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끼리, 사람과 사물, 사물끼리 섞이는 풍경

곽윤섭 2010. 06. 17
조회수 10444 추천수 0
[미션 강의실 시즌2] <16강> 만남
경계 맞대면 새 지평 열리고 꽃이 핀다
퓨전이 대세…부적절한 만남은 망실살

 
img_01.jpg


장면 1-배가 통통하고 목은 길며 팔과 다리는 가느다란 외계인과 어떤 소년이 손가락을 마주 댑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E·T(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1982)의 한 장면입니다. 소년과 E·T의 만남은 자전거가 하늘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광경과 더불어 그 영화의 여러 장면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장면 2-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역사적 장면을 더듬어보겠습니다. 1969년 미국의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합니다. 닐 암스토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인류가 달과 만나는 첫 순간입니다. 몇 장의 사진이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표면 위의 발자국. 암스트롱이 달 표면과 우주 저 너머의 어둠을 배경으로 동료 우주인을 찍은 사진. 그리고 착륙선이 안착해 있는 사진 등입니다. 모두 지구인과 달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입니다.
 
장면 3-3월이면 학교가 개학을 합니다. 이제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유치원에 다니긴 했지만 초등학교는 교문도 크고 교실도 크고 운동장도 큽니다. 만나는 모든 것이 큽니다. 같이 1학년이 된 친구들과도 처음 만나고 선생님도 처음 만납니다. 초등학교부터 길게 보면 대학까지 16년의 긴 장정을 시작하는 입학식의 순간은 아이 인생에 있어 길이 남을 만남의 순간입니다. 그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교문 앞에서, 교실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둘 이상이 마주치면 사건이 되기도 하고 역사가 되기도

 
이번 테마는 만남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납니다. 카페와 커피숍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며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안고 있는 막 태어난 자녀와 처음으로 만납니다. 사람과 동물이 만납니다. 고양이, 강아지 등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날마다 반갑게 만남의 시간을 보냅니다.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만나 바나나를 뺏기기도 하고 염소를 만나 먹을 것을 줍니다. 코끼리는 코를 내밀어 허용된 먹이를 받아먹으며 관람객들과 만나고 인사합니다. 다람쥐, 비둘기, 참새 등도 사람과 익숙해지면 모이를 받아먹습니다.
 
사람과 식물이 만납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보면 냄새를 맡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인사하며 만남을 나눕니다. 큰 나무는 큰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더운 여름날 땡볕 아래 시골길을 걷다가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납니다. 나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늘과 앉을 자리를 제공합니다. 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는 사람을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과 나무는 오래된 친구처럼 보입니다.
 
만남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강아지가 비둘기를 만나 뛰어들 수도 있고 비둘기가 참새와 조우해 함께 공원바닥의 과자 부스러기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만남은 둘 이상의 대상들이 서로 마주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만난다는 것이 어떤 현상인지 말할 수 있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만남’은 한 두 가지 상황만으로 규정할 순 없는 추상적이며 포괄적인 행위입니다. 위에서 예를 들지 못한 다양한 만남이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먹거리문화에서도 만남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치즈와 떡볶이의 만남, 삼겹살과 오징어의 만남, 홍어와 막걸리의 만남 등의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즈가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떡볶이와 마주친 것은 아니겠죠. 서로 다른 두 대상이 한자리에 어울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뜻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고 재미있고 맛있는 조합을 즐겨 찾아냅니다. 퓨전 음식점이 갈수록 늘어나죠.
 
잘못된 만남도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피어난 들꽃 앞에 개발의 상징인 굴착기가 버티고 서 있는 사진을 본다면 그 내막과 상관없이도 일단 잘못된 만남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자연은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후진하다가 전봇대와 접촉사고를 낸 자동차도 위험한 만남이며 철부지 아이의 손에 라이터나 성냥을 들려주는 것은 식은땀이 흐르는 만남입니다.
 
