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사진책/ 한설희 <엄마>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에서 발행한 사진문고 시리즈인 ‘눈빛사진가선’의 출간 종수가 51종이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독자들이 손쉽게 사진집을 접할 수 있도록 작고 가볍다는 데 있다. 하지만 책의 함량은 높고 묵직하다. 한 사진가가 일관된 주제로 작업한 작품 50점과 작가의 노트, 그리고 전문가의 해설이 더해져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사진의 존재 이유를 대중적으로 열어준 책이다.
눈빛사진가선과 비슷한 크기의 책은 프랑스에도 있었다. 출판인이자 전시기획자,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로베르 델피르(1928~2017)는 1982년에 사진만을 다룬 첫 번째 사진집 시리즈 <포토 포슈>(Photo Poche)를 창간했다. 당시로는 아주 모험적인 사건이어서 사진계의 전설로 회자된다. ‘주머니 속 사진’이라는 의미인 <포토 포슈>의 탄생으로 독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되어 웬만한 서점에서는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포토 포슈>를 닮은 책, ‘눈빛사진가선’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크고 무겁고 비싼 사진책이 아닌,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탕을 까 먹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최근 ‘눈빛사진가선’의 51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74살 할머니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을 묶은 <엄마>이다.
<엄마>는 한설희 작가가 2013년부터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5년까지의 기록을 선별한 것이다. 작가의 첫 사진이 발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비로소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다. 작가의 나이 67살, 엄마는 91살이었다. 67살 딸이 찍은 91살 엄마의 기록은 2011년 사진가들이 제정한 온빛사진상을 받게 된다. 이듬해 봄에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노모’로 이어지고, 딸의 카메라에 익숙해질 즈음, 엄마는 96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작가는 엄마를 처음 촬영할 때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기록의 마침표가 되리라”라고 말했는데, 어느덧 8년이 흘러 작가 나이 74살이 되었다. 곧 겨울이 되면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신지 2년이 된다.
<엄마>를 보면서, 사진집을 엮어야 하는 딸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늘 곁에 있기에 촬영하기 쉬울 것 같지만 ‘가족’을 찍는 일은 녹록지 않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촬영할 수 있고 애써 섭외하지 않아도 간단없이 찍을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기실 수많은 사진집 중에서 가족을 담은 사진집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미학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이슈를 열망하기 때문에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묻히거나 버려지기 십상이었다.
현대의 사진은 빠르게 세상의 모든 것을 포착하고 재현했다. 한설희 작가의 움직임이 귀한 이유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작은 몸짓들의 근력을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더욱 고마운 일은, 연륜이 쌓여 대가를 이룬 작가가 아니라 다만 ‘할머니 작가가 찍은 할머니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의 내밀한 욕망이 은유로, 직설로 표출되며 부드러움과 거?b의 경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아득하게 클로
즈업되어 기어이는! 가슴 저리게 하는 이 사진들.
단 하나인 동시에 모든 것인 사진이 있다. 나만의 고유한 사진이면서 모두의 사진이고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기에 결코 보기를 다 마칠 수 없는 무한한 사진. 유독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면 말더듬이가 되고 눈이 멀게 된다. 엄마가 찍혀 있는 사진들이 그렇다. ‘엄마’ 사진은 정해진 코드가 없기에 읽기가 불가하고, 읽어 낼 수 없기에 감상의 거리도 확보될 수 없다. 자기만의 고유한 엄마를 지시하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알아챌 수 있고, 내가 볼 때 비로소 완결된다. 내 몸과 맘에 꼭 달라붙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생생하게 현존하므로 사진이 곧 내가 되는 특별한 경험에 이르게도 된다.
이 글을 쓰는 일 년 전 오늘의 나에게는 엄마를 만질 수 있는 날이 20여일이 남았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엄마가 살아 있는 20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늘, 항상, 나중에야 알게 된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에 내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듯이, 사랑이 떠난 후 사랑을 알아보듯이. ‘시간의 문’(셔터)을 통과하는 사진처럼, 사라져버리는 삶처럼, 사진이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궁극적인 것의 자명함을 <엄마>를 보며 깨닫게 된다.
