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개막일인 지난 3일 전시장에 걸린 청년노동자 김종수씨의 무덤 사진 앞에 선 안온 작가. 사진 안온 작가 제공
» 서울대 1학년 재학 중 의문사를 당한 김성수의 무덤. 1986년 6월 18일 자취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뒤 사흘이 지나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나일론줄에 묶여 세개의 시멘트덩이를 매단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안온 작가 제공
» 서울대 재학 중 의문사를 당한 우종원의 무덤. 우종원의 어머니는 아들이 의문사 한 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남은 생을 바쳤다고 한다. 사진 안온 작가 제공
» 임금투쟁 중 경찰과 구사대의 폭력에 맞서 분신한 노동자 박영진의 무덤. 안온 작가 제공
안온 사진전 <꽃무덤>
안온(49) 작가의 사진전 <꽃무덤>이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류가헌에서 12월 4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전시는 막을 내렸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면 좋겠다는 안온 작가의 뜻에 따라 사진마을에서 안 작가의 사진을 온라인 전시하기로 했다.
꽃무덤은 아까운 나이에 죽은 젊은이의 무덤이란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며 이번 전시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 모셔진 160여기의 노동자, 학생, 빈민, 장애인 등의 무덤 중에서 주로 20~30대에 세상을 뜬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작업이다. 안온 작가와 사진전에 대해 이야길 나누었다. 안 작가은 상명대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잡지사 등에서 일을 해왔으며 2003년 노동일보를 마지막으로 매체를 떠났다. 그 후 ‘밥벌이’를 위해 10년 정도 사진과 관련 없는 작은 사회적 기업일을 하면서 살았으나 마음 한 구석에 늘 부채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씨의 장례식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노동일보에 있었으니 노동문제에 지켜본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최종범 장례식을 보면서 마석 민주열사묘역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후 한 달에 한 두 번씩 지금까지 꼬박꼬박 마석을 찾고 있다. 민주열사묘역엔 1970년 전태일과 1986년 노조탄압에 맞서 분신한 박영진부터 지난해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김용균까지 청년노동자들이 있고 남현진, 박래전 등 대학생들이 있으며 철거민 박준경도 있다. 이들은 모두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희생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석은 그런 희생자들의 공간이다. 이번 전시는 이 젊은이들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직접적인 투쟁현장이 아닌 왜 마석이냐고 물었다. 그는 무덤이 과거의 추억만 담고 있는 곳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다. 노동단체들이 시무식을 마석에서 하면서 지나간 것을 추억하고 추모하기도 하지만 과거의 싸움과 현재의 싸움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우종원 등의 경우엔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화장하고 유골을 다른 곳에 뿌려버렸기 때문에 이곳은 가묘나 다름없다. 그래도 마석을 찾는 것은 이곳이 과거를 기억할 뿐만이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전시를 하게 된 목적에 대해 그는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자는 없다. 이번 전시는 죽은이를 위한 프롤로그이며 내년에 할 본 전시는 죽인자를 기억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본다. 30년은 기억과 망각의 경계 지점이다. 그들(죽인자)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사진전시로 남겨야한다는 부채감이 이 시대에 카메라를 든 사람의 한 명인 나를 사진전으로 이끌었다. 분신도, 산재도 사람을 부속품으로 내몬 결과에서 비롯된 사회적 타살이다. 그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전시다. 그 책임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내년에 할 그의 다음 전시는 의문사가 주제다. 2020년이 5.18 40주기이기도 하고 그 시절 수 많은 의문사에 대해 공론화를 해야하는 마지막 시기라고 그는 강조했다. “나는 사진으로 그들(죽인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이 한 짓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사진에는 비교적 긴 사진설명들이 붙어있다. 그는 “전시에 오시면 캡션도 봐주시면 좋겠다. 보면 알겠지만 열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누군가의 연인이기도 했던 청년, 남현진(21)’, ‘노동자의 친구가 되고 싶던 청년, 박영진(26)’, ‘삼성노동자, 별이아빠 최종범(33)’, 딸 같았던 아들 김용균(25)‘ 이런 식으로 썼다. 이들을 열사로 소환하지 않으려고 했다. 열사라는 용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지점인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었다. 열사라는 공적인 이름은 관객들로부터 더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도 전시장을 찾은 관객 몇 분께서 이들의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더라. 전시장에 걸린 사진 속의 그들은 우리일 수도 있고 그들에게 생겼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