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너머 풍경 No 35.
33편에 이은 옛 동네 탐방입니다. 모교를 벗어난 저는 옛날 살던 동네를 뒤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저의 손때가 묻었던 골목과 담벼락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동네는 크게 발전하지도 않았고 쇠락의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도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는 곳이 없었습니다. 위에서 두번째에 보이는 시멘트칠로 외장을 마감한 담벼락이 있는 집은 분명히 제가 살던 그 시절의 스타일입니다. 그땐 거의 모든 집 담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다녔을 것입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낙서라도 해두는건데 저는 모범생스타일이라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흠흠. 한 시간을 돌아다니니 골목은 끝나버렸습니다. 동네가 이렇게 좁아졌구나.
드디어 기억에 남아있는 간판 하나를 찾았습니다. 저 자리에 저 이름 그대로 저 모양 그대로 1970년부터 있었는데 아직도 건재했습니다. 그 당시엔 동네에서 가장 최신식으로 지으졌고 가장 높았던 건축물(!)이었습니다. 그 땐 1층도 병원이었는데 지금은 마트가 들어섰네요.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셨습니다. 저는 저 병원에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그 때의 대사도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한 군데 더 옛 간판을 찾아냈습니다. 태평약국. 두자리수 전화국번이 보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적엔 한 자리수 국번이었습니다. 이제 약국영업은 하지 않더군요. 간판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갔을것 같습니다. 다리도 아파왔고 마음도 아련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를 빠져나왔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으니 옛 동네가 더 자세히 떠오릅니다. 약국의 셔터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들락거렸습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녔습니다. 왁자지끌했습니다. 누구는 누구와 다투었고 온톨 흙바닥이었던 공터에서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하느라 날이 저물던 그 때, 그 시절이 활동영화처럼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자 옛동네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