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속도로엔 □□은 있고 □□은 없다

사진클리닉 2008. 02. 15
조회수 11912 추천수 1

 

미국 여행기-플로리다 1

 

콜롬비아에서 쉬엄쉬엄 2박3일
1956년 첫삽 떠 24년 걸려 4만2800마일 거미줄
‘영화세트 천국’ 올랜도, 75년 죠스까지 재활용

 

지난 11월 말, 미국의 추수감사절(11월 28일)이 끼어 있는 연휴기간에 자동차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큰 명절입니다. 금년엔 약 3천5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동을 했다는 통계자료가 있더군요. 집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도 이 무렵엔 고향을 방문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곤 한답니다. 혹은 가족끼리 함께 휴양지를 찾아다니기도 하고요. 이동 인구 중의 약 86퍼센트가 자동차로 여행을 한다니 당연히 교통체증가 생기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CNN을 보니 미국의 고속도로도 거북이 운행을 하더군요.

추수감사절 3500만 대이동, 한국 명절 거북이운행 보듯

 

m1.jpg앞뒤로 붙여서 한 10일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연중 이렇게 길게 시간이 나는 때가 흔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선 겨울 방학이 한 2주일 정도이며 봄방학도 한 1주일 정도입니다. 대신 아주 긴 여름 방학(두 달이 넘는)이 있죠.
미국에서 자동차여행을 할 때 고려할 사항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 시간입니다. 물론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비행기로 움직여서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어디를 어떻게 갈지 고민하느라 꽤 긴 날을 보내고 결국 따뜻한 남쪽으로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곳이 미국의 대표적 휴양지 플로리다입니다.
플로리다는 미국에선 제일 남쪽에 있는 주입니다. 당연히 날씨도 따뜻하죠.

한겨울도 낮 평균기온 25도 이상…인터넷으로 가는 길 검색

 한 겨울에도 낮의 평균기온은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곳이니까요. 밤엔 조금 쌀쌀해서 15도 안팎입니다. 물론 이상기온이 있을 때도 있다지만 그건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죠.
여행계획을 세우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가는 길을 검색했습니다. 이곳 콜럼비아에서 출발해 플로리다의 중부에 있는 올랜도까지만 약 1125마일이며 17시간 18분이 걸린다고 나오더군요.
편도 1800km정도이며 시속 105km정도로 달린다는 가정 하에 나온 계산입니다.
 만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이지만 실제론 그렇게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고 가는데 만 2박3일을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이곳 미주리주에서 출발해 일리노이,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주를 차례로 거쳐 플로리다주로 들어가는 코스가 가장 단거리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지도를 놓고 직선을 그으면 더 빠를 수도 있을 법 하지만 인터넷에서 제시한 코스는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를 이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주마다 제한 속도에 차이는 있지만 대개 시속 65마일 아니면 70마일 정도이므로 다른 도로보다 훨씬 시간을 아낄 수가 있습니다.

양쪽 차선 사이엔 숲이나 잔디밭…도로번호 보면 방향 감 잡아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망은 세계최대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건설을 시작했는데 군사적 목적이 컸다고 하는군요. 1956년에 시작되어 1980년에야 비로소 계획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총연장은 4만2800마일에 달합니다. 최소한 왕복 4차선으로 만들고 양쪽 차선 사이에 잔디밭이나 숲을 마련해 훗날의 차선 확장 때를 대비했답니다. 나무가 심어졌거나 잔디밭으로 된 중앙분리대는 보기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안전해 보였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가끔 이런 넓은 차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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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주택을 싣고 가는 트럭인데 차선 하나보다 훨씬 폭이 넓습니다. 왼쪽으로 맞은편 차선이 보입니다. 중앙분리대에 나무가 심어져 건너편 차선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중앙선을 들이받거나 건너와서 충돌하는 사고는 거의 없겠더군요. 미국은 국토가 넓으니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도로의 짝수번호는 동-서간을 연결하고 (예를 들면 I-4), 홀수번호는 남-북간을 연결하는 도로입니다. 번호가 세자리수인 것은 환상노선(beltways)을 의미하는 것이며 끝이 5나 0으로 끝나는 도로는 대륙 간 종(횡)단 도로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도로번호만 보면 방향은 대충 알 수가 있습니다.

고속도로 노선은 5마일 마다 1마일은 직선구간으로 건설해 전쟁 발발시 또는 대형사고 등의 비상시에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경부선에도 그런 구간이 있죠? 이 고속도로의 건설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공공사업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도로의 유지보수는 각 주별로 하고 있는데 미주리주를 지나는 I-70의 경우 다른 주와 도로사정이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주 별로 예산이 많은 주에선 보수사업을 수시로 할텐데 미주리는 그렇지 않아서 도로 군데군데 떼워놓은 흔적이 많이 보이고 덜컹거리기도 해서 불편합니다.

