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중학생의 사진이라고?

곽윤섭 2008. 11. 11
조회수 26179 추천수 1

 

언북중01.jpg

언북중학교 사진반 학생들이 과천 서울랜드를 찾았다. V라인 포즈를 요구했는데 왼쪽에 있는 지도교사 최태원 선생님과 그 옆의 교장 이신우 선생님의 포즈가 더 깜찍해 보인다. 센스있는 멋진 선생님들이다.

 

 


우리 학교, 우리반, 우리 친구들

 

한겨레신문사와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하는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 이란 행사가 있다.

 

http://blog.hani.co.kr/kwak1027/ 에 가면 사진으로 소개해두었으니 슬쩍 훑어만 봐도 어떤 행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금년엔 처음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학생사진공모전이 열렸다. 9월 23일부터 10월 22일까지 싸이월드 클럽을 통해 사진접수를 받았다. 주제는 우리학교, 우리 반, 우리친구들이었다. 첫 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사진을 보내왔고 심사를 맡았다.

 

깜짝 놀랐다. 학생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을 줄 몰랐다. 아래는 필자가 쓴 심사소감문의 요약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서울동아리한마당 행사의 일환으로 한겨레신문사가 올해 조촐하게 시작한 '2008서울학생사진공모전'에 응모한 학생들의 사진을 심사하기 위해 하나씩 차례로 클릭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번 공모전의 테마는 ‘우리 학교, 우리 반, 우리 친구들’이었다.... 수업을 받는 장면도 있고 쉬는 시간에 장난치는 모습이나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벌을 서는 모습도 있었다. 공부에 지쳐 졸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많이 올라왔다. 산더미같이 쌓인 책을 앞에 두고 기진맥진한 모습에서 그 옛날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학생들이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사진을 고르면서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학생들이 얼마나 잘 찍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노출도 틀리게 잡아놓고 교모 세 개를 한 줄로 세워놓고 찍던 유치한 사진과 비교할 수도 없이 뛰어났다.

 

우선 소재가 매우 다양했다. 진지함과 발랄함이 모두 갖춰졌다. 모든 사진이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진지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갖춘 학교생활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좋을 사진도 있었다. 많지 않은 사진을 보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위험은 있지만 임성혁, 박희정, 이남영, 정종민, 홍세진 등의 사진이 그랬다. 학생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 속에서 마치 학생이 아닌 제 3자의 시선으로 본 것 마냥 객관성이 있어서 뜨끔했다. 구성의 측면에서 뛰어난 사진도 많았다...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작품들이 평범하다는 뜻은 아니다. 20명 명단에 오른 모든 학생들이 우수했다. 사실은 20명에 들지 못한 사진들 중에서도 아까운 것이 많았다. 복수의 출품작에서 제한된 수의 사진만 남긴다는 것은 늘 심사하는 사람의 능력을 시험하는 일이 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을지 몰라서 여러 번 사진을 검토했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다. 20명에 들지 못한 분들께서는 심사위원의 어리석음을 탓해도 할 말이 없다.

[중략] 

 

사진에 관심이 많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몇 번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사진반을 운영하고 싶지만 요즘 아이들과 부모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시험과 상관없는 활동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동아리가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고 사회생활을 하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직장인들을 보면 그들이 학창시절에 그림이든 피아노든 문화적 활동을 꾸준히 했는지 아닌지에 따라 성장한 후의 감성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부만 해서 대학을 통과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과 맞비교 할 때 문화적 소양의 차이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 사진은 긴 기간 동안 학원을 다닐 필요도 없이 꾸준히 찍고 이따금 평을 받으면 되는 장점이 있으니 바쁜 학교 시절에 최적의 감성교육으로 사진을 권한다.

 

명단에 들었든 아니든 간에 출품한 모든 학생사진가들의 미래가 훨씬 풍요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장담한다.                                                                          곽윤섭

 

이 글을 사진을 접수했던 싸이월드의 동아리한마당 클럽에 수상자 발표와 함께 올렸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덧글을 달았다.

