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은 지 5년 안 인화 사진이 그후 것보다 비싸야 하나

곽윤섭 2011.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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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있는 사진】 <7> 사진의 값
  1천 장째 것이 5장째 인화된 것보다 싸야 하나
 
 한정 수량의 사진은 더 가치가 높다는 데 찬성?

 

 

 

이 사진,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책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에 실려있는 ‘논쟁 사진’들 중에서 독자 여러분과 토론하고 싶은 아주 재미있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5월2일부터 주마다 한 번씩 8회에 걸쳐 사진을 보여드리고 책에 언급된 기초적인 자료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이 의견을 밝히시면 저도 토론에 동참하겠습니다. 8회에 걸쳐 모두 동참하신 분들에겐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배송해드리겠습니다. 트위터로 참여하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곽윤섭 기자 트위터 @kwakclinic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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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과 백> 만 레이, 1926년   사진 제공/열린 책들

 1. 만 레이(1890~1976)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예술가이며 사진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사진에선 주로 아방가르드적인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나중에 본인이 자신의 이름을 본떠 ‘레이요 그래프’라고 명명한 포토그램 등이 유명하다.
 그냥 찍어서 생산한 사진이 아니라 다른 사진과의 덧붙임, 변형, 합성 등을 응용한 작업이었으며 이 방면의 선구자적인 인물이었다. 이런 경향은 ‘예술적인 사진’을 추구한 그로선 자연스런 귀결이다. “나는 자연 상태를 찍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상상을 찍는다”라고 말했으니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만 레이는 살아서도 유명했지만 (특히 미국에선) 사후에 명성이 널리 퍼졌다.
 
 법정까지 간 ‘만 레이의 사후 인화 사진’
 
 만 레이는 촬영한 네거티브 원판을 챙기는데 무심했고 인화는 공방에 맡겼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은 널리 퍼뜨려졌던 것이다. 1926년 작 <흑과 백> 한 점이 1994년 경매에서 35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송사는 1997년에 터졌다. 독일의 수집가 보켈베르크는 1990년대에 만 레이의 사진 일흔여덟 점을 간격을 두고 사들였다. 사진을 판 화상은 만 레이의 친구가 자기 아버지에게 기증한 것이라고 했고 만 레이가 자기 어머니의 은밀한 애인이라고도 했다. 보켈베르크는 다른 경로를 통해 <앵그르 바이올린>, <눈물>등을 포함한 최상급 작품도 사들였다.
 이 기막힌 ‘만 레이 컬렉션’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개되었다. 완벽한 인화상태에 모두 감탄했다. 그러다 의혹이 터졌다. 사진 뒷면에 아그파인화지란 상표가 거의 지워진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전문 공방에 맡겼기 때문에 연도에 따라 사용된 인화지의 제조회사는 정확히 밝혀졌다. 1951년부터 1968년까지는 영국제 일포드 인화지만 사용되었고 1968년부터 1976년까지는 아그파 인화지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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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파리에서 열린 <파리포토>. 갤러리 직원이 빈티지 프린트를 소중하게 다룬다. <사진 왼쪽>,  한 관람객이  빈티지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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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파리포토, 파리포토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진거래시장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방대한 양의 사진이 출품되다보니 사진을 사고파는

           사람외에도 전시구경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보켈베르크는 미술관에 와서 자신이 사들였던 컬렉션 중에서 20여 점이 1992년, 1993년 사이에 제조된 인화지임을 확인했다. 나머지는 1960년대 인화지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것으로 알고 거액을 투자했던 작품이 작가 사후의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보켈베르크는 익명의 화상에게 환불을 요구했고 5백25만 프랑을 회수했고 이제 작품에서 인화지로 전락한 사진을 돌려주었다. 판매회사는 논쟁거리가 된 사진을 없애버렸다. 증거는 없어졌고 증언만 남았다.
 최상급이라고 알려졌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이 사건이 파리의 미술계에 알려지자 많은 화랑들과 수집가들이 떨었다고 한다. 의심스런 사진을 소유하고 있음이 속속 드러났다. 회화나 판화와 마찬가지로 사진에서도 가짜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 인화지가 1930년대 것이 아니라고 밝혀낸 전문가가 없었다면 그 인화지들은 지금쯤 수천만 달러 이상으로 값이 올랐을 것이다.
 
