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찍을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를 해봤습니다. 사진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앵글’로 문제를 들여다 본 것입니다. 어떻게 찍을 것인지에 대해 답을 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앞서 제시한 몇 가지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중요도로 따지자면 ‘어떻게’의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찍느냐는 문제입니다.
어느날 문득, 지름신이 강림하시는 바람에 중저가의 렌즈교환형 SLR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고 합시다. 상자에 들어 있는 설명서를 읽고 버튼과 다이얼을 조작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습니다. 노출도 어떻게 조정하는지 대강은 파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생활사진가들은 모두 경험상 알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의 결혼식, 돌잔치, 나들이 등 벌써 제목이 정해진 출사는 그래도 뭘 찍어야 하는지는 알고 나가는 것이라 덜 답답한 편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제도 없이 어느날 문득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을 때 가장 막막한 문제가 바로 무엇을 찍느냐는 것입니다. 뭘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판에 잘 찍고 못 찍고는 사실상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야기의 순서를 잠깐 바꿔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먼저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인물보다 풍경에 더 끌리는 이유
이제 본격적으로 무엇을 찍을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은 풍경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입니다. 풍경사진이 인물사진보다 더 가치가 낮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시사철의 변화처럼 인물의 표정도 날마다 변하고 계절따라 옷차림도 달라지며 기분에 따라 낯빛도 수시로 달라집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진가의 주변엔 늘 사람이 있습니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은 알고 있는 인물도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의 지인들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찍느냐에 해당하는 첫 과제로 인물찍기를 제시합니다.
초보사진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사진을 시작하면서 찍는 대상으로 인물 대신 풍경을 택한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를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 중에선 특정 혈액형과 상관없이 소심한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진찍기란 행위는 어느 정도 공격적인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카메라의 생김새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SLR의 경우 투박한 느낌이 상대방(사진 찍히는 대상)에게 위협적으로 보이기 십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진을 찍는 행위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성격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소극적인 사람들은 그게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적극적인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측면도 매우 강하게 작용합니다.
스스로를 마음이 작은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생활사진가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심클럽’이라는 우스개가 섞인 모임 이름을 가지고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 인물을 찍는 것보다 풍경을 더 선호했던 이유를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심클럽 회원들에게도 인물사진을 가장 먼저 시도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인물사진을 잘 찍을 뿐만 아니라 풍경도 잘 찍게 되었습니다. 다음시간엔 인물사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투투
주변에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면 길냥이라도 찍을 수 있다. 동물도 인물사진의 모델로 아주 훌륭하다. 목의 끈은 사진으로 보이는 것 보다는 느슨했다고 한다. 사진/장은경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도 없고 길냥이도 없다면 거울을 이용해 자화상이라도 찍어보자. 역시 인물사진의 좋은 소재가 된다.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