img_06.jpg
 
img_04.jpg
 
img_05.jpg

 
여러 사람 상상력 모아놓고 보니 기가 막힌 장면 속출

 
한 달 전쯤에 제가 함께하는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올림픽공원으로 사진을 찍으러 나갔습니다. 즉석에서 만남을 미션으로 제시하고 사진을 팀블로그에 올리도록 했습니다. 제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만남들이 속속 올라오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여러 사람의 상상력을 모아놓고 보니 기가 막힌 장면이 속출했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살짝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찍은 꼬마를 찧은 사진이 있었는데 제목이 ‘엉덩이와 지구의 충돌(만남)’이었습니다. 사진의 앵글이 낮았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면서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습니다. 꼬마 둘이서 바닥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서 흙장난을 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배경으로 고층아파트들이 보였습니다. ‘한 평의 흙과 동심의 조우’라는 제목이었는데 역시 만남을 창조적으로 잘 해석한 멋진 사진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한 사진은 ‘조우 - 아이들 비둘기와 조우하다’ 였습니다. 왼쪽 편의 소녀가 저쪽의 꼬마와 비둘기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꼬마는 비둘기와 마주친 상태입니다. 만남을 전달하는 사진가의 시선이 맘에 들었습니다. 어깨너머로 저쪽을 같이 쳐다보는 기본이 듭니다.  (사진가는) 소녀의 입장에서 꼬마와 마주쳤다, 혹은 꼬마와 만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소녀의 심리 묘사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진과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img_02.jpg

사진 찍는 것 자체가 이미 만남의 시작

 
사진을 찍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만남이란 행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렌즈 너머로 다른 세상(피사체)과 만날 때의 감흥을 찍는 것이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가가 마주친 세상, 만난 대상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면 모든 사진은 만남을 테마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만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주관적이어야 본인만의 사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면 과하다는 말이 이럴 때 등장합니다.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본인 외에 아무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적절한 수위를 넘어섰다고 할 것입니다. 다수의 대중들이 좋아하는 사진,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깨우침을 주는 사진이 되려면 대중과 호흡해야 하고 어울려야 하며 다가서야 합니다.
 
img_03.jpg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 금주의  미션 ㅣ 만남을 찍어라
 
 이번 테마는 만남입니다. 둘 혹은 그 이상의 인물(대상)들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서로 만나거나 부딪치는 경우를 찍자는 이야깁니다. 시선이나 몸의 방향이 같은 곳을 가리키면 만남을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진가의 시선이 무엇인가를 만났다는 것이 사진에 보이면 그 또한 훌륭한 ‘테마-만남’이 될 것입니다.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만남을 위한 특별 팁-구성) 정지되어 있고 통제되어 있는 배경 앞에서 한 명의 인물을 찍는다는 것은 구성면에서 보자면 쉬운 일입니다. 특성 있는 표정과 빛의 처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니 잠깐 논외로 치면 그렇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을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도 다 결정이 되어있는 상황이라면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그럴듯한 사진이 나옵니다.  그러나 두 명 이상의 인물을 찍게 되는 경우엔 난이도가 갑자기 높아집니다. 우선 인물의 위치만 따져도 여러 가지 대안이 등장합니다. 둘을 어디에 어떤 각도로 세우는지에 따라 사진이 크게 달라집니다. 구성이란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한 명은 서고 한 명은 앉는 경우, 둘이 마주보는 경우, 등을 돌린 경우, 나란히 앞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 경우 등 여러 종류의 구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찍은 사진 올리러 가기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정확한 답을!

  • 곽윤섭
  • | 2010.06.18

속에 든 것과 겉을 다 맞춰주셔야합니다. 겉을 맞추신 분이 없으면 내용물을 맞추신 분들 중에 추첨하겠습니다. @4d4e81d3f9219886bcadb3dc9b503f8...

강의실

사람끼리, 사람과 사물, 사물끼리 섞이는 풍경

  • 곽윤섭
  • | 2010.06.17

[미션 강의실 시즌2] <16강> 만남 경계 맞대면 새 지평 열리고 꽃이 핀다 퓨전이 대세…부적절한 만남은 망실살 장면 1-배가 통통하고 목은 길며...

강의실

[6월 이달의 독자사진]풍경 그 너머 삶-마음 새겨넣어 찰칵

  • 곽윤섭
  • | 2010.06.16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민수(서울 송파구 가락2동)씨와 유장원(전주 완산구 효자동1가)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두 분께 한겨레가 마련...

강의실

[5월 이달의 독자사진]사진은 뺄셈보다 덧셈 우선, +α가 고수의 길

  • 곽윤섭
  • | 2010.06.16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허일(45ㆍ경기 연천군 전곡읍)씨와 채동우(32ㆍ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두 분께 한겨레가 ...

취재

“새로운 곳·사람 만나 세상에 대한 애정 생겨”

  • 곽윤섭
  • | 2010.06.16

박진희 씨 "어느날 골목길 느낌 이끌려눈·귀동냥으로 무작정 찍어" 2005년 가을 어느 날 대학로에서 인사동까지 걸어오다가 어떤 “공허하면서도 묘하...

뭘까요

6월 뭘까요? 문제 나갑니다.

  • 곽윤섭
  • | 2010.06.16

어떤 대상의 일부를 찍은 것입니다. 정답을 아시는 분은 덧글로 올리시거나 @kwakclinic 으로 보내주십시오. 정답자가 많은 경우엔 5명까지 추첨...

