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사진과 기상사진-같고도 다른 세계

곽윤섭 2008. 03. 25
조회수 10338 추천수 2

 서울 도심의 서로 가까운 두 곳에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하나는 사진기자들이 한해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가려뽑은 사진들을 볼 수 있는 한국보도사진전, 또 하나는 일반인들이 찍은 기상사진들 중에서 가려뽑은 기상사진전이다. 그 2곳을 다녀왔다.

 

 오랜 기다림과 순간의 포착

 

◇ 한국보도사진전(시청앞 광장)

  24일 오전 11시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 야외전시장에서 제44회 한국보도사진전이 막을 열었다. 전국적으로 한국사진기자협회 소속 회원들인 사진기자는 약 5백여명에 이른다. 이 중 149명의 기자들이 2007년 1년 동안 취재된 사진 380점을 출품했고 스폿뉴스 등 7개 부문(각 부문마다 스토리부문 별도) 등 총 14개 부문의 수상작이 가려졌다. 부문별로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뽑았고 전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한 작품에 대상이 주어졌다. 금년의 대상은 뉴시스의 남강호 기자가 출품한 'MB 코 잡혔네' 가 받았다. 

시청앞2.JPG

봄바람이 다소 쌀쌀하다. 따뜻하게 입고 시청앞으로 가서 사진을 보자.

 오후 4시의 시청 앞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일요일 내내 비가 오더니 이날은 다행히 맑게 개어서 사진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데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31개의 튼튼한 철제 파티션에 모두 160여점의 사진이 친절한 캡션과 함께 오가는 시민들을 맞고 있다. 한국보도사진전에 출품되는 사진은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는 모든 종류의 사진을 망라하기 때문에 내용이 다양하다. 숨막히는 사건 현장, 아름다운 자연 현상, 웃음과 감동이 넘치는 풍경, 땀이 얼룩진 스포츠의 한 장면 등이 있는가 하면 패션, 요리, 공연 등을 기록한 사진도 있다. 인물(Portrait) 분야도 구분되어 있다.

 사진전시회의 심사위원들이 대상과 최우수상을 선정했지만 사진을 보는 시민들마다 반응은 다르다. 대학에서 광고사진을 전공한 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정민규(25)씨는 스포츠 단사진 부문의 최우수작인 ‘어림없다 피노키오’를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정씨는 "사진이란 일상"이라며 신디 셔먼의 색감있는 사진이 충격적이었으며 사진 전공자답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사진가 ‘시마모토 마리사'의 작품세계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진기자들은 대단한 사람이라며 순간적인 포착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린 것을 사진에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사진기자회장이 뽑은 ‘서민들의 소박한 점심’

낙중0001.JPG또 다른 인터뷰상대를 찾다가 한국사진기자회장과 마주쳤다. 이날 행사의 주최측인 한국사진기자협회장인 김낙중(47·문화일보 사진부)씨는 "사진기자들이 기록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날의 ‘현상’이며 사진기자들은 역사의 ‘현상’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라고 회원들을 평가하고 "많은 시민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늘 열려 있는 광장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으니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보시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에게 장르와 수상작에 구애받지 말고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르라고 하자 피처 단사진 부문의 최우수작인 ‘서민들의 소박한 점심’을 골랐다.


 

사진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 즉 사진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사진책을 볼 땐 글로 쓰여진 책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두세 배는 더 들여야 한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의무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글읽기를 배웠고 문법을 배웠다. 어려운 한자어나 법률, 경제, 정치 등 전문용어가 없다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진읽기를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사진을 보는 것이 어렵고 생소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보다 꼼꼼하게 사진을 감상하던 남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가 구경하고 있는 것은 시청방면에서 사진을 보면서 걸어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파티션에 있는 사진이었다. 거기엔 2007년의 기록이 아닌 역대 보도사진전 수상작들이 걸려 있다. 그의 이름은 김덕영(63·의정부)씨. 그가 끝까지 감상을 마친 것을 확인한 뒤 말을 걸었다.

