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시즌2] <23강> 창조
자연이든 문명이든 숨겨진 ‘1인치’의 포착
카레라를 흔들어도 보고 초점을 흐리게도

사진찍기의 매력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나의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풍경이든 인물이든 그 앞에서 셔터를 누를 수만 있다면 필름이나 CCD에 맺히고 어떤 공정과정을 거치면 나의 컴퓨터에 띄워놓고 볼 수가 있으며 프린트를 하고 액자에 넣어 전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복제냐 예술이냐
사진 발명(공표)이후 처음으로 몇몇 사진가들이 이집트로 떠납니다. 그 중 문인이었던 막심 뒤 캉은 1849년과 1852년 사이에 아부 심벨의 암각사원에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최초로 찍어옵니다. 미국의 존 그린은 1854년에 나일강 연안의 풍경을 배경 삼아 이집트의 유적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그전에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스케치그림을 통해서 이집트 유적의 형태와 규모에 대해선 조금씩 알고 있었지만 실물과 거의 흡사한 사진을 보자 실체를 직접 보는 것 같은 감동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 전까지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떤 수단도 사진처럼 정확한 재현을 구사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부 심벨의 람세스 2세 석상은 오직 지구상에서 딱 한군데, 그 자리에만 있는 창조물이었는데 사진으로 인해 무한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 전까지는 직접 발품을 팔아서 보고 온 사람만 경험담을 (그마저도 기억에 근거한 말로) 말할 수 있었으나 사진이 발명되고 난 다음엔 인지과정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엔 아우라(Aura-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산들바람의 여신. 벤야민은 아우라를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 현상이라고 말했으며 예술품의 진품에만 아우라가 있다고 봤다)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한복제가 가능하다면 그게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에 대한 토론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사진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복제도구였다는 이야길 풀어나가는 중입니다.
디지털시대 빛의 속도로
사진 탓에 유일하던 예술품이 온 사방으로 전파되어 원본의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사진 덕에 멀리 가지 않고서도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경험입니다만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 지오콘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안상의 문제로 관람 거리가 멀었고 작품이 크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진품의 아우라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진품의 사진이 더 진품다웠습니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모나리자 하나를 보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덕분에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인류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문명의 유산과 자연의 창조물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사진의 공덕은 대단합니다.
제가 이번 강의 도입부에서 장황하게 사진초창기의 역사와 아우라, 복제 등에 대해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그전까지는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사진의 힘이며 디지털시대엔 그 속도가 가히 빛만큼이나 빨라졌습니다. 사진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진은 진품의 아우라를 없애버린 저급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일부 부자나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준 문명의 이기입니다. 예술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훌륭하며 창조적인 도구입니다.
구름이든 바람이든 태양이든…
이번 테마는 창조입니다. 창조란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을 뜻합니다. 창조를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찍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에 대해선 자신있게 답을 드리기가 힘듭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테마-창조’는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식으로 창조를 찍어볼지에 대해 이야길 하겠습니다.
하늘엔 구름이 떠다닙니다. 최근에 스마트폰으로 트위팅을 하다가 여러 사람이 올린 구름사진을 봤습니다. 그 어느 한 사진도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찍은 사람이 달라서가 아니라 구름을 만들어낸 주체가 대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창조의 주체 중 가장 강력합니다. 자연이 날마다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없고 어제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은 날마다 다릅니다. 거대한 밀밭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바람에 몸을 맡기는 밀의 군무를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려서 지형이 변화를 일으키는 일, 가뭄이 들어 대지가 건조하게 말라가는 현상, 이 모두 자연의 조화입니다.
인간이 손을 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자연현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끔 대자연은 심술을 부려 인명을 앗아가고 재산상의 손실도 입힙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체적인 시각으로는 자연재해는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잊어서 안 되는 필수적 조건들