 

저도, 물론 이 글을 읽는 학생들 모두 눈시울이 붉어질게 틀림없을 겁니다. 우리들의 사진을 소위'학생 사진'이라는 것 때문에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 항상 가슴속에 응어리 져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들의 사진들을 보고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어른들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했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최유나.jpg

언북중 최유나

 

중등부의 사진을 선정하여  넘겼더니 행사를 진행했던 한겨레 사업부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중학교부에선 한 학교에서 7명이나 포함되었네요.”

 

사진을 심사할 땐 학교명을 몰랐기 때문에 어느 학교가 몇 명이나 선정되었는지 몰랐다. 전체 20명 중 7명이라니 놀라운 결과였다. 그래서 학교 이름을 물었더니 언북중이라고 했다.

 

동아리한마당 행사가 열린 11월 6일 서울랜드를 찾았다. 그날 언북중학교의 사진반 학생들과 지도교사 최태원 선생님과 이신우 교장선생님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다.

 

이신우 교장선생님을 먼저 만났다. 학생들의 활동이 대견했을 것이다. 흐뭇한 표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특히 강남지역의 학교라서 엄마들에게 끌려 다닐 나이인데 이렇게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는 기억만이라도 남길 수 있는 것은 커서 어떤 길을 걷게 되더라도 도움이 될 일이다. 아직 장래 희망이 굳어지지 않은 상태이니 여러 가지 가능성이 다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최태원 선생님은 “뭔가 한 발자국 다가가서 찍고 또 멀리서도 담아보라고 한다. 예쁜 것만 쫓지 말고 걸어가면서 생각하고 누르라고 했다. 주제의식을 던져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서대문형무소를 갔을 땐 그 곳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각자의 감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려 했다. 요즘 중학교 학생들은 나이가 적지 않은 편인데도 바깥으로 다녀볼 경험이 없다보니 거리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우스갯말로 ‘강남촌놈’이라고 하는데 삼청동 길로 출사를 갔더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학교와 집, 학원 밖에 모를 아이들인데 강남에선 볼 수 없는 거리가 좋았던 것 같다.”

 

현재 사진동아리는 2~3학년 20명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동안 서대문형무소,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파주 영어마을 등으로 출사를 다녀왔다. 주로 계발활동 시간을 활용하는데 한 달에 하루 정도 밖에 시간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과 다니면서 간식거리 같은 것은 주로 최 선생님이 부담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하는 표정이 밝다.

 

“현장에 가면 장소를 설명하고 직접 찍어서 보여주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것을 주문한다. 이론교육이라고 별스럽게 한 것은 아니고 구도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줬을 뿐”이라며 “가급적 창의성을 살리게 위해 알아서 찍도록 권한다”고 했다.

 

3학년 최유나 학생은 “나중에 커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은 지는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사람들도 찍고 풍경도 찍는데 사진 찍기는 재밌고 웃기는 것 같고 가끔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엔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다.” 역시 3학년이며 나중에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이재윤 학생은 상을 받은 자신의 사진에 대해 “나무가 멋있었다. 친구들이 나무아래 앉아있는 것을 보고 찍었다.”고 말했다. 크기는 작지만 인물이 있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는 뜻이니 눈썰미가 대단한 것이다.

 

금년 행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학생들의 솜씨 자랑은 해마다 계속 될 것이다. 빛나는 수상작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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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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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강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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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부여중 금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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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중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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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중 김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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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중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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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중 백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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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중 민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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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명여중 박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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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손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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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손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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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중 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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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중 양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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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염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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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중 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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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중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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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중 조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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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중 한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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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중 허정희

 

 

고등부는 지면용량의 문제때문에 특히 인상깊었던 몇 장만 소개한다. 나머지 수상작과 전체 사진들은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http://club.cyworld.com/seouldon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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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고 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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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임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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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컴퓨터고 왕은희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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