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눈높이에서 ②
취재 때문에 흔히 ‘길냥이’라고 불리는 거리의 고양이들을 찍을 일이 있었습니다. 밤이 이슥한 퇴근길에 몇차례나 동네 어귀에서 마주친 적이 있어 쉽게 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날 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벌써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5월인데도 밤공기가 추웠는지 골목에 주차된 차밑에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취재수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온 원칙이 몇 가지 몸에 배어 있었으므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쉬운 상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쉬운 취재, 어려운 취재가 따로 없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만 따지면 산에 가서 호랑이를 찍어오는 것도 어렵고 동네 고양이를 찍는 것도 어렵습니다. 난이도와 상관없이 마음먹은대로 되질 않는다는 뜻입니다. 발견하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최초의 한 컷을 찍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리가 다소 멀어도 상관없습니다. 만약 한 걸음 더 가까이 접근했다가 도망이라도 가버린다면 그나마도 내 손 안에 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뉴스사진에선 멀리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는 것과 한 장도 못 찍은 것의 차이는 냉혹합니다.
이제 한 장을 확보했으니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계속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녀석의 상태도 파악이 되었습니다. 70~200미리 렌즈에서 200미리 화면에 가득찰 정도로 가까이 갔는데도 이 녀석은 도망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움직임 자체를 매우 귀찮아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나에게서 적의를 느끼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무엇보다 녀석이 퍼질러 앉은 자리가 자동차 밑이라 내가 갑자기 공격을 한다 해도 피하기가 쉬울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프레임을 구성해볼 여유도 생겼는데 노출은 계속 문제였습니다. 가로등이 없어 플래시가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플래시의 빛이 세질 것이므로 항상 마지막 컷이란 각오를 하며 고심해서 앵글을 잡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전히 반응이 침착했습니다. 약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찍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진을 찍을 욕심까지 났습니다. 보통 거리의 고양이가 퍼질러 앉아 있으면 앉은키는 몹시 낮습니다. 그래서 말이 쉬워 ‘눈높이’지 호락호락하진 않았습니다. 거의 엎드리다시피 했는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세로로 찍어 카메라 바디의 두께만큼이라도 줄여보려고 했으나 조금의 차이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플래시가 얼굴 옆으로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보기가 싫었습니다. 결국 카메라를 뒤집어서 찍었습니다. 물론 몸은 더 낮춰야 했지만 플래시빛이 렌즈 아래에서 나갔기 때문에 얼굴 주변에 그림자가 거의 생기지 않았고 길바닥의 요철부분엔 그림자가 두드러지게 보여서 길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낼 수 있었습니다.
서너번 플래시가 터지자 차츰 인상을 찌푸리던 녀석이 기어코 고개를 돌렸습니다. 나는 이미 만족할 만큼 사진을 찍었으므로 더 이상의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휴식을 방해당한 고양이는 불만이 많았을 것입니다.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경우 미끼로 쓰려고 준비했던 쥐포를 녀석의 구역 근처에 뿌려주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거리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해선 따로 논의가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룻밤 모델이 되어준 수고의 대가를 받을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 다른 녀석들을 찾아보려고 집에서 다시 나왔을 때 쥐포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습니다. 구역이 있는 동물이므로 필히 아까 그 녀석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함이 좀 가셨습니다.
먼 거리에서 보자 마자 찍어둔 사진
세로로 찍은 사진. 표정에 경계심이 가득하다.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찍은 사진. 플래시가 렌즈 아래에서 터지니 얼굴 주변 그림자는 말끔히 없어졌고 바닥의 질감이 강하게 살아났다.
몇 번 플래시가 반복되자 눈을 찡그리고 있다.
기어이 고개를 돌리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글 사진 곽윤섭 한겨레 사진전문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