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사진명소답사기⑥
고창 선운사 꽃무릇길
그동안 주로 사시사철 언제 찾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을 소개했다. 그런 곳은 지형이나 구조물 자체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름대로 특색있는 한 장의 사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운사도 철 따라 언제나 볼 것이 있긴 하지만 꽃을 테마로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정주와 김용택의 시에서도 등장하지만 그보단 송창식의 노랫말이 먼저 떠오르는 선운사 동백꽃은 4월 중순에 볼 수 있다. 해마다 가을 선운사에선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꽃무릇이 지천이다. 대략 9월20일께를 전후해서 절입구 관광안내소부터 도솔암에 이르는 3킬로미터 가량의 길과 개울가와 꽃밭에 수도 없이 꽃대가 올라와 펑펑 꽃을 피워올린다. 실처럼 늘어지는 불꽃놀이를 보면서 실국화를 연상하곤 했는데 꽃무릇 밭이야말로 시뻘건 불꽃에 다름아니었다. 꽃무릇이 저렇게도 붉은 이유는 잎 하나 없이 달랑 꽃을 피워낸 꽃대가 선명한 녹색이라 선명한 대비를 보이는 덕도 크다. 후보정을 습관처럼 하는 사진가라고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더 무엇을 만질까 싶다. 십여분 렌즈를 통해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후보정 프로그램 ‘색조정’ 에서 붉은 색을 몇 번이나 마우스질한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깜짝 놀랐다. 한두 군데만 핀 것이 아니니 자리다툼을 하면서 렌즈를 들이댈 필요가 없어 좋다. 꽃송이만큼 많은 사진가들이 저마다 이곳저곳 쭈그리고 앉아서 꽃과 씨름한다. 어떤 이는 짙은 초록색 이끼 가득한 나무를 배경으로, 또 어떤 이들은 개울물을 배경으로 꽃무릇을 담고 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만난 문화관광해설사 강신교(61)씨는 “지난해엔 사진작가 2천여명 정도가 모델 출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간혹 꽃밭 속으로 들어간 탓에 금년도엔 (꽃밭에) 군데군데 빈 곳이 보인다” 며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눈으로만 감상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 송이 속의 우주를 보려면 접사렌즈가 있어야겠지만 무리를 지은 모양새를 보겠다면 번들렌즈로도 아무 지장이 없다.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9월27일까지는 풍성한 꽃무릇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동백과 꽃무릇의 꽃피는 시기는 해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며 가장 정확한 정보는 선운사 누리집 http://www.seonunsa.org/ 에서 찾을 수 있다.
글·사진/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