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 명소 답사기 ③
3/10초, 플래시 사용.
답사기에 소개하는 사진명소들에서 공통적인 주의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각각 나름의 멋이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무산되진 않지만 조금 난감한 경우는 생기기도 한다. 일출을 찍으러 간 동해안에서 사흘째 비를 맞거나 구름 낀 바다를 바라 볼 때가 그랬다. 이럴 땐 속수무책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사진명소, 촛불집회(혹은 촛불문화제)의 경우 비가 내려도 촛불집회는 열리니 기후의 영향에선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있다. 상시적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골의 5일장과 달리 일정한 주기마다 열리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 오신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정한 날짜가 정해진 것도 아니다. 2002년‘효순이 미선이 사건’, 2003년‘이라크 파병 반대’, 2004년‘탄핵 반대’사례에서 보듯 그동안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들은 큰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만 열렸다. 올해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다시 한 번 촛불을 켜게 하고 있다. 지난 4월17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것이 발단이 돼 5월2일 첫 집회가 열린 뒤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시청 앞과 청계광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집회를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나가서 사진을 찍길 권한다. 전체 모습을 담아도 좋고, 촛불 몇 개를 클로즈업해도 좋은 사진이 나온다. 사람들의 표정, 여러가지 즉석 공연 등도 찍을 수 있다.
물론 기술적인 어려움은 있다. 다른 출사장소와는 달리 어두운 곳에서 열리기 때문에 노출이 잘 나오지 않고 이는 셔터 속도의 저하로 이어진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밝게 찍을 수 있지만 ISO를 높여서 주변까지 모두 살리는 것을 권한다.
한때 텔레비전의 세력확장과 <라이프> <루크> 같은 사진 중심 잡지의 몰락과 더불어 포토저널리즘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2001년 9·11 사건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뉴욕엔 제임스 나트웨이와 매그넘 회원 등 세계 최고의 사진가들이 우연히도 현장을 지켰으나 수많은 시민들도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콤팩트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내용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영향력 또한 작지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 등 기존의 매체들 못지 않은 속도로 개인의 블로그를 통해 사진들이 퍼져나갔다. 지금 전국의 광장과 거리에선 디카 열기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생활사진가들이 구석구석 역사의 현장을 포착하고 있다. 사진기자와 생활사진가의 사진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블로그로 자신이 본 것을 전파하는 시대다. 경찰쪽의 채증카메라에 맞서 더 많은 숫자의 시민들이 현장을 기록한다. 바야흐로 풀뿌리포토저널리즘 시대다. 촛불집회가 끝나기 전 거리로 나가 그 현장을 기록해보자. 카메라를 든 모든 사람들이 사진가이고, 이들이 찍는 모든 사진이 다 삶의 기록이다.
느린 셔터로 카메라를 같이 흔들어보았더니 촛불의 흔들림과 어우러진 풍경이 나왔다.
글/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