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가을 테마전]
계단에 정수영의 해산첩-집선봉을 그려두었다. 멀리서 보면 금강산의 절경이 그대로 보인다.
산수화는 산과 물, 나무와 돌 등 풍경을 주로 그린 그림이다. 인물, 화조와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그림의 종류라 할 수 있다. 인위적인 분류라서 내키진 않지만 사진에서도 비슷하게 나눌 수 있다. 인물을 찍으면 인물사진이며 꽃과 곤충을 가까이 찍으면 접사사진일 것이고 산과 숲과 물과 강, 호수 등을 멀리서 담으면 풍경사진이 된다. 그러므로 산수화는 사진으로 보자면 풍경사진에 해당한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을 많이 보는 것을 늘 권하지만 좋은 그림을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 그림과 사진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 그림과 사진의 유사점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수화는 생략과 변형 등을 통해 특징적인 인상만 전한다. 아리 그뤼에르나 브뤼노 바르베의 사진을 보면 그늘, 눈, 안개 등을 통해 산수화를 그린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진가와 화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국민여동생’ 문근영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바람의 화원’ 덕도 있고 비슷한 시기 산수화를 공개한 간송미술관의 덕도 있어서 이 가을 대한민국에 산수화 바람이 불고 있다. 아주 가끔 텔레비전이 대중들의 교양을 살찌워주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것, 진경산수화는 다시 실경과 선경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다시금 기억에 되살아난 것도 그 덕이다. 정선의 그림 중에서 진경산수화의 완성이라 불리는 금강전도는 이름에서 보이듯 금강산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린 곳은 금강산이 아닌 청하(원래 청하군이었다가 포항시에 통폐합되었고 청하면은 지금도 남아 있다)였다. 정선이 58살 되던 1733년 청하 현감에 제수되어 1734년까지 청하에 머무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국보 217호인 ‘금강전도’가 이 시기의 작품이었다. 금강산을 다녀온 지 20년이 지나 기억에 의존하면서 그린데다가 비행기가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공중에서 새가 내려다본 듯한 부감시로 그렸다. 있는 그대로를 그린다기보다는 당시의 감흥을 전달하는 데 더 주력한 것이다. 그래서 정선을 선경형 진경산수화의 대표주자라고 말한다.
간송의 전시회는 지난 주에 막을 내렸지만 더 큰 규모의 전시가 아직 열리고 있는 곳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을-유물 속 가을이야기’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회화, 항아리 등 유물 중에 가을을 테마로 한 작품 140여점을 모아서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이 가을을 만끽할 수 있고 간송과 달리 널찍한 공간에서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박물관 열린마당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정수영(1743~1831)이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그린 해산첩을 대형으로 그려두어 시선을 끌었다. 관람객들이 편하게 금강을 오르기도 하고 산허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산수화와 관련된 전시를 홍보하는 데 있어 이만큼 좋은 아이디어가 또 있을까 싶다. 박물관의 재치가 돋보였다. 전시실 내부는 어두운 게 흠이다. 유물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원본을 어둡게 두고 복사본을 같은 크기로 나란히 걸어두는 배려가 부족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에 ‘가을’과 만나러 가보자. 국립중앙박물관은 지하철 1, 4호선 이촌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
*정선의 내연산 폭포 사진과 설명을 위해 포항시 공보관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선이 청하(지금의 경북 포항시)에서 현감으로 지낼때 그린 진경산수 걸작.
이 그림 역시 정선이 청하현감 시절 그렸다. 경북 포항 인근 내연산에 있는 세 개의 폭포를 그린 것으로 위에서 부터 연산폭, 관음폭, 잠룡폭포다. 실제 이곳에선 이 그림과 같은 앵글을 찾을 수는 없다. 선경 산수화의 특징인 '다시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거리도 떨어져있고 보는 각도도 다르지만 하나의 그림 속에서 중간의 간격을 생략해버리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다.
위 그림에서 가장 윗부분에 있는 연산폭의 현재 모습이다. 그림과 달리 연산폭과 관음폭은 앵글의 차이가 크다. 정선은 이 지역의 산수를 몹시 사랑해서 여러 그림으로 남겼다.
박물관은 자체로 멋진 출사장소다.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을' 전시회의 내부.
ⓒ 브뤼노 바르베/매그넘 포토
쌓인 눈으로 산을 가라앉혔고 안개로 도시를 눌렀고 앞의 꽃나무도 흐릿하게 처리되었다.
필요에 따라 톤을 눌러주는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사진가와 화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충무로 갤러리 M 에서 브뤼노 바르베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11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