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강의실] <18강> 핵심만 잡으면 전체 그 이상, 버려야 얻는다

곽윤섭 2009. 10. 15
조회수 17922 추천수 0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기
욕심 한껏 부려 다 담다보면 게도 구럭도 잃어
감추거나 힌트만 살짝 주면  “이게 대체 뭐야?”
 
 
Untitled-3 copy.jpg

아무리 넓은 화각을 가진 렌즈가 있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한 앵글에 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안렌즈가 있지만 왜곡이 아주 심합니다. 파노라마카메라로 180도 이상의 풍경을 담을 순 있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대상들을 모두 크게 볼 순 없습니다. 사진은 전체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것의 일부만을 담아내는 것이 사진찍기이며 프레임구성입니다.
 
탁 트인 남태평양바다에서 일몰을 바라봤습니다. 멀리 섬이 있고 야자수 나무가 드문드문 보입니다.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면서 떨어지는 해의 왼쪽으론 큰 여객선도 한 척 있습니다. 해를 중심으로 좌우의 공간 비율을 가늠해가면서 섬과 해와 여객선을 모두 한 프레임에 넣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찍는 순간에 이미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에 옮기면서 다시 한번 불만족스러운 사진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빛이나 색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간이 넓은 것에 비해서 알맹이들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전체의 느낌을 한꺼번에 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대신 이번엔 일부만 잘라서 프레임을 만들어봤습니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해의 크기가 큼직하고 윈드서퍼도 크게 보이니 볼 만했습니다. 야자수 나무와 여객선을 포기한 대가입니다. 어떤 사진이 더 좋은 사진일까요?
 
매그넘 사진가 마틴 파가 사기를 친 거라고?
 
Untitled-2 copy.jpg

매그넘 사진가 마틴 파는 ‘주차공간’이란 사진집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집에 실린 모든 사진은 주차장을 찍은 것입니다. 차가 있는 곳은 어디나 주차장을 만들어둡니다. 마틴 파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가 마주친 주차장에서 두 차 사이에 비어있는 하나 남은 주차공간을 담았습니다. 그 사진집을 보면서 ‘용케 하나 남은 곳만 잘도 찾아다녔다’고 생각했지만 서문을 읽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틴 파는 뻔뻔스럽게도 “사진엔 한 대의 공간만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렌즈를 좌우로 조금만 돌리기만 하면 비어있는 공간이 많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원래 사진은 그런 거다. 사진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주차할 자리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한 곳만 비어있는 것처럼 프레임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틴 파가 사기를 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찍은 사진에서 자동차를 지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빈 곳이 있지만 한 곳만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멋지게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정직하게 한 자리만 빈 주차장을 찾아서 찍은 사진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그러나 마틴 파의 사진 그 자체엔 아무런 왜곡이나 거짓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사진은 전체를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일부만 크게 보여주는 것이 분명하고 뚜렷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입니다.
 
지난 9월 말, 사진워크숍을 위해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했습니다. 수도 누메아에서 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섬 일데팡으로 가는 여객선에서 단체로 여행가는 현지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만났습니다.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 수십 명을 보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여러 명을 한 앵글에 담았습니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몸짓이 보기 좋았지만 한명 한명의 얼굴은 작게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인솔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난 다음, 망원렌즈로 갈아끼고 클로즈업을 했습니다.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에서 발랄함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신을 다 담게 되면 얼굴이 작아집니다. 크게 인화를 하면 표정도 크게 나오고 몸놀림도 다 살릴 수 있지만 사진의 크기는 제한되어있습니다.
 
Untitled-4 copy.jpg

정통 회화쪽의 비판 넘어 사진가의 색깔내기 일환

 
풍경이나 인물이 아닌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벤치, 가로등, 탑, 우체통 같은 고정된 구조물이나 자동차, 요트, 연과 같이 움직이는 사물을 찍을 때도 전체를 다 보여주는 것보다는 대상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코끼리의 코부터 꼬리까지 전체를 찍으면 누구나 한눈에 코끼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채 같은 귀, 뱀 같은 꼬리, 기둥 같은 다리, 벽 같은 몸통만 프레임에 담으면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이 사진이란 매체의 약점이나 특성이지만 강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입니다.
 
