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의 제 글을 읽으신 dasto3118 님께서 덧글로 문제제기와 질문을 해오셨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 만한 문제 제기이므로 이 코너를 이용해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먼저 덧글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자연스런 사진 찍으려면 ‘몰카’ 불가피하지 않나
인물사진 권장하는 기자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기자님은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냐 안하냐에 대한 구분은 말씀을 안 하신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의식한 채로 찍는 사진이 안좋다는 게 아니라 무슨 내용 있는 사진을 찍고 싶으면 캔디드샷, 즉 몰카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가정해보십시오. 얼마 전에 정말 어린 귀여운 꼬마아이가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성숙하게 핸드폰을 받는걸 봤습니다. 그리고 마치 안 좋은 소리라도 들은 마냥 찌푸린 표정을 지으면서 통화를 합니다.이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이대 보십시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아이는 분명 모습을 바꿀 겁니다. 제가 처음에 봤던 그 이미지가 깨져버리죠. 강의실의 길냥이는 동물이지만 사람은 그렇지가 않죠. 초상권 같은 문제도 있고요. 아이가 어른이였다면 경찰서 및 법적대응까지도 가야할지도요. 그 어떤 성인군자라도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대면 열에 열 명 거부반응 과 더불어 카메라를 의식함으로써 사진사가 봤던 이미지는 깨질 겁니다.
사람 그 자체를 찍는다면 기자님 조언이 적용되겠습니다만 사람과 사람의 활동모습(시장에서 모습, 거리의 사람들, 일하는 모습 등을) 찍는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일단 찍고 봐야 하나요? 그리고 그 후폭풍(?)은요? 얼마 전 매그넘 작가들 역시 한국 사람을 많이 찍었지만 그 작가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였다고 해도 과연 그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자연스러운 인물을 찍으려면 몰래 찍어야 하는데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가? 몰카와 다를 것이 뭐냐? 초상권 시비는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문제제기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활동모습을 찍을 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몰카'도 촬영 뒤 당사자 동의 받아야
많은 사진가들이 이 대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 나가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앞의 글 “최고의 모델은 가까운 곳에” 편에서 인물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이나 주변의 친한 사람을 찍으라고 말한 것을 상기해주십시오. 아는 사람을 찍게 되면 최소한 초상권 시비에선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굴욕스러운 장면을 찍게 되면 화를 내겠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가 무슨 사진을 찍든 그 사람을 수치스럽게 해선 안 됩니다. 매그넘의 대가들 중에서도 가장 원로인 엘리엇 어윗이 “나는 일생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이것은 직업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를 포함한 사진가들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동남아 같은 곳에 간 한국의 사진가들이 (상대적으로) 남루한 옷차림의 현지인들을 한국전쟁때 전쟁고아나 거지를 찍듯 찍어오는 것은 굉장히 난폭한 행위입니다.
가족이나 주변의 아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어떻습니까?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기자나 사진작가들이라면 자기의 업무이니 인물을 찍을 때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반드시 허락을 받고 찍든지, 아니면 찍고 난 뒤 허락을 받든지 해야 합니다. 간혹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있어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그 사진을 발표하게 되었다면 추후에 벌어질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진을 찍은 뒤에 당사자의 동의를 받는 것은 표정이 바뀌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들켜버리면 사진을 못 찍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미묘합니다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핸드폰 받는 아이의 경우라면 몰래 찍어서 자연스런 표정을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여 블로그에 올리든 카페에 올려야 합니다. 이때 각서까지 받아야 될 일은 아닙니다. 이메일 주소를 받아와서 사진을 보내주는 것으로 암묵적 동의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그 사람의 인격을 침해하는 사진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2. 만약 핸드폰을 받는 어른이라고 한다면? 생활사진가라면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들켰을 때 설득할 자신이 있으면 먼저 몰래 찍으십시오. 드러나면 표정이 바뀔 터이니 몰래 찍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들켰을 때 도망가야 한다면 찍지 마십시오. 농담입니다만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도망가든지요. 앞서 말했듯이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면 안 됩니다. 생활사진가라면 자신의 취미 혹은 예술 활동을 위한 사진 찍기이므로 소신을 갖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순수한 목적을 알려야 합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해보면 대화의 기술도 늡니다. 좋은 사진가가 되려면 친화력이 좋아야 합니다. 모르는 이와 빨리 친해지는 사람이 사진을 잘 찍게 됩니다.
3. 시장이나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활동하는 것을 찍는다면?
개인적인 행위, 즉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것, 어부가 그물을 걷는 것, 농부가 벼를 베는 것 등은 사적인 영역입니다. 위의 핸드폰 받는 어른과 다를 바 없으니 매너를 지켜야 하고 대처방안도 같습니다. 공적인 성격을 갖는 행위, 즉 거리공연의 배우나 가수 등이라면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여러 사람이 자신을 지켜봐줄 것을 기대하는 상황이므로 개인공간을 침범해서 사진 찍는 행위와는 뚜렷하게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4. 매그넘작가들이 한국에서 작업할 때도 거의 위에서 나온 규칙대로 했다고 합니다.
몰래 찍고 동의를 구하거나 찍기 전에 양해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간혹 거리에서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경우엔 일일이 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아닌 배경으로 등장하는 인물까지 신경 쓸 일은 아닙니다. 역시 어떤 등장인물에게도 수치심을 유발하는 표정이 찍혔다면 곤란하겠습니다. 그때도 허락을 받았다면 문제가 없겠습니다.
창덕궁 태극정을 촬영하고 있는 생활사진가. 멋진 앵글을 찾아서 몸을 눕히는 열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기때문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여러사람이 등장하지만 역시 옆모습이거나 뒷모습이기 때문에 따로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