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보성의 한 녹차밭에서 생활사진가가 전경을 담고 있다. 눈으로 본 만큼만 찍을 수 있다면 모두 훌륭한 사진가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가지 구도훈련을 착실히 했다면 이제 여러분은 어느 정도 프레임구성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떻게 찍는지에 대한 감은 잘 오지 않을 것입니다. 취미 삼아 혹은 재미로 혹은 심심해서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털어놓는 어려움은 여전히 어떻게 찍어야 잘 찍느냐는 것입니다.
직업적인 사진가라면 촬영을 앞두고 사전에 정보도 입수하고 공부도 하면서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하고 나가겠지만 생활사진가들은 어떻게 찍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없이 그냥 남들따라 출사를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 출사를 가게 되면 도착한 해당 장소에서 마주친 경치를 그냥 담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문득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마주친 장면을 찍을 때 “멋있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즉물적으로 프레임을 잡고 누르는 것은 사실 잘못된 방법이 아닙니다. 감성이 솟아나와 찍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며 각자에게 멋있어 보이는 것이 다를 수가 있으니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른 선택의 차원이므로 큰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눈엔 안 보이다가: 2003년 수능 정답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다. 3번을 정답으로 인정해 달라는 사람들의 집회를 찍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왼쪽의 인물이 찍혔다. 사진기자들은 대체로 끝까지 파인더를 보면서 셔터를 누르기 때문에 웬만하면 프레임에 뭐가 찍히는지를 알지만 이땐 정말 몰랐다. 셔터스피드는 1/250초. 사진기자들은 자신의 프레임에 누가 뛰어드는 것을 매우 싫어하지만 이 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잘 알고 지내는 사진기자였다.
초보자에게 문제의 핵심은 눈으로 본 것과 사진으로 찍히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눈으로 볼 땐 있었던 것이 사진엔 잘 안보이거나, 눈으로 보면서 셔터를 누를 땐 안보이던 것이 사진엔 찍혀 있는 경우 등을 말합니다. 초보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술사진이 아니고 리얼리티를 가장 존중하는 뉴스사진을 십수년 찍어온 저도 가끔 그런 현상과 마주칩니다. 무슨 UFO 같은 것이 나도 모르게 사진에 찍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카메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LR 방식의 카메라에서는 찍히는 순간 미러(반사경)가 올라붙어 뷰파인더로는 일시적으로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따라서 스포츠에서처럼 빠른 피사체들이 움직이는 상황이나 복잡한 거리에서 무언가를 찍는 상황에서 예기치 않았던 1/500초의 순간에 다른 선수가 프레임에 스쳐 지나가거나 행인이 난데없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하려는 이야기가 미러가 올라붙은 그 순간에 프레임 안에서 생긴 변화를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눈은 3차원, 사진은 2차원
눈엔 보이지만: 플로리다의 국립공원에서 악어떼를 만났다. 눈으로 볼 땐 악어가 잘 보였지만 사진 속에선 도대체 몇 마리나 있는지 구분이 잘 안된다. 물론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악어가 잘 안찍힐 것이란 점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한 장 눌러두었는데 이렇듯 눈으로 본 것과 사진의 차이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써먹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으로 찍힌 것의 차이가 왜 발생할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프레이밍을 통해 파인더에 시공간을 잘라서 담을 때까진 아직 3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셔터를 눌러 장면이 CCD나 CMOS(필름카메라에선 필름)로 저장이 되는 순간부터는 2차원으로 변합니다. 여기에 눈으로 본 것과 사진으로 찍힌 것의 차이가 숨어 있습니다.
