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진짜야 가짜야?

곽윤섭 2015.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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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거리뷰 캡쳐하여 뉴욕 재구성

아티스트 김호성의 <유령도시-뉴욕?>

 

 

 

khs-05.jpg » 김호성

 

 

 아주 흥미로운, 말 그대로 흥미롭기 짝이 없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호성의 개인전 <유령도시_뉴욕>이 17일까지 인사동 ‘인덱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인덱스 갤러리’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인사동 거리로 3분 만 걸어가면 쌈지길 맞은편에 있다.

 왜 흥미있다고 이야기하는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이미지들은 작가 김호성이 구글의 거리뷰에서 의도를 갖고 캡쳐해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작가의 작업노트를 기사 말미에 전문 소개해뒀으니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고 내 의견을 밝힌다. 한겨레로 찾아온 김호성 작가와 초면이었지만 1시간 이상 허심탄회하게 이야길 나눴다.
 MagrittePipe.jpg »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공정이용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그림일 뿐이다. 뒷날 마그리트에게 파이프 그림에 대해 누군가 질문을 하자 “그것은 파이프의 그림이니 그 파이프에 담뱃가루를 집어넣어 보게”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파이프의 사진을 두고 (그림과 달리)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했다.  그림과 달리 사진은 어떤 시공간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을 찍은 것이다. 이것은 사진의 기본 명제다. R·B가 사진을 두고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코드 없는 메시지와 직면했다”라고 썼다. 많이들 오역, 오해, 오용하는 점이 있는데 R.B가 말한 “코드 없는 메시지”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맞지만 모든 사진이 아니라 일부(아주 소수의) 사진에선 코드를 읽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사진이 나타나기 전까지 모든 이미지(주로 회화)는 코드가 있었다. 코드란 어떤 규칙이며 약속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이해할 때 정해진 규칙과 약속에 따라야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파이프를 그린 그림은 “이렇게 생긴 것을 파이프라고 부르기로 한다” 또는 “파이프는 이렇게 생긴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파이프 그림은 파이프를 보고 그렸겠지만 작가가 상상해서 그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과 달리) 사진Domenichinounicorn.jpg » 도메니치노가 그린 유니콘은 상상해서 찍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존재했음(That-has-been)의 속성을 떠나면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 아닐 뿐이지 작품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그런데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은 너무 실제와 닮았으니 파이프가 아니란 소리가 역설처럼 들린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유니콘을 예로 들어보겠다. 실제 유니콘은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오늘까지는 상상의 동물이다. 그러므로 유니콘을 그리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다. 어떤 화가가 유니콘을 그리려면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종합하여, 혹은 그 전 시대에 그려진 그림 속의 유니콘을 보고 그릴 수밖에 없다. 그림 속 유니콘을 보고 그렸다면 진짜 유니콘일까? 아니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도 신화 속에 나오는 유니콘을 상상했거나 따라 그렸을 뿐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로 유니콘을 그렸던 사람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그 최초의 유니콘 화가는 상상으로 그렸을 것이다. 유니콘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언제 발견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가정할 뿐이니 비과학적이라고 하지 말자. 누가 알겠는가. 내일 노르웨이의 숲에서 발견될지) 실제 유니콘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유니콘의 그림은 “이것은 유니콘이 아니다”라는 설명이 따라야한다.   

 

김호성의 작품은 구글의 거리뷰에서 따온 것이다. 뉴욕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뉴욕에 가 본 적이 없지만 뉴욕의 사진과 동영상을 봤으니 믿는다. 뉴욕의 그림만 봤다면 나는 아직 뉴욕의 실존을 믿지 않을 것이다. R.B가 쓴 ‘밝은 방(Camera Lucida)’의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주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넘어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후자가 정신건강에 더 유리하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나는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 제롬의 사진을 우연히 보았다. 그때 나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제를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 때때로 나는 그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기에(이처럼 삶은 작은 고독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One day, quite some time ago, I happened on a photograph of Napoleon‘s youngest brother, Jerome, taken in 1852. And I realized then, with an amazement I have not been able to lessen since: “I am looking at eyes that looked at the Emperor.” Sometimes I would mention this amazement, but since no one seemed to share it, nor even to understand it (life consists of these little touches of solitude), I forgot about it.”  Richard Howard 가 번역한 Camera Lucida에서.
 