 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
 
 2. 이보다 약 1백50년 전, 그러니까 사진이 공인된 지 채 20년이 지나지 않은 1856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사진관을 하던 동업자 마예르와 피에르송이 있었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고객으로 맞이하고 난 뒤부터 이들 사진관은 대박이 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뒤 경쟁적 지위에 있던 사진관에서 마예르와 피에르송이 만든 초상사진을 가필해서 무단 복제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조라고 판단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의 초창기였고 갈 길은 멀었다. 위조가 성립하려면 사진이 예술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적인 개입이 없다고 자칭하던 사진의 기계적인 면은 순수 예술로서 인정되는 수공의 기법과 정반대 입장에 있었다. 팽팽했다. 경쟁업체의 변호사들은 앵그르 같은 화가들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어떤 식으로든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마예르와 피에르송의 소송은 기각당했고 항소했다. 1862년 4월에 마침내 파리의 항소심 법정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진 데생이 그 사진을 제작하는 사람의 사고와 정신, 또는 취미와 지성의 산물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두 사람은 책을 펴내 “오늘, 법의 눈으로도, 예술가와 대중 여론의 눈으로도 사진은 예술이다”라고 선언했다. 그해 11월 프랑스의 최고 재판소에서 최종 확정 판결을 내렸고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사진의 예술성을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법률상 사진가를 예술가로 인정받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기까지도 회화의 그늘에서 벗어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하면?
 
 3. 만 레이는 바로 이 20세기 초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도 예술이며 사진가도 예술가라는 입장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사진을 시작한 만 레이였다. 그는 “나는 사진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을 그린다. 그것은 주로 상상이나 꿈, 혹은 무의식의 흐름에서 나온 대상들이다. 반면에 나는 내가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은 사진으로 찍는다. 그것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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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션을 표기하는 보편적인 방법. 분모의 숫자는 인화된 사진 숫자의 총량이니 여기선 모두 40장을 인화했다는 것. 분자의 숫자는 이 사진이 그중

           25번째라는 것을 의미한다.(사진 위 왼쪽) 

           사진 아래에 이름표를 별도 달아서 사진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안내한다. 작가의 이름. 작품명, 작품을 찍은 장소. 작품의 규격, 가격, 에디션등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위 오른쪽)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이 매그넘 시절 인화했던 작품 뒷면에는 항상 이런 도장이 찍혀있다. 브레송과 매그넘은 당시 전세계의 신문, 잡지로 팔려나간 

            브레송의 사진은 매체에 한번 실리고 나면 소유권은 브레송과 매그넘에게 있으므로 돌려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좀처럼 회수되지 않는다. 가끔 이런

           오리지널 프린트들은 미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보물같은 사진들이다. (사진 아래)          

 

 


 만 레이의 입장은 명백해 보인다. 그는 (정통적인 의미에서) 사진가라고 볼 수 없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초기엔 그림으로 그리다가 나중에 사진으로도 표현하려 들었다. 그것을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큰 논란이 있다. 그에 대해선 <사진과 논쟁> 시즌 2에서 다루기로 한다. 오늘의 논지는 사진의 원작성과 가격이다. 주지하다시피 빈티지라는 것이 있다. 사진가가 네거티브를 만든 지(사진을 찍은 지) 5년 안에 사진가의 감독하에 인화된 사진을 빈티지라고 부른다. 빈티지 프린트의 가격은 그 후에 인화된 사진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비싸게 거래된다. 빈티지를 몇 장까지 프린트하는지도 논란거리다.
 
  묻습니다.
 1.  논란이 되었던 만 레이의 <흑과 백>프린트는 인화상태로만 보자면 아주 고품질이었다고 합니다. 단지 인화지에 아그파 상표가 있었고 1970년 이후의 인화지라는 것밖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빈티지가 아니어서 가치가 뚝 떨어졌다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2. 찍은 지 5년 안에 사진가가 직접, 혹은 사진가의 감독하에 인화한 것을 빈티지라고 부르는데 인화약품만 잘 관리해주면 1천 장을 프린트하든 5장을 하든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천 장째 인화한 에디션이 처음 다섯 장째 인화된 에디션보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천 번째 에디션은 가치가 떨어진다는데 동의하십니까?
 3. 2번과 같은 이유로 사진가들과 갤러리들은 에디션을 제한합니다. 한정 수량의 사진은 더 가치가 높다는데 동의하십니까?
 

 

◈ 시리즈 차례

 

 1회: 외설이냐 예술이냐
 2회: 베네통사의 광고사진, 발칙한 ‘도발’
 3회: 뤼크 들라예, 표현의 자유와 초상권의 대립
 4회: 프랑크 푸르니에와 사진가의 현장윤리
 5회: 세바스티앙 살가도와 타인의 고통
 6회: 다이애나비의 마지막 사진과 파파라치
 7회: 제프 쿤스의 사진 표절과 원작의 고유성
 8회: 만 레이와 사진의 가격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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