앞서 말한 그림과 사진의 차이도 여기서 작용합니다. 화가들은 필요에 따라 초망원렌즈와 광각렌즈의 효과를 동시에 그림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망원으로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뿐만 아니라 타임머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동시에 한 그림 안에 옮길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달나라의 토끼도 담고 놀부가 박을 타는 것도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는 결승골을 넣는 박주영을 크게 보이게 하고, 동시에 관중석 가장 높은 곳에서 환호하는 붉은 악마 응원단도 크게 보이도록 하나의 프레임에 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은 다릅니다. 관중석 가장 높은 곳의 응원단에 섞여 앉아 축구경기를 찍는다면, 카메라 바로 앞에 있는 응원단을 찍을 땐 24미리 이하의 광각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슛을 하는 박주영이 크게 보이도록 하려면 최소 600미리 망원은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어떤 카메라로도 서로 다른 두가지 초점거리를 가진 렌즈로 한 프레임을 찍는 경우는 없습니다. 설령 24~600mm 줌렌즈가 있다고 해도 한 프레임을 찍을 때 24mm와 600mm를 같이 사용할 순 없습니다.
부처 눈엔 부처가, 돼지 눈엔 돼지가
그런데 가끔 사진에서 그림의 비현실성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해 당황스럽게 합니다. 눈으로 볼 때 없던 것이 사진에 등장하는 현상은 사람의 시신경과 지각작용의 상관관계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람은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같은 비중으로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내 눈앞엔 컴퓨터 모니터가 있습니다. 스피커와 키보드, 마우스도 옆에 보입니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으면 어떻게 될까요? 찍힌 사진 속엔 앞서 말한 모니터, 스피커, 키보드, 마우스 외에도 많은 것이 나타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겠습니까? 사람의 눈은 선별적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관심에 따라 집중을 하는 것이 달라지고 늘 보던 물건엔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소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엔 돼지가 보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한 가족이 장도 보고 구경도 할 겸 한 시장 골목을 여유있게 걸어가고 있다고 칩시다. 이때 아빠의 관심사와 엄마의 관심사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관심사는 모두 다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각자의 눈에 잘 띄는 물건도 다를 것입니다. 아빠는 수산물가게의 산낙지를 보며 한 잔 생각을 할 것이고, 엄마 눈에는 반찬가게의 마늘 장아찌 혹은 입맛 돋구는 부침개가, 아이에게는 장난감가게의 레고가 가장 잘 보일 것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본 것을 ‘본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뇌의 기능입니다. 이때 뇌는 단순히 눈이 전달해준 모든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뇌에 저장되어 있던 갖가지 데이터베이스를 기초로 해서 선별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통과한 빛이 CCD나 필름에 도달할 때는 사람 눈과 뇌의 작용처럼 선별적으로 강조하거나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파인더로 본 것이 고스란히 담기게 되는 것입니다.
낯익은 우리 동네, 사진에선 딴 동네
복잡한 동네: 평소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전깃줄이 사진에는 고스란히 찍힌다.
낯익은 우리 동네가 사진에선 왠지 낯설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십 수년을 살아온 동네의 거리를 찍다보면 찍을 땐 몰랐던 것들이 사진에서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즉, 골목길에 이리저리 늘어진 전기줄은 평소 신경을 쓰지 않고 살기 때문에 눈엔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사진으로 옮기면 모두 다 보입니다. 시장, 놀이터, 대규모 집회장소, 놀이공원 같은 곳이 모두 이런 마음의 오류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주인공과 내가 원했던 조연, 엑스트라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찍힌 사진을 보면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주인공처럼 포함된 적도 있고 엑스트라들이 너무 생생하게 보여서 주인공을 못알아볼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시장은 대표적으로 복잡한 공간입니다. 대체로 어둡기도 하거니와 공간을 아끼기 위한 디스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내가 찍은 것은 맨 앞줄의 구두였지만 뒤쪽줄에 있던 핸드백과 가방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잡한 주택가의 골목에선 어느 방향으로 찍어도 전기줄이 나타납니다. 인물을 찍어 보면 눈에 잘 안보이던 전봇대나 가로등이 머리 곁에서 불쑥 솟아나기도 합니다. 놀이터에서 조카녀석이 미끄럼타는 것을 찍었는데 사진에선 찾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아이들이 온통 뒤섞여 있어서 숨은 그림 찾기까진 아니더라도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상황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제 눈으로 본 것과 사진으로 찍힌 것이 달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글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