 

-사진 보신 소감이 어떤가요?
 =(일반인들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진들을 보니까 참 좋으네요.
 
 -어떤 것이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까?
 =새들 사진, 사건 사진, 사람들 사진이 모두 다 좋았는데 하나하나가 다 역사적 현장이지 않는가요.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꼽는다면?
 =헌책을 찍은 사진이 있던데요.(그가 지목한 것은 포트레이트 단사진 부문에서 입선한 ‘어느 젊은 헌책방지기의 이야기’였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책이 푸대접을 받고 있어요. 특히 보물같은 좋은 책들이 많은데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게 모두 전자매체(인터넷?) 때문이에요. 그런데 저 사진의 젊은이는 헌책을 꿋꿋이 지키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저씨0001.JPG

김씨가 비운의 괭이갈매기-(영남일보 박진관)를 보고 있다.
 
 식견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하나를 더 골라보시라고 권했다. 이번에 그가 꼽은 것은 네이쳐 스토리 부문의 최우수작 ‘비운의 괭이갈매기’였다.
 =가슴이 아픕니다. 낚시꾼들의 몰지각한 행동 때문에 뜬금없는 해를 당한 갈매기의 처지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도 눈물겹고요.

  제44회 보도사진전은 3월 30일까지 열린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상자를 중심으로 사진기자들이 안내데스크를 지키므로 작품설명을 원하면 사진기자한테 안내를 받는 드문 경험도 할 수 있다.

시청앞1.JPG

지하철 시청역을 빠져나올 때 이 여인은 동전통을 놓고 계단에 앉아 있었다. 좀이 쑤셨는지 땅으로 올라와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보고 있는 작품은 '로드킬-견공들의 항의' (매일신문-박노익)이다.

 

 위의 기사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몇 개만 소개한다. 시청앞엔 더 많은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전시회2.jpg

 어림없다 피노키오-스포츠 단사진 최우수(일간스포츠 김진경)
 

전시회3.jpg

서민들의 소박한 점심-피쳐 단사진 최우수(중부매일-김용수)

전시회6.jpg

어느 젊은 헌책방지기의 이야기-포트레이트 단사진 입선

(중앙일보시사미디어-정치호)

 

기상사진은 ‘역사의 기록’, 생활사진가도 사관

 

기상사진 특별전(지하철 경복궁역)

  시청에서 지하철을 타면 다소 복잡하다. 2호선 시청역에서 출발해 을지로 3가역에서 3호선을 갈아타고 경복궁역에서 내리면 지상으로 나오기 전 지하공간에서 서울메트로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같은 날 오후 이곳에선 제 25주년 기상사진 특별전이 시작됐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고 1754명이 출품했다. 말석을 차지해 심사에 참가했었기 때문에 남다른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사진 하나하나가 모두 볼 만했다. 심사할 땐 모니터와 작은 크기의 인화지로 봤는데 이날은 20x24인치의 큰 사진으로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아저씨6.jpg. 역시 사진은 크게 봐야 한다.

  특별전 개막 축사에서 정순갑 기상청장은 "이번 사진전에 출품한 1754명 모두는 자연현상을 기록한 ‘역사의 기록자’라고 할 수 있으니 옛날 기준에서 보면 사관(史官)의 역할을 수행한 소중한 분들"이라고 노고를 격려했다. 한국보도사진전에 출품한 사진기자들의 사진만 역사의 기록인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 청장의 관점은 사진의 속성을 정확히 본 것이라 하겠다.