회화에선 화가 특유의 터치, 시각에 따라 대상을 표현하는 선이나 면이 일그러지게, 때론 더 과장되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는 다른 사람의 해바라기와 아주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셔터를 눌러서 찍는 사진(합성, 해체의 방식을 이용, 사진의 영역을 벗어난 사진과 비교해서)에선 사진가의 임의대로 터치를 바꾸는 것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후보정 프로그램으로 변형, 합성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사진가의 색깔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이야깁니다. 이런 점 때문에 사진이 발명된 순간부터 정통 회화 쪽에서 사진을 얕잡아봤다는 것이며 지금도 그런 관점은 여전합니다. “사진은 고작 해야 눈에 보이는 것만 찍을 수 있을 뿐이다”, “사진은 조형할 수도, 상상할 수도, 이상화할 수도 없다” 는 식의 비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시하는 것이 ‘부분만 보여주기’입니다. 요트의 돛을 찍을 때 주변을 다 잘라버리고 일부만 보여주면 뭔지 잘 못 알아보게 됩니다. 완벽히 실체를 감출 수도 있고 살짝 힌트를 포함해도 좋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뭘까?”하고 궁금증을 불러오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Untitled-1 copy.jpg


◈ 금주의 미션 l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기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기>는 단순히 호기심이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넓은 세상의 프레임 속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을 압축하여 드러내자는 것이 원래 취지입니다.
 
찍을 대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담아 프레임을 구성해보십시오. 불필요한 요소를 약화시키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앵글을 찾아서 프레임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기’는 프레임구성의 기본, 즉 사진의 기본이며 사진만의 장점입니다. 
기간: 10월 15일~10월 21일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강의실

더 과감히 상상하고 발과 가슴으로 찾아라

  • 곽윤섭
  • | 2009.11.03

[16강~19강 클리닉] ▣ 16강 반복된 패턴을 찾아라! 꿈을 신고 뛰어 오를 아이들 떠올려 16강에선 패턴의 반복을 미션으로 제시했습니다. 패턴의 ...

전시회

에드워드 김 사진전 ‘내 마음속 풍경(Images On Mind’

  • 곽윤섭
  • | 2009.11.02

▲ 회전그네 1958년 포항. ▲ 꿈속에서 그려 본 고국산천 1957년 남양주. 전시회 안하기로 유명한 사진가 에드워드 김(김희중. 69) 상명대 석좌...

전시회

사진전 ‘문래동 사람들’

  • 곽윤섭
  • | 2009.10.30

▲ 사진작가 이승우 ▲ 20R -작가 정하일 ‘물레아트페스티벌2009’에서는 <문래동 사람들>이란 주제로 사진전시회를 오픈합니다. 문래동 철공장 지역...

강의실

[미션 강의실] &lt;19강&gt;사진 속의 또다른 사진, 별별 모양의 ‘별난 눈’

  • 곽윤섭
  • | 2009.10.22

프레임 속 프레임 이야기 속 이야기인 액자소설처럼 ‘이중 시각’ 걸치고 찍거나 통해서 찍으면 풍경의 재창조 “사진을 찍는다”는 문장을 다른 ...

취재

주-객이 뒤바뀐 ‘20세기 사진의 거장전’

  • 곽윤섭
  • | 2009.10.15

거장은 잘 보이지않고 기획자만 불쑥불쑥 작품-관객 잇는 다리 역할 넘어 흐름 끊어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 사진의 거...

강의실

[미션강의실] &lt;18강&gt; 핵심만 잡으면 전체 그 이상, 버려야 얻는다

  • 곽윤섭
  • | 2009.10.15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기 욕심 한껏 부려 다 담다보면 게도 구럭도 잃어 감추거나 힌트만 살짝 주면 “이게 대체 뭐야?” 아무리 넓은 화각을 ...

강의실

[미션강의실] &lt;17&gt; 서로 다른 점을 부각시켜 재미있는 사진을

  • 곽윤섭
  • | 2009.10.08

대비를 찾아라 뚱뚱이 옆에 홀쭉이 세워두니 ‘어머, 더 뚱뚱해’ 신문속 고층아파트와 판잣집 딱 봐도 빈부격차   초·중학교의 미술시간, 교탁 ...