최연하(독립 큐레이터)

눈빛사진가선과 비슷한 크기의 책은 프랑스에도 있었다. 출판인이자 전시기획자,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로베르 델피르(1928~2017)는 1982년에 사진만을 다룬 첫 번째 사진집 시리즈 <포토 포슈>(Photo Poche)를 창간했다. 당시로는 아주 모험적인 사건이어서 사진계의 전설로 회자된다. ‘주머니 속 사진’이라는 의미인 <포토 포슈>의 탄생으로 독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되어 웬만한 서점에서는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포토 포슈>를 닮은 책, ‘눈빛사진가선’은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크고 무겁고 비싼 사진책이 아닌,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탕을 까 먹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최근 ‘눈빛사진가선’의 51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74살 할머니 작가가 촬영한 사진들을 묶은 <엄마>이다.
<엄마>는 한설희 작가가 2013년부터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인 2015년까지의 기록을 선별한 것이다. 작가의 첫 사진이 발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었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비로소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다. 작가의 나이 67살, 엄마는 91살이었다. 67살 딸이 찍은 91살 엄마의 기록은 2011년 사진가들이 제정한 온빛사진상을 받게 된다. 이듬해 봄에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 ‘노모’로 이어지고, 딸의 카메라에 익숙해질 즈음, 엄마는 96살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작가는 엄마를 처음 촬영할 때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기록의 마침표가 되리라”라고 말했는데, 어느덧 8년이 흘러 작가 나이 74살이 되었다. 곧 겨울이 되면 작가의 엄마가 돌아가신지 2년이 된다.
<엄마>를 보면서, 사진집을 엮어야 하는 딸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늘 곁에 있기에 촬영하기 쉬울 것 같지만 ‘가족’을 찍는 일은 녹록지 않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촬영할 수 있고 애써 섭외하지 않아도 간단없이 찍을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기실 수많은 사진집 중에서 가족을 담은 사진집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미학적,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이슈를 열망하기 때문에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은 묻히거나 버려지기 십상이었다.
현대의 사진은 빠르게 세상의 모든 것을 포착하고 재현했다. 한설희 작가의 움직임이 귀한 이유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작은 몸짓들의 근력을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더욱 고마운 일은, 연륜이 쌓여 대가를 이룬 작가가 아니라 다만 ‘할머니 작가가 찍은 할머니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그녀들’의 내밀한 욕망이 은유로, 직설로 표출되며 부드러움과 거?b의 경계가 드러나기도 하고 아득하게 클로

단 하나인 동시에 모든 것인 사진이 있다. 나만의 고유한 사진이면서 모두의 사진이고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기에 결코 보기를 다 마칠 수 없는 무한한 사진. 유독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면 말더듬이가 되고 눈이 멀게 된다. 엄마가 찍혀 있는 사진들이 그렇다. ‘엄마’ 사진은 정해진 코드가 없기에 읽기가 불가하고, 읽어 낼 수 없기에 감상의 거리도 확보될 수 없다. 자기만의 고유한 엄마를 지시하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알아챌 수 있고, 내가 볼 때 비로소 완결된다. 내 몸과 맘에 꼭 달라붙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생생하게 현존하므로 사진이 곧 내가 되는 특별한 경험에 이르게도 된다.
이 글을 쓰는 일 년 전 오늘의 나에게는 엄마를 만질 수 있는 날이 20여일이 남았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엄마가 살아 있는 20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늘, 항상, 나중에야 알게 된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에 내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되듯이, 사랑이 떠난 후 사랑을 알아보듯이. ‘시간의 문’(셔터)을 통과하는 사진처럼, 사라져버리는 삶처럼, 사진이 결정적으로 알려주는 궁극적인 것의 자명함을 <엄마>를 보며 깨닫게 된다.
최연하(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