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진 찍기 전 마음을 열어야

곽윤섭 2008. 10. 06
조회수 1258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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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커버스토리를 위해 제가 찍은 한비야씨입니다.

 

‘작업’을 걸듯 이야기를 나눠보자

 

인물사진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모델이 자기가 사진에 찍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카메라를 바라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여유가 있을 것이고, 그 때문인지 사진 속에서 여유있게 보입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진 찍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찍어야 할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지는 각자 고민을 해서 준비해둬야 합니다. 처음엔 인사를 나누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날씨가 좋아졌다는 한 마디로도 사람들은 서로 편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인사에 약한 편입니다. 인사를 잘 안한다는 것이 아니고 인사를 할 때 건네는 말이 단조롭고 소재가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다음엔, 기껏 “식사하셨어요?” “잘 지내세요?” “건강하시죠?” 등이 고작입니다.
 
가장 좋은 소재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만약 사진을 찍기 위해 모셔 놓은 모델과 처음 만난 상황이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일단 안부를 묻는 인사는 기본으로 하고 옷을 잘 입었다든가 머리가 어울린다는 이야기라도 하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브람스를 아는지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일단 눈에 띄는 옷, 얼굴, 신발 등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거나 동질감을 보여주면 긴장이 많이 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좋은 대화 소재는 그 사람이 좋아하거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관심사에 대해 사전에 들은 적이 있다면 먼저 그 소재를 꺼내도 되고 모르는 상태에서 만났다면 물어보면 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사진찍을 때 꼭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름과 나이를 묻지만 고학년들에겐 다른 것을 물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화가 뭔지 꼭 묻는 것입니다. 이때 초등학교 아이들의 게임이나 만화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면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상대가 뭐라고 하는데 아예 못 알아듣고 딴 소릴 하면 역효과가 날지도 모릅니다.

 

성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작업’이라도 거는 것처럼 취미와 관심사를 물어보고 조금이라도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말을 붙여 보는 것입니다. 사진가는 모든 방면에 만능일 필요까진 없어도 두루두루 많이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대화를 건네는 목적은 전문지식을 겨루어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진찍을 모델이 말을 많이 하게 하는 것으로 목표 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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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을 상대가 좋아할 만한 대화의 소재를 찾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라면 먹는 모녀를 찍을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처음 만나는 상대였고 사전 정보도 전혀 없었습니다.  모녀가 라면을 끓일 오래된 양은솥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위해 인물을 찍는 일이었습니다. 라면을 끓여서 먹는 것을 찍었는데 라면이 맛있냐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라면 안 먹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아하는 라면의 브랜드와 라면 끓일 때 파, 고춧가루, 계란 따위를 넣고 넣지 않고의 차이정도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 아주 흔한 이야기 소재, 아주 편한 소재였습니다. 몇 마디만에 긴장이 풀렸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마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의 사진을 찍는다면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아주 뛰어난 사진가가 와서 긴장을 풀어줄 대화를 나눈다 해도 라면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어색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결국 관건은 그 인물들의 성격과 선택에 달려 있고 그 인물들이 사진가를 신뢰하고 배려해준 덕분이란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사진가의 역할이 꼭 숨어있음을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찍은 사진 같이 보면서 친밀감 다지기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취재 현장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제게 이상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도 모르게 수시로 찍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위나 행사 사진이라면 제가 카메라를 몇 번 들여다 보든 아무도 간섭을 않겠지만 인물촬영땐 좀 난처했습니다. 온 몸에서 풍기는 중견 사진기자의 위상이 갑자기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자꾸 LCD 모니터로 눈길이 가는 습관을 자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름카메라 시절엔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들여다 본다고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니.

 

인물을 찍고 찍히는 것은 분명 두 사람간에 말없는 대화가 오고가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람쪽이 모델에서 눈을 떼고 카메라를 본다는 것은 쑥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얼떨결에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찍은 것이 궁금해지면 일단 내가 먼저 보고, 그 사람이 궁금해 하면 그이에게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게 방금 찍은 다섯 컷입니다. 어느 것이 마음에 드세요? 저는 세 번째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양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사진기자들이 와서 숱하게 사진을 찍어갔지만 찍다가 보여준 사람은 기자님이 처음이에요.” “와 신기하다.” “나도 디지털 카메라 있어요. 내 카메라도 찍으면 이렇게 보이던데….” 어떤 이들은 아예 재미를 붙여서 찍은 사진을 다 보여달라고 합니다. 보여줘서 안 될 일이 없기 때문에 다 보라고 건네줍니다. “지우진 마세요…”라고 한마디 하면서.

 

자기가 마음에 드는 컷을 골라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거 실어주면 안돼요?” 그 컷이 저의 마음에도 든다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네, 37번째 컷이네요. 그러죠. 뭐”

 

물론 회사로 돌아오면 찍은 것을 모두 컴퓨터에 띄워놓고 정밀 검토에 들어갑니다. 여러 가지 기준을 이용해 지면에 실릴 한 컷을 골라냅니다. 그 사람의 희망사항과 일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른 컷이 실렸다고 항의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진을 보여주다 대화도중 믿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며 열에 아홉은 “알아서 제일 잘 나온 것으로 골라주세요”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 믿음이나 친근감이 생기게 만드는 방법으로 촬영도중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아주 권장할 만합니다. 권위는 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진가의 권위나 실력은 겉으로 풍기는 것이 아니고 사진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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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장동민씨가 회사에 왔습니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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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씨가 인터뷰사진를 위해 회사에 왔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제가 사진을 찍었는데

기념사진도 한 장 같이 했습니다. 전 카메라앞에선 엄청나게 긴장합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예쁘게 나온 것으로 알아서 써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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