위에서 제시한 장면을 찍을 때 잊어서 안 되는 필수적 조건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찍는 사진이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풍경에도 사람을 걸치고, 사람이 없다면 구성을 색다르게 하는 노력을 해야만 내 사진의 차별성을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동물원에서 기린을 관찰했습니다. 동물도감에서 본 적이 있지만 가까이서 보니 기린의 무늬는 새삼스레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자라난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보호색을 획득했겠지만 보면 볼수록 신선했습니다. 기린도 사람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사육사는 기린의 얼굴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키, 얼굴모양, 무늬가 모두 조금씩 달랐습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짙은 안개 때문에 물방울이 맺힌 거미줄을 발견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이라고 할 순 없어도 철조망과 빨랫줄에 의지한 거미줄이 신기했습니다. 이 사진 또한 어떤 분이 이미 찍었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사례로 제시하는 사진들, 그동안 제시했던 사진들 중 일부는 어떤 다른 사람들이 벌써 찍어본 앵글일 수도 있는 사진들입니다. 사진은 그런 것입니다. 기원전 고대 로마의 유적에서 발견된 라틴어 문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nil novi sub sole)는 사진에서 특히 실감나게 적용됩니다.

카메라를 회오리처럼 돌리는 시범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 장의 멋진 사진이 아닌, 테마로 작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하나만 떼놓고 보면 평범하고 눈에 익었던 장면일 수도 있지만 여러 장을 엮어서 전개하면 의미가 확장되고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볼 때도, 사진집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한 장만 가지고 의미를 논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봄에 잎눈과 꽃눈이 부풀어올라서 잎과 꽃을 틔우는 것을 보면 창조가 느껴집니다. 앙상했던 가지 속 어느 구석에 저런 잎이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식물은 살아있다면 어김없이 봄엔 새싹을 틔웁니다. 음악과 미술도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신곡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만의 감정을 담아서 노래하고 연주하면 창조적입니다. 고흐와 다르게, 르누아르와 다르게 그리기 위해서 피카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갔습니다. 창조입니다.
‘창조적인 사진’이론서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포토숍 전문가인 브라이언 피터슨을 만나 고급사용자들을 위한 촬영팁을 요구했더니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회오리처럼 돌리는 시범을 보여주더군요. 과연 창조적이었습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자연이든 문명이든 숨겨진 ‘1인치’의 포착
카레라를 흔들어도 보고 초점을 흐리게도

사진찍기의 매력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세상 모든 것을 나의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풍경이든 인물이든 그 앞에서 셔터를 누를 수만 있다면 필름이나 CCD에 맺히고 어떤 공정과정을 거치면 나의 컴퓨터에 띄워놓고 볼 수가 있으며 프린트를 하고 액자에 넣어 전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복제냐 예술이냐
사진 발명(공표)이후 처음으로 몇몇 사진가들이 이집트로 떠납니다. 그 중 문인이었던 막심 뒤 캉은 1849년과 1852년 사이에 아부 심벨의 암각사원에서 람세스 2세의 석상을 최초로 찍어옵니다. 미국의 존 그린은 1854년에 나일강 연안의 풍경을 배경 삼아 이집트의 유적을 촬영하게 됩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그전에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스케치그림을 통해서 이집트 유적의 형태와 규모에 대해선 조금씩 알고 있었지만 실물과 거의 흡사한 사진을 보자 실체를 직접 보는 것 같은 감동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 전까지 인류가 발명한 그 어떤 수단도 사진처럼 정확한 재현을 구사해내지 못했습니다. 아부 심벨의 람세스 2세 석상은 오직 지구상에서 딱 한군데, 그 자리에만 있는 창조물이었는데 사진으로 인해 무한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 전까지는 직접 발품을 팔아서 보고 온 사람만 경험담을 (그마저도 기억에 근거한 말로) 말할 수 있었으나 사진이 발명되고 난 다음엔 인지과정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엔 아우라(Aura-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산들바람의 여신. 벤야민은 아우라를 유일하고도 아주 먼 것이 아주 가까운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일회적 현상이라고 말했으며 예술품의 진품에만 아우라가 있다고 봤다)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한복제가 가능하다면 그게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에 대한 토론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사진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복제도구였다는 이야길 풀어나가는 중입니다.
디지털시대 빛의 속도로
사진 탓에 유일하던 예술품이 온 사방으로 전파되어 원본의 가치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사진 덕에 멀리 가지 않고서도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경험입니다만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 지오콘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보안상의 문제로 관람 거리가 멀었고 작품이 크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진품의 아우라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진품의 사진이 더 진품다웠습니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모나리자 하나를 보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덕분에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인류들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문명의 유산과 자연의 창조물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을 생각하면 사진의 공덕은 대단합니다.
제가 이번 강의 도입부에서 장황하게 사진초창기의 역사와 아우라, 복제 등에 대해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그전까지는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사진의 힘이며 디지털시대엔 그 속도가 가히 빛만큼이나 빨라졌습니다. 사진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사진은 진품의 아우라를 없애버린 저급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일부 부자나 권력자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준 문명의 이기입니다. 예술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었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훌륭하며 창조적인 도구입니다.
구름이든 바람이든 태양이든…
이번 테마는 창조입니다. 창조란 “이제까지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을 뜻합니다. 창조를 사진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이제껏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찍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에 대해선 자신있게 답을 드리기가 힘듭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테마-창조’는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떤 식으로 창조를 찍어볼지에 대해 이야길 하겠습니다.
하늘엔 구름이 떠다닙니다. 최근에 스마트폰으로 트위팅을 하다가 여러 사람이 올린 구름사진을 봤습니다. 그 어느 한 사진도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찍은 사람이 달라서가 아니라 구름을 만들어낸 주체가 대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창조의 주체 중 가장 강력합니다. 자연이 날마다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 하나 비슷한 것이 없고 어제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은 날마다 다릅니다. 거대한 밀밭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시원한 소리를 내면서 바람에 몸을 맡기는 밀의 군무를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내려서 지형이 변화를 일으키는 일, 가뭄이 들어 대지가 건조하게 말라가는 현상, 이 모두 자연의 조화입니다.
인간이 손을 대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자연현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물론 가끔 대자연은 심술을 부려 인명을 앗아가고 재산상의 손실도 입힙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하지만 대체적인 시각으로는 자연재해는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합니다.
잊어서 안 되는 필수적 조건들

