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는 뉴스사진…보도사진이 달라졌어요

곽윤섭 2008. 12. 16
조회수 9129 추천수 0


 

06Yonathan_Weitzman.jpg

이집트 국경의 철망에 걸린 아프리카 소녀의 드레스- 요나단 웨이츠만 (이스라엘)


 월드프레스포토0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보도사진재단은 매년 전 세계의 보도사진을 심사해 10개 부문에 걸쳐 수상작을 선정하고 세계 100여 도시에서 수상작들을 순회전시해오고 있다. 지난 12월10일부터는 서울 공평아트스페이스에서 한국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전시되는 사진은 2007년 한 해 동안 125개 나라의 사진기자, 사진작가 5천여명이 출품한 8만여장에서 선정된 것이다. 대상은 2007년 9월 아프가니스탄 코렌갈 계곡의 벙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국 병사를 찍은 것으로, 베니티 페어지의 팀 헤더링턴이 받았다.


01World_Press_Photo_of_the_Year_2007.jpg

대상- 아프가니스탄 미국병사-팀 헤더링턴(영국 베니티 페어)
밤 늦은 시간이라 입자가 거칠고 초점도 정확치 않다. 표정이 잘 보이는 것도 아니다. 참담한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것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일단 한 바퀴 둘러봤다. 사진이 공인된 뒤, 여러 유형을 거쳐 다양한 사진들이 생겨났고 현대의 사진은 매우 복잡해졌다. 아날로그식이나 디지털식 합성뿐 아니라 설치미술의 장르와 뒤섞인 작품들이 전시장에 등장하는 시대다. 화가의 손끝이 아니라 카메라에 달린 셔터를 누르면 작품이 완성된다는 카메라의 특질마저도 무시되는 판국이다. 그런 점에서 보도사진전에 등장하는 뉴스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옮기는 사진의 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통적인 보도사진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강력히 몰려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현대문제 스토리부문 1위를 차지한 ‘이민자의 임시 거처’는 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천막을 담은 사진이다. 난민 문제를 다룬 사진이란 것은 알 수 있으나 사진엔 사람이 없다. 한 장의 사진으로 역사적 상황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다. 그래서 상징성이 있는 순간이나 대표적인 장면을 찾아들어가는 것이 뉴스사진(사실은 모든 사진에 통용된다.)의 속성이다. 어떤 순간이나 장면이 그 상황을 보여주느냐에 대한 해석은 저마다 달라야 한다. 난민 캠프하면 으레 떠오르는 사진은 누더기를 걸친 앙상한 아이나 여자들이 빈 그릇을 들고 멍하게 움츠리고 있는 장면일 것인데 이 사진엔 사람 자체가 없다.
 뉴스 속 인물 단사진부문 1위인 ‘이집트 국경의 철망에 걸린 아프리카 소녀의 드레스’도 뉴스사진의 상식을 넘어가고 있다. 사진 아래 캡션이 있는데, 요약하면 “2007년 8월 20일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이집트 국경을 넘은 아프리카 소녀의 드레스가 가시 철조망에 걸려있다”라는 것이다. 이 사진에도 사람은 없다. 역시 철조망을 어렵게 넘어가는 아이의 애절한 표정이 담긴 사진을 기대했으나 정확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보도사진(뉴스사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심사위원장인 게리 나이트의 변을 들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그는 사진가 그룹 ‘세븐’의 회장이기도 하다. 현역에서 활동하는 보도사진가 중 가장 왕성하게 분쟁현장을 누비는 사람은 매그넘의 사진가들이 아니라 세븐 소속인 제임스 낙트웨이란 주장도 강력하다. 게리 나이트는 심사총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정 이슈 자체보단 그 문제의 본질을 잘 짚어낸 사진을 가장 좋은 사진이라고 판단했다. (심사위원들이) 잘된 사진을 선별하는 자질은 있지만 이슈 자체의 무게와 가치를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더 중요한 이슈가 전시회장에 등장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사안의 사회적 중대성에 비해 사진적으로 표현이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전지구적으로도 강력했던 사안이 있었고 그 사안을 다룬 사진이 출품되었다고 하더라도 사진적 표현이 미숙했다면 심사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는 말이다.


 심사평은 이어진다.
 “사진기자들 혹은 사진가들이 포토저널리즘의 전통에 입각한 노력을 기울인 점을 인정하지만 기존에 안주하지 않고 틀을 깨고 한계를 넘은 도전적인 작품도 눈에 띄었다. 이것이야말로 뉴스사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과제이다…. 이 전시회에서 보는 많은 작품은 우리 대부분이 세상을 바라보던 익숙한 방식이 아닌, 대중과 미디어와 다시 합류하는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미디어종사자에게도 도전이 될 것이다. 여러분! 미래가 도래했다.”
 


13Jean Revillard.jpg

이민자의 임시거처-장 르비아드(스위스 Rezo.ch)


 세계보도사진전에서 선정된 사진이 세계의 사진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순 없다. 저널리즘의 목적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를 선도해나가는 것이 언론의 숭고한 목적이란 점에서 보도사진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미래가 도래했다는 것은 사진 표현 양식에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누른 셔터를 통해 표현된다는 원칙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스포츠부문, 아트와 엔터테인먼트, 자연 부문에 출품된 사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전쟁터를 담은 사진이 너무 진지하다보니 오랫동안 쳐다보기가 거북한 것은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전시회는 30일까지 열린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내려 3-1번 출구로 나가면 공평아트스페이스를 찾을 수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9Q6J9791.jpg

카불시장-벤자민 로위-일상생활 단사진 부분 2위 (미국 세븐 네트워크)
사건 사고 현장부문이 아니다 보니 이렇게 서정성이 높은 사진도 보도사진전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02_John_Moore.jpg

베나지르 부토총리 암살-존 무어-스폿뉴스 단사진부문 1위(미국 게티이미지)
형편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한 것 같다. 종종 유일한 현장의 기록일땐 화질이 떨어져도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로버트 카파의 상륙작전 사진처럼 흔들리기 때문에 더 긴박해 보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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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마라톤 결승점의 선수들-에릭 레프너-스포츠 특집 스토리부문 1위(덴마크 베를링 타임즈)
골인 지점의 선수들 얼굴을 모았는데 아이디어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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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여학생 터키 동부-바네사 윈십-인물 스토리부문 1위(영국 아장스 뷰)
개인적으로 가장 호감이 가는 사진이었다. (사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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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포트폴리오-페이 마오화-스포츠 액션 스토리부문 2위(중국 관영신화통신)
공도 없고 표정도 없다. 외국에선 이렇게 찍어도 인정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부러운 풍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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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최소 1분씩은 쳐다 봐야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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