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현장의 파노라마들

곽윤섭 2009. 08. 11
조회수 9503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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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계단 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슈팅 이미지전②-강홍구의 ‘은평뉴타운 연작’

 

 

파노라마카메라라는 것이 있다. 렌즈가 좌우로 회전하면서 넓은 각도를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일컫는 말인데 지금은 초광각렌즈가 있어 렌즈 자체의 회전 없이도 넓은 각도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탁 트인 시야를 찍기 편하기 때문에 풍경을 담는 데 널리 이용되는 카메라다.

 

강홍구의 은평뉴타운 연작은 파노라마기법으로 촬영되었으나 파노라마카메라로 찍은 것이 아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면서 금방 알아챌 수 있는데 몇 장의 사진을 이어붙여서 넓은 풍경을 보여준다.

 

-이어붙인 자국이 보인다.

=한 컷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다. 여러 장을 이어붙였기 때문에 파노라마카메라와 다른 이미지가 나타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흰 개 2009’를 보면 왼쪽 물웅덩이에 흰 개 두 마리가 보인다. 처음 그 컷을 찍고 났더니 그 중 한 마리가 오른쪽으로 걸어나와서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이어붙인 사진들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컷에 등장한 흰 개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엔 하나의 시간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여러 시간대가 압축되어있는 것이다. 컷마다 시간 차이를 두었다.

 

강홍구는 은평뉴타운 연작을 2002년 무렵 우연히 찍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는 동네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는데 갑자기 뉴타운이 발표되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결국 지속적으로 찍게 되었다고 한다. 은평뉴타운뿐만이 아니라 서울은 온통 개발이 진행중인 곳이 많다. 최근만 해도 참사가 일어났던 용산이 그랬고 현재는 아현동 일대가 민둥산처럼 변하고 있다.

 

원주민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아 사람 배제

 

-용산참사가 상징하듯 재개발현장은 처절한 싸움으로 점철되는 곳도 있다. 사진으로 비교한다고 하더라도 용산 재개발을 둘러싼 풍경과 은평뉴타운 연작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은평뉴타운은 그린벨트가 많았기 때문에 면적이 넓고 인구가 적은 편이었다. 한양주택단지를 중심으로 일부 주민의 저항이 있긴 했지만 용산과 같은 격렬한 거부와 참사는 없이 지나간 편이다. 내 사진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것은 가능한 한 원주민과의 사적관계를 배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풍경인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내가 그 정도까지 에너지와 능력이 없고 또 거리를 두고 풍경이 말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접근할수록 개발행위에 대한 분노와 감정이 복잡해지고 커져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같은 재개발현장을 사진으로 보여주더라도 작가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이 동원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전쟁을 보여주는 방식도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포탄이 터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고 사람 없이 전쟁의 폐허를 보여주는 사진도 있는 것이다. 그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 따질 일은 없다. 다만, 작가의 관점이란 것이 있을 뿐이다.

 

개발지의 인위적 풍경은 ‘풍경의 학살’

 

-다른 인터뷰에서 ‘풍경의 죽음’이란 단어를 쓴 적이 있다.

=개발하는 곳마다 자연친화적인 풍경을 넣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상 개발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그렇지 않다. 먼저, 사람들을 비운다. 옛집들은 흔적도 없이 싹 쓸어버리고 언덕도 모두 깎아낸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들어선다. 길, 시냇물, 나무 등 모든 자연풍경은 완전히 인위적인 상태로 들어선다. 그것은 사람이 가꾼 자연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풍경이 아닌 가짜 풍경, 인조 풍경일 뿐이다. 그러므로 풍경의 학살이라고 한 것이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주의깊게 관찰을

 

-작가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주의 깊게 관찰하여야 한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 준비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

=재개발현장을 기록하면서 헐리기 전 상태의 집들을 찍어왔다. 산동네를 다니다 보니 절묘하게 지은 집들이 많았다. 열악한 지형조건, 예를 들어 바위에 붙어있는 집들도 있었다. 이젠 모두 헐리고 없는데 사라진 집들에 대한 기념비적 작업이라고 할까? 

 

강홍구는 1976년 목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1990년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안공간 풀(2003), 갤러리 숲(2003), 리움미술관-로댕갤러리(2006), 도쿄 space kandada(2006), 몽인아트센터(2009) 등에서 개인전을 했으며,《아시아 아트 나우》(쌈지갤러리, 북경 아라리오, 2007),《한국현대사진 60년》(국립현대미술관, 2008),《모호한 증, 애매한 겹》(갤러리 룩스, 2009)등에 출품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아래에 소개한 강홍구의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메모”는 그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설명한 것으로, 그의 사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의 전문은 첨부파일로 올린다.

강홍구씨의 <은평 뉴타운에 관한 어떤 메모> 원문보기

 

현실이 사진을 편집한다.

 

그리고 갑자기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었다. 뉴타운이 발표되자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의 하나는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기 이전에 찍은 모든 사진들의 맥락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사진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존 택의 말이 옳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저 일단 찍어 두자 내지는 농촌과 도시 사이의 접점과 변이를 추적해 보려는 의도가 있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사라진 뉴타운 지역에 대한 기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먼 훗날이 되리라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현실의 변화가 사진의 맥락을 바꾸고 사진을 다시 편집하고 위치를 전환 시켜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개발적 상상력-시골스러운 변두리 동네를 쓸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다는 토목공사적 상상력이 사진적 상상력을 훨씬 앞질러버린 것이다. 때문에 뉴타운 이후의 사진은 결국 뉴타운에 대한 우연한, 의도하지 않은 기록 사진의 성격을 띠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든 간에. (중략)

 

내 사진과 기타 작업 결과물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럴 의도도 없었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이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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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나무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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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중장비들 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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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폭포동 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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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한양주택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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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흰 개 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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