위에서 제시한 장면을 찍을 때 잊어서 안 되는 필수적 조건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찍는 사진이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장치를 두는 것입니다. 풍경에도 사람을 걸치고, 사람이 없다면 구성을 색다르게 하는 노력을 해야만 내 사진의 차별성을 유지할 수가 있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동물원에서 기린을 관찰했습니다. 동물도감에서 본 적이 있지만 가까이서 보니 기린의 무늬는 새삼스레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자라난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보호색을 획득했겠지만 보면 볼수록 신선했습니다. 기린도 사람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사육사는 기린의 얼굴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키, 얼굴모양, 무늬가 모두 조금씩 달랐습니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짙은 안개 때문에 물방울이 맺힌 거미줄을 발견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진이라고 할 순 없어도 철조망과 빨랫줄에 의지한 거미줄이 신기했습니다. 이 사진 또한 어떤 분이 이미 찍었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사례로 제시하는 사진들, 그동안 제시했던 사진들 중 일부는 어떤 다른 사람들이 벌써 찍어본 앵글일 수도 있는 사진들입니다. 사진은 그런 것입니다. 기원전 고대 로마의 유적에서 발견된 라틴어 문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nil novi sub sole)는 사진에서 특히 실감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 장의 멋진 사진이 아닌, 테마로 작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하나만 떼놓고 보면 평범하고 눈에 익었던 장면일 수도 있지만 여러 장을 엮어서 전개하면 의미가 확장되고 이야기가 풍성해집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볼 때도, 사진집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 중에 한 장만 가지고 의미를 논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봄에 잎눈과 꽃눈이 부풀어올라서 잎과 꽃을 틔우는 것을 보면 창조가 느껴집니다. 앙상했던 가지 속 어느 구석에 저런 잎이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식물은 살아있다면 어김없이 봄엔 새싹을 틔웁니다. 음악과 미술도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신곡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만의 감정을 담아서 노래하고 연주하면 창조적입니다. 고흐와 다르게, 르누아르와 다르게 그리기 위해서 피카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갔습니다. 창조입니다.
‘창조적인 사진’이론서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포토숍 전문가인 브라이언 피터슨을 만나 고급사용자들을 위한 촬영팁을 요구했더니 사진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회오리처럼 돌리는 시범을 보여주더군요. 과연 창조적이었습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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