 나폴레옹 황제는 사진이 발명(공표)되기 전에 죽었다. 따라서 나폴레옹 황제의 사진은 없다. 막내 동생 제롬의 사진은 있다. R.B가 본 사진처럼. 제롬이 존재했음은 사진으로 입증이 되었지만 나폴레옹 황제의 존재는 사진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유니콘)과 달리 나폴레옹 황제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R.B는 제롬의 사진을 보면서 제롬의 존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보았던 제롬의 두 눈을 보는 것이다. 제롬은 자신의 형인 나폴레옹을 분명히 만난 적이 있었을테니까. 위의 첫 단락은 그 밖에도 다른 중의적인 뜻이 있으나 그것은 여기서 말할 것은 아니다.
 
 다시 김호성의 뉴욕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구글 거리뷰카메라가 찍은 이미지를 캡쳐한 뒤 후보정프로그램으로 특수한 효과를 주어서 흐릿하게 만든 것이다. 사진을 변형하여 만든 작품이다. 작업노트에서 김호성은 ‘사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나와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디어 아티스트이니 이 작품들도 ‘미디어 아트’라고 부를 것을 권한다. 미디어 아트를 위해 사진을 이용할 수도 있고 사진이 아닌 다른 미디어를 쓸 수도 있다. 뉴욕을 찍은 거리뷰는 사진이다. 그러나 변형이 들어간 순간 이것은 사진이 아니고 뉴욕도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다. 김호성의 <유령도시_뉴욕>은 사진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다. 김호성과 나는 진지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대화를 했다. 우리 둘이서 무슨 결론을 내릴 일은 아니니까. 김호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품이 사진인지 아닌지 논란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또 다른 논란, 즉 구글 거리뷰카메라가 찍은 사진을 내가 무단으로 사용했으니 저작권에 관한 논란이라도 생기길 희망한다. 나는 거리뷰카메라의 사진을 이용해 새로운 사진을 창작해냈으니 나의 예술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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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s-06.jpg khs-07.jpg » 이상의 작품/김호성


 khs-001.jpg » 에드워드 호퍼

le-004.jpg » 에드워드 호퍼

le-002.jpg » 에드워드 호퍼

 

사진이든 아니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이며 메시지이니 그 이야기로 넘어간다. 김호성이 들고 온 사진집(작품집)을 몇 장 넘기면서 내 입에선 한 작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에드워드 호퍼. 20세기 초반 미국과 미국인들을 담담하게 무표정하게 건조하게 외롭게 황량하게 쓸쓸하게 그려냈던 화가 호퍼의 작품과 놀랍게 닮았다. 김호성의 작품은 사진이니, 아니 사진을 이용했으니 뉴욕의 실제 이미지에서 빌어온 것이다. (내가 뉴욕을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뉴욕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뉴욕에 다녀온 사람의 두 눈을 본 적이 있다. 또 김호성의 작품이 뉴욕거리뷰사진을 변형했다고 해서 뉴욕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퍼의 작품은 온전히 손으로 그린 것이니 사진과 관련이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호퍼가 사진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호퍼는 사실주의 화가였으니 비슷하게 그렸을 것이다. 김호성의 뉴욕은 뉴욕답게 활기찬 사람들이 넘치고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디자인이 돋보이면서 동시에 공허하거나 익명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모자이크처리나 변형이 된 덕이거나 탓이겠지만 어떻게든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다는 것을 작업노트에서 읽었으니 성공한 셈이다. R.B는 “사진은 전기소가 전기와 맺는 동일한 관계를 역사와 맺고 있다”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고 동의한다. R.B의 말을 따른다면 김호성의 작품은 ‘사진’이 아니지만 사진에서 형성된 것은 사실이므로 어느 정도 사진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김호성이 캡쳐해서 후보정한 뉴욕의 이미지들은 뉴욕을 구성하고 있다. 김호성의 방식으로 뉴욕을 바라보는 데 성공한 것이라는 뜻이다. 마치 로버트 프랭크가 그만의 방식으로 미국을 재구성해낸 것처럼. 
 
 나머지는 독자와 관객의 몫이다.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에드워드 호퍼 그림-퍼블릭 도메인, 공정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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