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명장면 포착? 아는 게 힘!

곽윤섭 2009. 02. 13
조회수 1146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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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댈러스에서 열린 독일과의 경기에서 3―2로 따라붙는 중거리슛을 터뜨린 홍명보가 뛰어오르고 있다.

 
눈깜짝할 사이 바뀌는 선수들의 움직임
경기 규칙·선수 특성 등 알면 예측 가능

 

지난 시간에 이어 활동의 정점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스포츠 사진을 사례로 들겠습니다.

 

움직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찾아내는 것은 특히 스포츠 사진에서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스포츠 사진은 어렵습니다. 인물이든 풍경이든 다른 소재의 사진들보다 스포츠사진이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동작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은 빠릅니다. 경쟁해서 남을 이기려고 하다 보니 갈수록 빨라지는 모양입니다.

 

어떤 면에서 사진가들은 낚시꾼과 비슷합니다. 놓친 고기가 더 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흑산도 앞바다에서 다금바리가 물었다가 도망갔는데 거의 송아지만 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제론 세숫대야만 했던 것이 이야기를 옮기면서 갈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눈으로만 찍은 사진은 늘 기가 막히는 명장면입니다. ‘박주영이 오버헤드킥을 했는데 몸이 완전히 180도 뒤집혀 허공에서 거꾸로 자전거를 타는 형국이었고 발끝에 공이 딱 붙어 있었으며 바로 옆으로 수비수 두 명이 박주영을 가리진 않고 입을 딱 벌리고 손도 못 쓰는 장면’을 눈으로 봤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실제론 공을 슬쩍 차올리는 장면이었을 수도 있지만 사진기자들의 이야기 속에선 갈수록 멋있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명장면을 놓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코너킥을 차는 장면을 찍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공을 지정된 장소에 세워두고 언제 차게 되는지도 대충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운동장에서 공을 다투는 순간에 벌어지는 일은 예측하기도 어렵고 빠르고, 또한 다른 선수들에게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경기 흐름 분석할 줄 알면 순간 포착에 유리

 

찍기 어려운 것이야 거의 모든 종목이 다 그렇지만 경기의 규칙을 잘 알고 있어야 그나마 잘 찍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배구의 규칙을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봅시다. 세 번 만에 공을 넘기기 때문에 세터가 토스를 올리면 누군가가 연타든 강타든 꼭 처리를 한다는 것을 모른다면 스파이크하는 사진을 찍는 것이 난감해질 것입니다. 야구는 더 어려운 편입니다. 시리즈가 아닌 시즌 중의 경기라면 시합 중에 극적인 순간을 잡아내야 하는데 어떤 날은 9회를 끝까지 보고 있어도 ‘그림이 안 되는’ 날도 있었습니다. 야구장에 나간 사진기자들은 통상 주자가 베이스에 나갔을 때부터 그림을 노립니다. 일단 상황이 베이스라인 근처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보장되어 있으므로 초점을 미리 맞추어 둘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600미리는 심도가 대단히 얕아서 초점이 조금만 틀려도 사람의 형체가 쉽게 무너져버립니다. 치고 나갔든 걸어 나갔든 주자는 도루를 할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왕년의 홈런타자 이만수도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도루를 했습니다. 도루하는 사진을 노리는 이유는 주자와 해당 베이스를 지키는 야수가 서로 더 빠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베이스를 향해 몸을 날리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야수와 주자의 몸이 충돌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더할 나위 없이 박진감 있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러나 사진기자 좋아하라고 그렇게 입맛에 딱딱 맞는 도루장면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종범이 다이빙캐치를 하는 장면을 찍는 것보다는 도루장면이  쉬운 편입니다. 다이빙캐치의 경우 초점을 따라잡는 것이 몹시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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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잠실경기에서 6회초 OB의 정수근이 김동주의 뜬공 때 LG 김동수가 지키는 홈으로 돌진하고 있다.         1998년 5월


이 정도 되면 규칙 외의 다른 것도 알아야 합니다. 선수의 특성, 경기의 흐름도 알고 있어야 유리할 것입니다. 이승엽이 1루에 있고 경기는 큰 점수차이가 나고 있다고 합시다. 이런 상황이라면 도루를 기대하며 600mm 렌즈를 2루에 맞추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승엽은 장거리 타자인데다가 통산 도루도 몇 개 되지 않고 98년 시즌엔 하나의 도루도 없었습니다. 이승엽은 달리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부상에 대한 부담 때문에 도루를 좀체 시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속 구단도 이승엽에게 도루를 기대하진 않습니다. 도루하다 다치는 것보다는 고비 때 한방을 쳐줄 강타자가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하물며 점수 차가 많이 나고 있을 때 이승엽이 일없이 도루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 노하우는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심지어 고교야구 8강전에 콜드게임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10:0으로 앞선 홈팀의 투수와 포수가 5회 초 수비를 마치고 갑자기 4강 진출을 기뻐하며 포옹하는 장면을 놓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스포츠사진은 어렵습니다. 경기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단 한 번만 나올 수도 있고 그 순간에 나의 카메라에 이상이 생길 경우의 수는 너무 많습니다. 요즘은 필름이 떨어질 경우는 많이 줄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에선 고화질로도 몇백 장씩 찍을 수 있습니다. 선수나 심판이나 심지어 다른 카메라에 의해 내 렌즈 앞이 가릴 수도 있습니다. 초점이 안 맞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나의 앵글과 다른 방향에 있는 경우입니다.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뒷모습만 열심히 찍는 수밖에 없는데 만약 그날 그 경기장에 있었던 모든 사진기자들이 뒷모습만 찍었다면 용서가 되겠지만 그런 행운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카메라는 갈수록 좋아지기 때문에 나만 놓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찍는 경우는 있어도 나만 찍고 다른 사람들은 다 놓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입니다.