강의실

[미션 강의실] &lt;16&gt; 같은 것이 여럿일 땐 생김새와 뜻 ‘무한변신’

  • 곽윤섭
  • | 2009.10.06

패턴의 반복 소녀시대 9명·원더걸스 5명, 솔로와는 다른 효과 대상과 방법 따라 질서, 몰개성 등 자연의 ‘변주’ 처음 이 강의 초반에 제시한 ...

강의실

보지만 말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라

  • 곽윤섭
  • | 2009.09.29

[11~14강 클리닉] 11강부터 14강까지 공감각을 만드는 미션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동안 사진을 올려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1강 하트 만들기엔...

최민식 포럼

사진 속 그들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우리네 삶

  • 곽윤섭
  • | 2009.09.28

<HUMAN 1957-2006> 구매하러가기 인간 |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 눈빛/ 양장 252쪽 / 값 35,000원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가 최민식 선...

20세기 사진의 거장전

  • 곽윤섭
  • | 2009.09.28

파리 아방가르드, 빛의 세기를 열다 2009년 9월 10일 ~ 2009년 10월 29일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 제1전시실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2@...

전시회

플랫폼 2009 “Platform in KIMUSA"

  • 곽윤섭
  • | 2009.09.18

플랫폼 2009는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속 우리의 실제 생활과 연계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강의실

[미션 강의실] &lt;14&gt; 코로 누르고 혀끝으로 찍어 냄새·맛 찰칵

  • 곽윤섭
  • | 2009.09.17

후각과 미각 빛과 색 따라 꽃도 음식도 커피도 향 제각각 향수병엔 희미한 옛사랑 그림자가 어른어른 사진은 전체를 담는 것이 아닙니다. 멋진 풍...

세계적 거장 사라 문의 사진이 온다

  • 곽윤섭
  • | 2009.09.16

사라 문 사진전의 출품작. <샤넬> 때 : 9월 25일(금)~11월 29일(일) 오전 11시~오후 8시 (11월은 오후 7시까지) 휴관일 : 매월 마지막 월요일 9/30...

취재

여성이 찍은 여성으로 명품달력에 새역사

  • 곽윤섭
  • | 2009.09.15

예술의전당 ‘사라 문 사진전’ ‘누드+섹시’ 넘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작품 선봬 ‘톱모델+작가에 한정판’ 피렐리 명성 업그레이드 1972년 4월 ...

전시회

‘관계’ 그리고 너와 나

  • 곽윤섭
  • | 2009.09.11

이상일 사진전 여름의 녹음이 짙어지는 8월, 푸른 바다 도시 부산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은 2009년 8월 14일부터 10월 31일까지 사진가 이상일전을...

사진책

어린 누이가 엄마되고 전쟁에 상처입은 그때 그시절 [1]

  • 곽윤섭
  • | 2009.09.11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구매하러 가기 글 / 김원일 문순태 이호철 전상국 사진 편집 / 박도 눈빛/ 168쪽 / 값 15,000원 이 책은 사진집...

강의실

[미션강의실] &lt;13&gt; 울퉁불퉁 보들보들, 손맛 살리면 사진맛 ‘아~’

  • 곽윤섭
  • | 2009.09.10

촉감을 찍어라 빛 따라 다른 느낌…비스듬한 조명이 ‘마술’ 물과 불 함께 담으면 머리가 먼저 더듬더듬 컴퓨터 화면에서 보든 프린트해서 보든 ...

전시회

시대와 맞물려 돌아간다 사진도 영상도

  • 곽윤섭
  • | 2009.09.07

요술· 이미지(The Magic of Photography)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14명의 사진과 회화, 입체, 영상 작품 50여점이 소개되는...

전시회

균형 속 일탈 그리고 집합

  • 곽윤섭
  • | 2009.09.07

New Perspective 전광영 개인전 더 컬럼스 갤러리에서는 “집합” 이라는 주제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 온 작가 전광영의 지난 2005년부터 현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