 

 

 

  축사하는 정순갑 청장

 

  전시장엔 2008년 수상작 50점과 함께 1984년부터 역대 수상작 50여점이 함께 걸려 한층 흥미를 더했다. 긴 지구의 역사에서 고작 25년만에 자연현상 자체가 뭐 그리 크게 변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2008년 대상인 ‘국지성 호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아름다운 자연현상과 공격적인 자연현상으로 구분해봤다. 공격적인 현상만을 놓고 84년부터 수상작들을 보면 태풍, 해일, 홍수로 인한 피해를 담은 사진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국지성 호우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던 상태에서 기습적인 피해가 생기는 일이 잦아졌다. ’국지성 호우’라는 현상 자체가 새로운 자연현상은 아니다. 과거에 비해 잦다 보니 그 만큼 국민들의 관심도 높아졌고 사진에 찍힐 확률도 높아졌을 것이라고 기상청관계자는 분석하고 있다. 그 외 무지개, 채운, 안개 등 아름다운 자연현상을 담은 사진이 다소 어두운 듯한 메트로 미술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사진엔 집중 조명이 있어 관람엔 전혀 문제가 없다.

 

최우수상은 "이무기가 승천할 것 같은 느낌"

이용호1.JPG

 

 시상식에 참석한 최우수상 수상자 이용호(41)씨를 만났다. 대구에서 섬유기계 수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씨는 이날 일본 바이어와 서울에 올 일이 있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2005년부터 제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풍경에 주로 관심이 많았다. 최우수상 사진을 찍던 날은 아침에 비가 오더니 오후 들어 개기 시작했는데 이런 날은 일몰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으려고 맘먹고 있었다. 시간을 맞춰 평소 시내가 잘 내려다 보이는 장소인 우방랜드 옆 옛 자동차극장터에 올라갔는데 해가 지는 서쪽이 아니라 반대쪽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마치 이무기가 승천이라도 하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고 광각으로 찍기 시작했다"고 2007년 8월 21일 오후 7시를 기억했다.  

 "약간씩 화각을 조절하면서 10여컷을 찍었습니다. 왼쪽에 푸른 하늘이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놓고 망설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씨는 하늘을 포함시켰고 대부분의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최우수상에 뽑혔다. 푸른 하늘이 있어 더 대비가 되었고 기습적인 호우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기상청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대구 남동쪽 경산지역엔 시간당 56mm의 국지성호우가 내렸으나 대구기상대는 0.0mm를 기록했다. 여름철 소낙성국지성 호우는 좁은 지역에서도 강수량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아줌마1.JPG

이경자씨(왼쪽)가 꼼꼼하게 작품을 살피고 있다.

등산복 차림의 여성을 만났다. 이경자(63·서울 압구정동)씨는 "인터넷 사진클럽에서 보던 멋진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황사를 담은 사진은 몽환적 느낌이 들었어요"라며 주로 색이 좋은 사진을 선호한다고 했다. 메트로미술관은 지하철 승객들의 통로이므로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 그렇지만 유심히 사진을 보는 사람은 역시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이씨는 낭만포토클럽 회원으로 20년 전에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다 말았는데 최근에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며 현재 캐논 30D와니콘 FM2를 쓴다고 한다.
학생1.JPG 교복을 입은 두 학생의 사진 보는 시선이 자못 진지했다.  유강현(18·서울 농학교)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입선작 ‘대왕암의 바다안개’를 꼽았다.  유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이 이런 것"이라며 "다른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취재수첩에 소감을 적어주었다.
 

 

2008_01.gif

국지성 호우- 최우수상 (이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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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무지개다리 입선 (선우진)

 

2008_09.gif

채운-입선 (김두호)
  

이 사진전은 3월29일까지 열린다. 두 전시회 모두 거리와 지하철 통로에서 열리니 무료다.
 
 시청 앞 김씨와 경복궁역에서 만난 이씨의 말처럼 전자매체(인터넷)에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클릭을 하면서 보는 사진과 다리품을 팔아 전시회장에서 보는 사진은 격이 다르다. 일단 크기가 다르므로 눈에 잘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공기가 다르다. 기자건 시민이건 카메라 든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곳 저곳에서 힘들게 다리품을 팔아서 찍은 사진은 역시 현장에서 보는 것이 제격이다.   


 한겨레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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