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바라 시세이_청계천 사진전’
일본의 유명 원로사진가 중엔 ‘매그넘코리아’에 참가했던 일본 유일의 매그넘 회원 구보타 히로지(69)가 있고 비슷한 연배로 구와바라 시세이(72)가 있다. 두 사진가 모두 한국을 자주 방문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구보타는 남과 북을 모두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고, 구와바라는 1964년을 시점으로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시위 등 격동의 한국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구와바라는 1965년 당시 복개공사가 진행중이던 청계천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오물이 흐르는 강바닥엔 콘크리트 기둥이 들어서 있고 주변으로는 아직 3층 건물의 판자집이 늘어서있던 시절이다.
구와바라는 한 책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청계천이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있었던 덕분에 나는 가끔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걸어서 촬영을 하러 갔었다. 아침 8시 정도에 청계천에 도착해보면 주민들의 생활을 외부에서 엿볼 수 있었다. 부산의 피난민 지역과 같이 전기배선은 들어와 있었지만 상하수도 설비는 없었다….”
김영섭사진화랑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청계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965년 청계천과 청계천변의 사람들을 찍은 사진 25점이 전시되고 있다. 엿장수, 세탁소, 미장원, 구두닦이 등 당시의 사회상의 단면들이 사진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스며들어 있다. 사진가의 증언처럼 “외부에서 엿본” 앵글이 많은 것은 시대의 특징이자 한계점이라 하겠다. 당시 외국 매체인 일본의 한 잡지사에서 파견된 구와바라가 국내의 기자들에 비해 한결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유롭게 촬영하긴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비슷한 시기 부산에서 활동하던 사진가 최민식도 “여러차례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과 보안부대에 잡혀들어가곤 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스냅도 몇 장 있다. 골목길 앞에서 수줍은 듯 웃음짓는 여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뒤로는 기름병을 든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엔 몇 초간의 시차밖에 나지 않는 같은 앵글의 사진 두 장이 붙어 있다. 이 사진들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맨위엔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운데는 빨래나 펌프질을 하거나 더러운 물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고 맨 아래엔 바로 그 더러운 물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청계천 사람들의 생활을 단 한 컷으로 보여주는 적나라한 장면이다. 9일 오후 개막 첫날인데도 전시장에 심심치 않게 관객들이 들어왔다. 옛날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찾아왔다는 서영호(23)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인데도 웃음띤 표정이 보이는 사진이 있어 특이했다”며 “(사진이 찍힌) 1965년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이 친근해보였다”고 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이해인(25)씨는 “사진을 다 보고 나니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떤 장면이 슬펐냐고 묻자 “(사진 속에서 나타난) 1965년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청계천 복개 공사를 앞두고도 오히려 편안하고 행복해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지금 개발이 완료된 (청계천의) 모습은 한국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43년 전에 비해 부족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사진속의 옛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보는 것이 좋은 공부”라는 이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크지 않은 전시지만 볼 이유가 충분하다. 10월 14일까지 열린다. www.gallerykim.com
2004년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한 구와바라 시세이
한국인 눈에 비친 2008년 캄보디아의 ‘리빙필드’ ‘이성재_Colors of Cambodia’
gas station 이성재
김영섭화랑을 나와 수도약국 방향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 첫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면 토포하우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1층에서 이성재의 사진전 ‘Colors of Cambodia’가 열리고 있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한 이씨가 2008년 상반기인 5월과 7월에 걸쳐 두 차례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찍은 기록들이 전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10년 전에 사업차 캄보디아에 머물렀던 인연이 있었다. 캄보디아 하면 누구나 킬링필드를 떠올릴 정도로 아픈 과거사를 가진 나라지만 지금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그래서 2008년 현재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리빙필드’를 찍는다는 마음으로 이 사진들을 담았다” 고 이씨는 말했다. 전시장엔 22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일단 가볍게 한바퀴 둘러보고 나면 (사진에서) 관광객의 시선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뭔가 다른게 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관광객의 시선을 빌렸지만 사진의 메시지는 관광객의 그것이 아니다”라며 “캄보디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흐름을 알고 난 뒤에 어떤 생각을 갖고 주제에 접근해야만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빵을 팔고 있는 상인들을 담은 사진에서 초점은 빵에 맞춰져 있고 인물들은 얕은 심도로 인해 흐릿하게 처리가 됐다. “캄보디아는 오래 전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바게트를 먹는 문화가 남아있다. 그런 사실을 알아야 쌀농사를 짓는 캄보디아의 길거리에서 왜 바게트를 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외의 여러 사진도 현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사진속 사람들의 표정에서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은 별로 볼 수 없다. 찍을 때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절을 갖추면 저쪽에서도 호의를 갖고 대하더라는 이씨의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처음 만날때 ‘속삽바이(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면 긴장이 한결 풀리면서 사진찍기도 슬슬 풀리더란다. 거부감을 표현하는 경우는 잘 없었지만 혹 그럴 경우 바디랭귀지를 동원하고 웃음 띤 얼굴표정으로 대응했는데 대부분 해소가 되었다고 한다. 코코넛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다 카메라앞에서 포즈를 취한 소녀들의 미소에서 2008년의 캄보디아를 표현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잘 보인다. 9월16일까지만 열린다. http://www.topohaus.com
사진가 이성재씨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