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시즌2] 겉과 속, 빈부도 사라진 2차원 ‘상상의 꼬리’

곽윤섭 2010. 05. 13
조회수 9969 추천수 0
<12강> 그림자
작아도 크게, 커도 작게 정당한 왜곡 무한자유
실체도 없이 존재하는 귀신 같은 형상도 가능

 
눈에 보이는 대상을 테마로 삼은 지 열두 번째 시간을 맞았습니다. 이번 강의를 마지막으로 다음주엔 9~12강까지의 우수작 발표를 하고 나면 그 다음주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테마에 대한 강의와 미션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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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는 거꾸로, 하얀 도화지에 검은색 물감

 
눈에 보이는 대상의 마지막 테마는 그림자(혹은 실루엣)입니다. 지난번 미션이 ‘빛’이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유명한 명제가 있습니다. 붓끝에 빛을 듬뿍 묻힌 다음 깜깜한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나간다고 상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하얀색 빛만으로 칠한다면 흑백사진이 될 것이며 컬러가 들어 있는 빛으로 채색한다면 컬러사진이 됩니다.
 
이번 ‘테마-그림자’는 반대로 이야길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즉, 하얀 도화지가 있고 거기에 검은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입니다. 하얀색 도화지는 빛이 있는 공간을 말하며 검은색 물감은 그림자를 뜻합니다. 빛이 있고 어떤 입체적인 대상에 빛이 떨어지면 반드시 그림자를 만들게 됩니다. 그림자는 어둡고 검게 나옵니다. 아주 밝은 날이라면 그림자 속에도 희미한 컬러가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림자가 차지하는 공간과 빛이 직접 떨어지는 공간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자의 특성은 완전한 2차원이란 점입니다. 인화된 형태나 모니터에 뜬 형태나 가릴 것 없이 사진은 2차원의 매체입니다만 눈으로 보면서 머릿속으로 유추하여 실제상태의 입체적인 형상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자는 사진 위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보더라도 바닥에 붙어 있는 2차원의 납작한 영상입니다. 계단같이 굴곡이 있는 곳에 떨어진 그림자는 울퉁불퉁해 보이지만 역시 바닥에 붙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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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놀이는 무한 상상 불러오는 창의적인 대화수단

 
그림자의 묘미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빛의 높이에 따라 그림자는 길이가 자유자재로 변합니다. 크기가 작은 대상도 엄청나게 큰 괴물 같은 그림자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머리 위에서 빛이 떨어지는 한낮이라면 그림자는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작달막해집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그림자는 자연스러운 왜곡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셔터만 눌러도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후보정이나 합성, 변형 등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사진 속의 이미지를 줄이거나 늘이는 것과는 엄격히 다릅니다.
 
이런 이야길 하는 이유는 역시 눈에 보이는 대로 찍을 수밖에 없다는 사진의 단순함 때문입니다. 그림자는 사물의 원래 모양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물론 실체 없이 존재하는 그림자는 귀신이야기에만 나옵니다만 사진 속에선 이따금 가능하기도 합니다. 높이 뜬 물체의 그림자를 찍을 때 실체를 프레임에서 제외해버리면 그림자만 보입니다.
 
둥근 원기둥의 물체를 찍어도 그림자는 네모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빈부격차를 줄여줍니다. 비싼 옷이나 싼 옷이나 그림자에선 거의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림자만으로 명품 카메라 가방과 짝퉁 가방을 가려낼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정전이 되는 일이 거의 없어졌습니다만 여전히 촛불만 켜놓고 그림자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과 손가락을 폈다가 오므리면서 손으로 강아지, 나비, 오리, 토끼 등을 만들어보는 그림자놀이는 무한한 상상을 불러오는 창의적인 대화수단입니다. 신체의 일부가 아닌 몸 전체의 그림자로도 놀이가 가능합니다. 실제 공간에선 한 발짝 떨어진 두 사람이 그림자의 세상에선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며 키스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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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거장이 왜 아마추어 같은 사진 찍었을까

 
도서출판 까치에서 펴낸 사진집 중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카이로스의 시선으로 본 세기의 순간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2003년에 3천권을 들여왔다가 금방 매진되어버려 구할 길이 없었는데 2006년에 다시 추가로 2천부를 들여왔고 그마저 거의 다 팔려 다시 품절상태인 책입니다.
 
그 책을 넘기다 보면 나무 그림자와 함께 브레송 본인의 것으로 추측되는 그림자가 나란히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다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란 브레송이 왜 이런 아마추어 같은 사진을 찍었을까.” 그림자는 사진 초보들이나 찍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고민해보다가 잠정적으로 편한 결론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브레송도 초기엔 생활사진가들과 다름없이 보고 찍었을 것이니 이런 그림자를 찍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그전에도 브레송의 작품세계를 알고 있었고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자가 들어 있는 다른 사진도 있고 특히 많이 알려진 물웅덩이를 건너는 남자를 찍은 ‘생 라자르 역 뒤에서’에도 물에 비친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브레송이 나무와 나란히 서 있는 자신의 그림자를 담은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입니다. 그림자의 세계에선 나무나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깊이 읽을수록 더 많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처음부터 너무 심하게 생각에 사로잡히면 셔터를 누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편하게 접근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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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이 그림자와 차이 나는 건 더 강렬하다는 것

 
사진은 어렵고도 쉬운,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성을 지닙니다. 누구나 셔터만 누르면 눈앞의 대상을 찍을 수 있으니 쉽습니다. 동시에 너무 정확히 현장을 재현하니 창의적이지 않아 상상력을 북돋게 하는 사진을 찍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림자로 대상을 표현하는 미덕이 빛납니다.
 
우선 복잡한 대상을 단순화시켜주는 장점이 큽니다. 실루엣만 가지며 세부묘사는 거의 생략되어 버립니다. 테두리만 살아 있고 컬러가 없어서 정보가 부족하니 단순하게 보입니다. 때문에 그림자의 실체가 무엇이었을지를 추측케 하면서 직접 드러내지 않고 가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진을 깊게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실체가 비친 것이 그림자라면 실루엣은 실체 자체가 역광이나 노출 부족 상태에서 세부묘사를 상실하고 테두리 선만 남는 것을 말합니다. 2차원으로 보이고 컬러나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원래의 정보가 단순해진다는 점에서 실루엣의 효과는 그림자와 거의 같습니다. 색이 화려한 꽃이나 나무를 역광으로 찍어 실루엣으로 만들었더니 마치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연극처럼 보였습니다.
 
실루엣이 그림자와 차이가 있다면 더 강렬하다는 것입니다. 바닥의 굴곡을 따라 휘어지지 않고 실제 공간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대체로 역광상태에서 실루엣으로 찍기 때문에 조명 자체에서 오는 무거움이 존재합니다. 지난 시간에 ‘테마-빛’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실루엣의 테두리에 반짝거리는 빛이 생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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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미션 ㅣ 그림자를 찍어라
 
눈에 보이는 대상의 마지막 미션은 그림자(혹은 실루엣)입니다. 사람과 그의 그림자를 같이 담는 것도 좋고 그림자를 주요소로 포함하거나 보조요소로 써도 좋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그 실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음미하면서 찍을 것을 권합니다. 어떤 건물이나 구조물을 대낮에 찍을 때와 늦은 오후에 찍을 때가 어떻게 다를지 예상해볼 것을 권합니다. 건물이 긴 그림자를 달고 서 있는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의 차이가 큽니다. 사진에서 빛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둠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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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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