 프레임과 앵글은 감독의 것이다. 극영화의 경우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시공간을 초월한 구성이 가능하다. 어떤 상황이 생길지 관객은 예측할 수도 있다. 친절한 감독이라면 (다소 긴장감은 떨어질지 몰라도) 관객에게 모든 실마리와 복선을 제공한다. 관객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동시에 여러 곳에 설치된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 종합적으로 재구성된다. 영화는 어떻게든 재구성된 현실이다. 따라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이” 보일 수 있다.

 

영화 ‘코리아’는 실제 있었던 상황을 재구성했다. 1991년 2월 남북은 판문점에 모여 탁구와 축구 두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한다. 이 때 모든 것이 정해졌다. 선수단의 명칭은 코리아(영문 표기는 KOREA),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의 한반도 지도, 단가는 1920년대 아리랑 등이다. 1991년 4월 일본에서 열린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이렇게 구성된 단일팀이 최초로 참가한 대회였다.

 

편파판정에 기자로서 사진 찍다가도 분통 터뜨린 기억 생생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ISO 1600짜리 필름이 들어 있는 두 대의 니콘 Fm2와 함께 그 현장에 있었다. 남자, 여자팀의 단체전이 먼저 시작됐고 이어서 남과 여, 그리고 혼성팀의 단식, 복식이 펼쳐졌다. 길게 쓸 일은 아니다. 4월 29일에 열린 여자 단체 결승에서 ‘코리아’팀은 중국을 제압하고 우승했다. 중국의 여자단체 9연속 우승을 좌절시켰으며 1973년 제32회 사라예보대회에서 남쪽이 우승한 이래 18년 만에 빼앗겼던 코르비용컵(여자단체 우승국에 수여되는 컵)을 남과 북이 하나 된 힘으로 되찾았다. 온 체육관이 응원의 함성과 감격의 눈물과 경이로운 아리랑과 펄럭이는 단일팀 깃발로 넘쳐났다.
 
 코리아팀의 선수는 영화에서처럼 현정화, 리분희, 유순복이었으며 덩야핑과 가오쥔으로 구성된 세계 최강 중국팀은 코리아의 희생제물이 되었다. 결승전 장면만 따진다면 실제를 충실히 반영한 대목도 있고 조금 달라진 점도 있다. 유순복은 실제로 서비스동작에서 두 번이나 석연치 않은 경고를 받아 불이익을 당했으나 이를 극복하고 승리를 가져왔는데 이는 팩트다. 당시 신문기사를 옮겼다.
 
 “김창제 코리아팀 총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이번 경기의 심판을 본 스웨덴의 레너드 슈발트의 편파판정에 정식으로 항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총감독에 따르면 레너드 심판은 4번째 단식 2세트, 유순복이 가오쥔을 7-5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에서 유순복에게 서브반칙을 선언하는 등 이번 결승경기에서 ‘코리아’팀에게만 지나치게 엄격한 서브규정을 적용해 경기의 맥을 번번이 끊어왔다는 것이다. (지바=이봉현 특파원)”

 


 이 순간을 기억한다. 테이블에서 7미터 정도 떨어진 펜스 뒤에 서서 카메라에서 눈을 떼진 못했지만 나도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콩쥐를 괴롭히는 새엄마 팥쥐 엄마는 독자의 공분을 산다. 장화홍련, 신데렐라의 계모도 마찬가지. 객관적이어야 할 입장인 경찰, 검사, 판사 등이 악역으로 나오면 관객은 더 우리의 주인공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한다. “주인공은 늘 시련을 극복한다”는 관습은 악역이 있어서 더 주목받는다. 영화 우생순에 등장하는 편파적 심판도 실제 상황이었다.
 실제 제 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결승전의 심판도 편파적이었는데 이런 악역의 존재는 현실을 영화처럼 만든다. 현실에도 악당이 있고 영화에도 악당이 있다. 그러므로 영화 ‘코리아’에서도 ‘영화 같은’ 관습의 장치가 실제 상황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조금 달라진 대목은 현정화 리분희의 복식이 아니라 유순복의 단식이 3:2 승리를 만드는 마지막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오자마자 인화해뒀던 기념사진들 언제쯤이나 북쪽에 전해줄 수 있을까 
 
 단체전을 우승한 뒤 개인전을 치르면서 더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 이상의 장면은 없었다. 김택수, 유남규, 리근상, 김성희가 있었지만 당시엔 발트너, 페르손 같은 남자 탁구의 전설들이 생생한 시절이었다. 여자 단식에서 리분희가 덩야핑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코리아’팀 선수들의 기념사진도 여럿 찍어뒀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인화했다. 그때만 해도 다음 대회 북쪽 선수들을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그 당시에 인화했던 기념사진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 이 사진을 전해줄 수 있을까. 영화 ‘코리아’는 현실 같은 영화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진은 “영화보다 더 실제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사진은 집합기억을 형성한다. 특히 옛날 사진은 옛날의 기억을 대체한다. 한 장의 사진이 곧 다큐멘터리다. ‘코리아’를 본다면 자막이 올라가기 전에 등장하는 넉 장의 사진을 꼭 봐주시라.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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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을 때부터 둘은 자매처럼 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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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선수들은 틈이 날때마다 라켓에 러버(고무)를 붙이는게 일처럼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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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영웅 이에리사씨가 경기장을 찾아 코리아 선수들에게 기와 애정을 듬뿍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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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별이 어디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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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위에 보이는 선수는 김택수, 아래쪽 오른쪽에서 두번째 까치머리가 당시 세계최고의 수비전형 리근상       지바/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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