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대척점, 변방 여성 사진가들의 새 지평

곽윤섭 2011. 02. 01
조회수 12356 추천수 0
   큐레이터 최연하 에세이 ‘사진의 북쪽’

   합성 변형 설치, 추상의 경계 넘나드는 ‘예술’ 경지
 따뜻한 사랑으로 열여덟 작가 육성 곁들인 ‘나침반’
 

사진의북쪽.jpg
 
 한겨레신문사는 행정구역상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있다. 신문사의 서쪽 옆으로 만리잿길이 있으므로 통상 만리동 한겨레라고 부른다. 그 만리잿길에서 효창공원 쪽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 신문사 건물이 우뚝 서있다.
 창간호를 냈던 양평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온 1991년 12월엔 우뚝 서있었지만 곧바로 옆에 훨씬 높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지금은 잘 보이지도 않고 아파트 그늘에 가려있다. 게다가 한겨레신문사 건물은 북향이다. 정확하게는 북북서쯤 될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그래서 춥다. 이미 나 있는 길을 이용하려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북쪽은 춥다. 이 신문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진작가, 그것도 여성이 한다는 것의 고단함
 
 ‘사진의 북쪽’은 최연하씨가 쓴 책이다. 사진에 무슨 동서남북이 있을까 싶지만 몇 페이지만 넘기다 보면 무슨 뜻에서 지은 제목인지 알 수 있다. 저자가 직접 이렇게 썼다. “남쪽의 대척점에서 존재/부재, 빛/어둠, 진리/허위, 원본/모사, 현실/꿈, 이미지/상징, 남성/여성의 자리이자 사진의 본향으로서의 북쪽을 의미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죽음의 공간인 북망산의 북쪽이기도 하다.” ‘사진의 북쪽’은 큐레이터 최연하가 열여덟 명의 여성 사진작가를 만나서 쓴 에세이를 모은 것으로, 작가들의 작업을 다루고 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사진작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편안한 삶이 아니며 더군다나 여자가 사진작가를 한다는 것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책에 소개된 열여덟 작가를 하나씩 살펴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명을 빼고 나면 대부분이 어려운 작업들을 하고 있다. 장노출 정도 단순한 기법 측에 든다. 합성과 변형과 설치를 넘어 회화와 결합된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다 못해 아예 회화에 가까운 작품도 있다. 물론 (여자에 대비한 개념으로) 남자사진작가들도 추상작업을 하긴 한다. 하지만 “유난히 여성작가들 중에 이런 작업이 많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 바로 이 ‘사진의 북쪽’이다.
 북쪽이 있어야 남쪽이 있는 법이니 누군가는 항상 북쪽에 있을 것이다. 그 북쪽에 여성이 많다는 최연하의 주장은 실제 작가의 인구센서스를 보여주자는 뜻이 아니란 것도 알겠다. 이 작가들의 사진들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업이며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시도이니 창작을 위한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도 예술”이란 아우성을 듣는다.

 
 ▶난해한 사진작품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지름길
 
 평론가 최봉림 선생과 최연하씨가 함께 한 어느 사진 심사장에서 나는 최연하 씨에게 “연하 씨는 보는 사진마다 무조건 다 좋다라고 하는데 그래도 되는 거요?”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최봉림 선생이 “그건 연하 씨가 큐레이터라서 그런 거지. 큐레이터는 모든 사진을 좋다고 해야 하거든”이라고 거들었다. 큐레이터는 모든 사진을 다 사랑해야 하고 그래서 모든 작가들을 다 이해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다. ‘사진의 북쪽’엔 그 따뜻한 마음이 넘쳐난다. 열여덟 여성작가들과 그들의 사진세계를 모두 이해해야만 이 책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열여덟 명의 작가들의 사진을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이 책을 쓸 수 있겠다.
 
 저자인 최연하씨가 공을 들여 인터뷰하고 작품들을 분석한 내용들을 모두 옮기기엔 열여덟 명은 너무 많다. 아무 순서나 원칙이 없이 무작위로 세 명만 소개한다. 이 책은 난해한 사진작품들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다. 결코, 쉽지 않은 사진들을 아주 쉬운 언어로 풀어서 먹기 좋게 가져다주고 있다. 물론 시각 이미지를 글이나 말로 완전히 분석하고 이해시킬 수는 없다. 그 한계 안에서 이 책은 추상과 변형과 합성과 설치 등의 다양하고 신기한 작업내용을 보기 좋게 설명한다.
 작가들의 육성을 직접 인용하면서 안내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이번 겨울은 길게 추웠다. 2월 3일이 설이다. 지금 이 서평을 쓰는 날은 음력으로 동지섣달의 그믐 무렵이다. 추운 겨울에 북향의 신문사에 앉아 ‘사진의 북쪽’에 대한 이야길 하는 것이 제격이다. 길고 추운 겨울이라 바깥에서 사진을 찍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사진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 ‘사진의 북쪽’을 사서 보길 권한다. 
 
