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사진의 차이

곽윤섭 2008. 04. 15
조회수 13221 추천수 1

   지난 글 '적정노출=나에게 맞는 노출' 편을 끝으로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관한 이론 강의를 마쳤습니다. 이제는 직접 사진을 찍으며 배워보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전에 잠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노출이 과하다?=빛이 많다’란 글의 제목을 보고 몇몇 분들께서 “낚시 아니냐”는 지적을 해 왔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말씀 드리며 약간의 해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사진계에서는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많을 경우 통상 “노출 오바(over)”라고 표현해 왔습니다. 저 또한 십수년 동안 그런 말을 써왔습니다. 우리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영어도 아닌 일본식 발음을 아무런 반성없이 관성대로 써 온 것이지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던 차에 몇년 전 사진강의를 시작하던 무렵부터“노출 과다”로 용어를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노출이란 단어가 이상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고요? 노출은 빛의 양을 표현하는 사진용어일 뿐입니다.

 

프레임 구성 1편-그림과 사진의 차이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최근엔 콤팩트카메라에서 DSLR로 바꾸는 바람도 불고 있다고 한다. 100만원대에 육박하는 고가이므로 그 정도 카메라를 쓰는 분들은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 사진 강좌도 많이 생겼다. 필자도 업무와 겹치지 않는 시간을 할애해 강의를 하고 있다.

 

노출편을 끝으로 이론은 마쳤기 때문에 셔터를 누를 순 있게 되었다. 그 정도 수준에서 사진찍기를 시작해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막막한 분들이 있을 것이므로 강의실은 계속 이어간다. 어느정도 강의실의 내용들을 쫓아오다가 뭔가 깨달았다 싶으면 언제든지 카메라를 들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도 좋다. 브레송이 '탕가니카호수의 세 소년'을 보다가 거리로 나간 것처럼.
 (
http://photovil.hani.co.kr/board/view.html?uid=237030&cline=9&board_id=pv_elder1 참고) 

 

사진을 잘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배우는 사람도 많고 가르치는 곳도 많으나 만족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진 잘 찍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물어보면 거의 손을 들지 않는다. 실제로 실력이 우수한데도 소심하거나 한국사람들의 미덕인 겸양때문에 손을 들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진이 왜 부족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이야길 들어봤다. 그리고 그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증상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마침내 대표적인 몇가지 증상을 구분해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엮어낼 수 있었다. 이제부터 그 처방을 한가지씩 풀어나갈 것이다. 사람들마다 체질이 달라 병을 치유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하듯, 또한 체질에 맞는 약이 따로 있듯 앞으로 드릴 이야기들 중에 여러분들의 눈이나 마음이나 몸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필자는 더할 나위없이 기쁘겠다. 
 

아무리 손이 빠른 화가도
 
 사진 뿐 아니라 지성계 전반에서 존경받는 수전 손택여사가 "내가 보기에 오늘날의 작가들 중에서 이 사람과 견줄 만한 이가 없다"고 평을 한 사람이 있다. 미술평론가이자 작가, 극작가인 존 버거가 그 주인공이다. 사진가 장 모르와 존 버거가 함께 펴낸 책 '말하기의 다른 방법'(눈빛출판사)을 보다가 그림과 사진의 차이에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내 강의를 들으러 온 생활사진가들 중 그림을 전공한 이들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림과 사진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답으로 나와있는 것은 없다. 검색창에서 열심히 찾아볼 필요도 없다.

 

역사속에서 근원을 찾아보면 그림이 먼저 생겨났고 나중에 사진이 등장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류의 여러 발명중 그림은 문자에 선행한다. 최초에 인류의 조상은 왜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가볍게 추측하면 심심해서 그렸을 것 같다. 동굴속에서 몇 달 몇 년을 지냈을 것인데 뭔가 할 일이 딱히 없으니 이것 저것으로 동굴의 벽을 문지르다가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그 중엔 안방 벽을 지저분하게 했다고 야단 맞은 아이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 동굴 안에선 제일 잘 그린다고 소문이 난 아저씨도 있었을 것 같다.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뭔가 보고 온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때 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더 깊이 들어갈 일이 아니니 이 정도 한다.

 

대체로 그림은 성당이나 사찰의 벽 아니면 천정에 그렸다. 나중에 캔버스로 이동하면서 네모난 틀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화가들의 직 간접적인 후원과 영향을 받으며 탄생한 사진도 네모난 틀에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그림이나 사진이나 네모난 곳에 그려지거나 표현된다는 점은 같다.

 

그림과 사진의 가장 큰 차이는 구성에 있어서의 시간적 차별성에 있다. 그림의 경우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보다 전에 일어난 사건들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가가 준비해놓은 밑그림, 화가가 즐겨 쓰는 색채, 화가가 즐겨 인용하는 빛 등은 모두 과거의 경험과 예술적 소양에서 시작된다. 거기에 상상력이 추가된다. 상상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도 뛰어 넘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그릴 수도 있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릴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일마저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이 빠른 화가도 실시간에 벌어진 모습을 그대로 옮길 순 없다. 줄여서 말하자면 그림은 관찰과 기억력과 상상력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다.  

 

진남관1.JPG

2008년 4월 7일 여수 진남관. KBS 방송 <한국사傳> 촬영현장. 그림에선 과거도 그릴 수 있듯이 드라마나 영화도 과거를 재현해서 만들 수 있다. 사진은 '지금 이순간' 만 찍을 수 있다.


글 사진/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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