뭘까요

5월 뭘까요- 정답 및 당첨자 발표

  • 곽윤섭
  • | 2010.06.16

5월 31일에 마감했던 5월치-뭘까요 퀴즈의 정답을 발표합니다. 문제가 지나치게 쉬웠다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반성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위해 노력...

강의실

시간도 속도도 상대적, 좋고 나쁨도 이중적

  • 곽윤섭
  • | 2010.06.10

[미션 강의실 시즌2] <15강> 느림 혹은 빠름 디지털보다 느린 아날로그엔 기다림의 미학 경쟁시대 악이었던 느림, 웰빙으로 새 생명 느리다 혹은 ...

전시회

모십니다.

  • 곽윤섭
  • | 2010.06.06

전시회정보를 올리는 공간이지만 1주일만 이 자리를 빌어 모시는 글을 남깁니다. 제가 4번째 책을 썼습니다. 제목은 '이제는 테마다'입니다. 출판...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인물에도 풍경에도 사람 향기 밴 36.5℃

  • 곽윤섭
  • | 2010.06.03

<제14강> 따뜻함 월급봉투, 잘 나온 성적표, 휴가통지서 공통점 웃음이나 눈물, 사랑이나 연민에도 묻어 있다 패션쇼는 계절을 훨씬 앞서 나갑니다....

사진책

정곡 찌르는 울림 그대로 찍은 사진

  • 곽윤섭
  • | 2010.06.02

꼭 봐야할 사진책-인간의 슬픔 명품 강의 퍼키스 50년 사진인생 고스란히 'THE SADNESS OF MEN' 구매하러가기  “사진교육이 안고 있는 가...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홀로거나 비었거나 따로의 잔해 ‘원초 본능’

  • 곽윤섭
  • | 2010.05.27

<13> 외로움 달리 찍어야 하는 사진가 고독은 운명 마음이 쓸쓸하면 사진에 흔적 묻어나 사진가들이 추상적인 테마를 걸고 작업할 때 자주 등장...

취재

처절한 4대강, 아름다운 증언

  • 곽윤섭
  • | 2010.05.26

한국 최고 다큐사진 작가 10명 사진전 ‘강 강 강 강’ 현장 고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다큐멘터리사진작가들 10명이 뜻을 같이 한 사진전시가 ...

취재

여섯 여배우의 ‘처음이자 마지막’ 나들이

  • 곽윤섭
  • | 2010.05.25

세실 비튼 사진전 ‘세기의 아름다움’ 헵번, 리, 먼로, 테일러, 가르보, 디트리히 마법이 불러낸 예술, ‘이효리사진’은 없다 패션, 초상사진의 거...

취재

[5월달]뭘까요?

  • 곽윤섭
  • | 2010.05.17

이번 달부터 '뭘까요?' 코너를 한겨레-하니스페셜 지면과 연동시키기로 했습니다. 5월 14일치에 배달되는 한겨레스페셜 특집면의 48면에 '뭘까요?'가 ...

취재

나에게 사진은 마음의 창, 영혼의 프레임

  • 곽윤섭
  • | 2010.05.14

찍힌 첫 기억, 생후 18개월 아들 이겨레군과 딸 이나라양을 즐겨 찍는 이지인(48·서울 강서구 염창동·옆 사진)씨는 평범한 벤처기업에 다니는 직장...

취재

[이달의 독자사진]사진은 뺄셈보다 덧셈 우선, +α가 고수의 길

  • 곽윤섭
  • | 2010.05.14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허일(45ㆍ경기 연천군 전곡읍)씨와 채동우(32ㆍ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두 분께 한겨레가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 겉과 속, 빈부도 사라진 2차원 ‘상상의 꼬리’

  • 곽윤섭
  • | 2010.05.13

<12강> 그림자 작아도 크게, 커도 작게 정당한 왜곡 무한자유 실체도 없이 존재하는 귀신 같은 형상도 가능 눈에 보이는 대상을 테마로 삼은 지 ...

강의실

[미션 강의실 시즌2]어둠이 이기지 못하지만 어두워야 밝은 빛

  • 곽윤섭
  • | 2010.05.06

<제11강> 빛을 찍어라 공기처럼 특별한 때 비로소 존재 드러나 드러냄-숨김 사이, 노출의 강약이 ‘열쇠’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

취재

저작권은 자연에 있습니다.

  • 곽윤섭
  • | 2010.05.04

이 사진들은 제가 찍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의 저작권은 자연에 있습니다. 하루에 지나가버린 봄 금년 겨울은 모질게도 길었습니다. 사람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