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9> 보라, 남과 여· 감각과 정신 혼융 ‘마법의 색’

곽윤섭 2009. 08. 14
조회수 17067 추천수 0
보라색과 회색
자연에서 가장 드물고 바래지않아 ‘권력’
흔히 널려있는 회색, 중립이면서도 엉큼

 
 
Untitled-2 copy 2.jpg색을 찾는 미션을 위해 강의를 진행하면서 먼저 염두에 둔 것은 실제로 제가 거리에서 해당 색을 찾아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림물감이나 페인트가게가 아닌 곳에서 그 색을 발견할 수 없다면 이 글을 보는 여러분에게 색을 찾아서 찍어보시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일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행동반경이 그렇게 크지 못합니다. 직장이나 학교를 다닌다면 동선이 제한되어있습니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또는 그 외의 수단이든 아침마다 같은 통근수단을 이용하여 거의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곳을 지나갑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됩니다. 버스라면 창문 너머가 보이겠지만 지하철은 무표정합니다. 간혹 역 구내와 열차의 전체를 컬러가 넘치는 광고로 도배한 경우를 만나기도 합니다만 대체론 별다른 색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다행히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주말엔 형편이 좀 나아질 것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놀이터나 공원을 갈 때 카메라를 들고나갈 수도 있고 동아리를 같이하는 친구들과 가까운 사진명소에 다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나서보니 앞서 6, 7, 8강에서 제시한 파랑, 빨강, 노랑은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색을 찾는 미션 네 번째는 일차색이 아닌 색 중 두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앞의 세 가지 일차색과 다르게 사람들이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 색입니다.
 
잘못 입으면 사형…구약성경에도 나와
 
먼저 보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에바 헬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3~4배 더 많았습니다.
 
 보라는 어떤 상징성이 있을까요? 알다시피 보라는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나오는 색입니다. 남성과 여성,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혼합했을 때 나오는 색입니다. 보라는 위대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에 보라는 지배자의 색, 권력(혹은 폭력), 왕실의 색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보라 중 퍼플입니다. (violet, violation)
 
영국의 왕관은 모두 보라색 벨벳으로 받쳐져 있었고 황제와 왕후의 의상도 퍼플이었습니다. 고대의 퍼플은 달팽이로 만들었는데 먼저 썩힌 뒤 은근한 불에 졸여서 나온 추출물에 모직이나 비단을 담근 뒤 햇볕에 말리면 녹색과 빨강으로 변하다가 퍼플로 변했다고 합니다. 햇빛을 통해서 생겨난 색이니 햇빛에 바래지 않을 것이고 거의 모든 색이 햇빛에 바랬던 시대에 퍼플이 영원을 상징하게 된 까닭이 여기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퍼플을 생산할 수 있는데 1g의 가격은 약 200만 원이라고 합니다. 구약성서엔 퍼플이 가장 비싼 색이라고 씌어있습니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사원의 커튼과 사제의 의복 색을 정해주었는데 그게 퍼플이었습니다. 만들기 어렵고 비싸니 권력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로마제국에서도 황제, 여황제, 황위 계승자만이 퍼플을 입을 수 있었는데 율리우스 시저는 신분에 맞지 않은 퍼플옷을 사형으로 금했습니다.
 
클림트의 여인들은 모두 걸쳐
 
Untitled-1 copy.jpg

한편으로 보라색은 개인적이며 자유분방한 색의 상징입니다. 보라색 옷을 입는 사람은 튀고 싶어 하며 대중과 자신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자의식이 강해야 입을 수 있는 색입니다. 보라는 검정과 함께 마법의 색이며 비밀스러움, 상상력을 뜻하는 색입니다. 만화영화의 마녀들이 주로 보라색 옷을 입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여인들은 대부분 금과 은색이 배색된 보라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보라는 페미니즘의 색입니다. 여성운동은 1870년경 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먼저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여성이 참정권(투표권)을 얻게 되기까진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영국은 1918년, 프랑스는 1944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했습니다. 1908년 영국에서 흰색, 녹색과 더불어 보라를 여권운동의 색으로 발표했습니다. 집회 때 보라색 스커트, 깃털, 구두, 장갑 등을 착용한 남자와 여자들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이 집회 때 착용하는 보랏빛 두건과 현수막은 고난과 승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보라는 자연에서 가장 드물게 발견되는 색이었는데 크고 작은 꽃밭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왕자 만나기 전까지는 신데렐라가 입었던 옷
 
Untitled-3 copy.jpg

두 번째는 회색입니다. 보라보다 더 인기가 없는 회색은 남자의 1%만이 좋아한다고 했을 뿐, 여자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보라와는 달리 회색은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색입니다. 비, 안개, 구름이 모두 회색이며 하늘과 바다도 태양이 없는 흐린 날씨에선 모두 회색입니다.  우울한 감정, 권태, 고독, 불친절, 불쾌함이 모두 회색의 상징입니다. 나쁜 것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반면에 이론적이며 이성적인 색이기도 해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탐정 에르쿨 포와로는 늘 ‘회색의 뇌세포’에 의존해서 범죄와 싸우며 회색은 어렵고 고리타분한 학위논문의 색이기도 합니다. 검정과 흰색의 가운데에 속하기 때문에 중립을 뜻하며 동시에 불안정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회색인’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중립의 불안과 소외의식 등으로 고뇌하는 시대상황이 등장합니다. 회색으로만 그려진 가장 유명한 그림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로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총통의 폭격 명령에 따라 주민 전체가 하루아침에 몰살된 참상을 담고 있습니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가 그녀를 찾기 전까지 회색의 삶을 살았고 회색 옷을 입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도시에선 유난히 회색이 많이 보입니다. 대기오염 등으로 흐릿해진 하늘 아래 회색빛 빌딩 사이로 보이는 거리풍경은 음산하고 우울합니다. 회색은 주변색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 금주의 출사 미션ㅣ보라회색 담기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무의미하게 지나치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색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어서 프레임에 색을 담아낸다는 것은 그 대상의 색이 가진 상징을 소환시켜 이름을 붙이는 것이며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각각의 색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 주변에서 보라와 회색을 찾아 프레임에 담고 어떤 의미가 들어있는지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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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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