 

경기장 안 처음 자리잡는 위치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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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장 문 앞에 줄지어 놓여있는 사진기자들의 취재장비. 이 순서에 따라 경기장에 입장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듯 사진기자들에게는 스포츠사진이 다른 사건·사고 사진보다 쉬운 측면도 있습니다. 과거 민주화투쟁이 격렬하던 시기, 광화문과 종로 등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쫓고 쫓기면서 벌어지던 시위와 달리 스포츠사진은 경기장에서만 벌어집니다. 선수들은 웬만해선 경기장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큰 장점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선수들은 멀리 있다가도 사진기자가 보이면 일부러 다가와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줍니다. 물론 사진기자가 예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카메라 저 너머 온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팬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스포츠 사진의 어려움은 그밖에도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진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한데, 무대의 공연을 보듯 한번 자리 잡으면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서 처음이 중요합니다. 경기장 문도 열리지 않은 이른 시간, 사진기자들은 각자 가지고 온 장비들을 문앞에 줄을 세워 입장할 순서를 정합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문이 열리면, 제일 찍기 좋다는 코너 쪽에 앉기 위해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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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에서 우승한 프랑스 선수들이 몸을 쌓아 올리고 있다. 선수들은 사진기자들이 찍기 편한 장소에서 이런 장면을 연출한다.  2001년 6월
 

스포츠 사진에서 활동의 정점을 잡아낸다는 것은 정해진 장면에서 늘 한가지 사진이 나온다는 말은 아닙니다. 같은 종목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고 이것은 전적으로 사진기자들의 판단에 달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배구 경기에선 주공격수의 타점 높은 스파이크 순간이 최고의 사진으로 평가받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독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감에 따라, 힘과 긴장감이 넘치는 스파이크 순간도 자주 반복해서 지면에 등장하니 물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대안으로 가로막기나 몸을 던져 수비하는 순간도 뛰어난 사진거리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승팀이 결정된 뒤를 노려보라

 

2001년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챔피언 결정 최종 5차전을 찍으러 갔습니다. 신세계와 현대가 2승2패를 나란히 기록하면 마지막까지 간 상황이라 어느 팀이 이기든 우승이었으므로 경기 사진을 그리 열심히 찍진 않았습니다. 축구와 달리 한 두 개의 결승골이 중요한 승부가 아닌 것입니다. 설령 한 점 차이로 역전하는 순간의 슛 장면이 있다 해도 농구 사진에서 좀처럼 슛 장면 자체가 그림이 되질 않습니다. 덩크슛이 아니라면 공은 손을 떠난 상태에서 림을 통과하기 때문에 역전의 버저 비터(Buzzer Beater)가 터진다 해도 공과 선수의 표정이 한 앵글에 동시에 잡히긴 몹시 어렵습니다.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농구경기 사진을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덩크슛, 드리블, 압박수비, 블로킹, 리바운드 등의 상황에서 역동적인 장면이나 표정이 보이는 사진이 있을 뿐 승부를 가르는 ‘결승골 순간’에 해당하는 그림 좋은 사진은 극히 드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우승팀이 결정된 뒤부터 그림이 쏟아진다는 통계적 경험에서 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최소한 선수끼리 팔짝 뛰거나 환호하는 장면 정도는 꼭 나옵니다. 축구나 야구처럼 팀의 인원이 최소한 세 명이 넘는 단체 종목에선 우승하면 헹가래를 치는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권투나 유도 같은 종목의 선수는 우승을 해도 혼자서 감독을 헹가래를 칠 수가 없으니 업거나 안고 들어올립니다.

 

여하튼 헹가래는 사진기자들의 입장에서 특히 반갑고 기다려지는 소중한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로 던져진 사람의 얼굴이 내 카메라 쪽을 향해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지만 그 정도 위치 선정은 할 수 있어야 사진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위치선정을 못하는 사진기자도 있는데 사실 저도 가끔 이 부류에 포함되곤 합니다.) 아무리 위치를 잘 잡아도 공중에 던져진 사람이 고개를 갑자기 돌려버리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우승이 확정된 다음에도, 사진기자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림이 안되게 좋아하고들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우승 장면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해서 좀 심드렁해져 있었는데, 그래도 잊지 않고 주섬주섬 헹가래를 준비하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이날은 68:65로 경기가 끝났고 막판에 역전을 거듭하는 시소게임이 이어졌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이 몹시 약해졌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두 번 들어올리다가 갑자기 단장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계속 셔터를 누르곤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저런 일이 생기자 실망스러웠습니다. 우승 뒤풀이를 확실히 보여줘야지 저게 무슨 성의없는 일인가 싶었는데, 선수들이 킥킥거리면서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살짝 고의가 섞여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승팀의 뒤풀이사진 중에서 이런 장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진이면 당연히 독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 마감 때 이 사진을 강력히 밀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른 신문들에는 그저 헹가래를 치는 장면이나 아예 다른 사진이 실렸던 것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이 납니다. 독자들에게 잠시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스포츠사진의 관점에서도 헹가래 중에 던져진 사람이 가장 높은 정점에 있지 못하고 낮은 곳에 떨어져 있지만 분명한 활동의 정점을 찍어낸 사진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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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주인공은 머리를 감싸고 있지만 다치진 않은 모양이다. 다음날 "사진이 마음에 드니 한 장 보내달라"는 전언이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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