 아래의 내용은 책 ‘사진의 북쪽’에서 그대로 부분 인용했습니다. 따라서 문장은 모두 최연하의 것이며 인터뷰는 작가들의 육성입니다.
 
 김수강: 하나이자 전체인 사진, 김수강의 검프린트
 “엄밀히 이야기하면 김수강은 고전적인 작가다. 그녀를 고전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다루는 사진술이 100여 년 전의 기법이라거나, 사진예술의 변화에 선뜻 따라나서지 않는 보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검프림트는 19세기 후반, 회화에서 인상주의시대가 시작될 즈음에 탄생했다. 거의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수채화 물감으로 다양한 색상과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사진가들이 애용한 기법이다. 수채화 물감을 용해시킨 아라비아고무(Gum Arabic)에 중크롬산 칼륨(빛을 받으면 변하는 물질)을 혼합하여 감광성을 띤 유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제를 종이에 고르게 도포하고 건조시킨 후, 네거티브 원판과 밀착시켜 자외선 노광을 준다. 이때 네거티브를 투과한 빛의 양에 따라 고무의 용해도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중략)” 사진의 북쪽, 김수강 편에서
 “내가 여기에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주의를 기울일 정도의 무게를 지니지 못한, 내 작은 생활을 이루고 있는, 그저 그뿐인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크기, 존재의미,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시간의 길이…. 아무것도 그다지 별스러운 게 없다. (후략)” 작가 노트 중에서
 김수강.jpg
 김수강/white vessel 019, gum bichromate print, 90X70cm, 2006
 
김수강2.jpg
김수강, inner wear, gum bichromate print, 37X50cm, 2004
 

 구성연: 나비는 왜 팝콘 나무 아래로 날아갔나, 구성연의 사물의식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날 밤 아니면 며칠 전에 분명 꿈속에서 장주처럼 나비를 보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꿈에서 덜 깬 표정으로 그녀가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날, 무려 네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는 봄 들판에서 솟아오르는 아침안개보다 더 몽롱했다. 그녀의 말 속에서 어디서 화제를 잡아야 할지 아득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2주를 멍하니 보내는 사이, 거리는 싱싱한 초록기운들이 넘실대기 시작했고 계절은 여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은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급하게 불고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환절기였다. (중략) 베란다의 화분을 살피다가 문득 선가에서 가장 오래된 화두 중 하나인 조사서래의(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가 떠올랐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그녀의 작업에 관한 타이틀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사진의 북쪽, 구성연 편에서
 구성연-유리시리즈1.jpg
유리시리즈, c-print, 2001
 
구성연-팝콘.jpg
팝콘시리즈, c-print, 2006
 
모래시리즈.jpg
모래시리즈, c-print, 2004
 

 이선민: 울타리, 혹은 프레임의 안과 밖에서 사진으로 살림하기, 이선민
 “작가 이선민은 참 지혜로운 여자다. 그녀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담장 밖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지치지 않고 길게 작업할 터전을 마련했다. <여자의 집>에서 시작한 가족 이야기가 <도계 프로젝트>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주제찾기가 어떤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부장적인 가족상황에서 체득한 여성적 의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을 캐스팅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이 책갈피 넘기듯 바로 후속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략) 사진 속 여자들의 공간은 시댁의 안방이거나 부엌이다. 집안의 어른인 아버지는 제일 좋은 자리에 편안하게 앉거나 벽에 기댄 채 텔레비전을 보면서 제사 음식을 미리 맛본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편히 앉아 있을 수 없으니 방안도 부엌도 아닌 경계에 어정쩡하게 서있으면서 들어갈 수도 빠질 수도 없는 위치에 있다. 집안의 여자들은 좁은 부엌에 앉아……. (하략) 사진의 북쪽, 이선민 편에서

이선민.jpg
이영숙의 집-추석풍경, c-print, 2004

 
이선민2.jpg
권혁희의 집# 1-추석풍경, c-print, 2004

 
이선민-최명순.jpg
최명순의 집-추석풍경, c-print, 2006

 이 책에 등장하는 나머지 열다섯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고현주, 김옥선, 신은경, 아그네스, 안옥현, 윤정미, 윤주경, 이성은, 이옥련, 이은종, 주상연, 전미숙, 정 강, 정혜진, 데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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