통행료 공짜…휴게소도 한국과는 좀 달라

미국의 주간 고속도로는 무료입니다. 제가 다녀온 플로리다를 비롯한 동부 쪽에 유료도로가 몇 개 있는 것을 제외하면 도로통행료는 거의 들지 않는 것이 미국 자동차 여행의 한 장점이더군요.
고속도로변에는 휴식시설이 있지만 한국의 휴게소와는 좀 다릅니다. 화장실, 도시락을 먹거나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는 피크닉 장소와 간혹 자판기가 몇 개 있는 것 말고는 아무 시설도 없습니다. 주유소, 식당 같은 것은 고속도로에서 일단 빠져 나가야 만날 수 있더군요. 유료도로엔 휴게실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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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의 휴식시설(rest area)입니다. 보시다시피 식사를 할 수 있는 쉼터가 있고 숲이 있을 뿐, 식당이나 매점은 없습니다.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지면 주변의 아무 곳으로나 나가서 비교적 값이 싼 모텔에서 잤습니다. 밤에 이동하는 것은 시간을 아끼는 방편이긴 했지만 가능한 밤 운전은 피했습니다. 앞에 가는 차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꼭 시간을 따라 잡아야 하는 목적이 있는 여행이 아니라면 굳이 기를 쓰고 달리기만하는 여행은 권장할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침 9시에 들어서 영화 속 그 장면 실감 ‘하루해가 후딱’

사흘째 되던 날 올랜도에 도착했습니다. 올랜도는 놀이공원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여기서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제작 세트로 이루어진 놀이동산 '유니버셜 스튜디오'만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출발 전에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예매해 두었는데 현지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였지만 과연 싸게 산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숙소 근처에 관광객들이 팔고 간 표를 싸게 되사서 판다는 박스형 가게가 이곳저곳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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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입니다.


아침 9시에 정문을 통과해 하나씩 둘러보았습니다. 맨 먼저 영화 트위스터(회오리바람을 추적하는 영화죠)의 세트가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실제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게 만들어 놓아서 실감이 나더군요. 모형으로 만든 소가 바람에 날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무대장치는 좀 우스워 보였지만 재미있더군요.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배경 장치가 이곳저곳 있어서 우리 딸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m5.jpg지진, 죠스, 맨인 블랙, 백 투더 퓨쳐, 비틀쥬스, E.T를 보고 터미네이터까지 관람했습니다.
경쾌한 '호러무비'로 아직 기억이 생생한 '비틀쥬스'의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신나는 춤과 노래를 보여줍니다.


 모든 시설들이 일률적이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죠스의 경우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에서 자그마한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면 죠스가 이곳저곳에서 물위로 튀어 오르는 장치를 해두었고, 맨인 블랙은 우주선처럼 꾸민 것을 타고 광선총을 쏘면서 지나가게 만들었더군요. 롤러코스트의 재미가 곁들여져 실감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놀이공원도 마찬가지지만 어디를 가나 줄을 서야 합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를 수 있지만 15분에서 30분 정도는 늘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아주 색다른 입장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급행표 예약 가능 ‘어, 이런 방법도!’…입장권 50달러 아깝지 않아

 두 시간에 한번 꼴로 급행(Express)표를 예약하는 제도가 있더군요. 특별히 보고 싶은 시설 앞에 미리 가서 급행 표를 끊어 두고 그 시간에 맞춰 가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을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두 시간에 한번이란 제한이 있으므로 20여 곳이 넘는 전시관을 모두 예약할 순 없게 되어 있습니다. 공원 개장 시간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10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으므로 한 명이 예약 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는 기껏해야 5곳 정도입니다. 관람객 저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아주 합리적이며 유용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는 4곳을 이렇게 예약해 시간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한마디로 영화를 찍고 난 뒤 생긴 부산물을 재활용한 시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에선 영화 하나를 만들 때 엄청난 예산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배급시켜 흥행수입을 벌어들입니다. 흔히들 하는 얘기로 영화 하나 잘 만들면 한국에서 1년 간 자동차 수출해서 번 돈보다 더 벌어들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영화가 끝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한국과는 달리 재활용을 착실히 하고 있군요. 도대체 죠스나 백투더 퓨쳐가 언제 나온 영화인줄 아십니까? 죠스는 1975년, 백투더 퓨쳐는 1985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찍을 때 소품으로 사용했던 상어가 아직도 관람객들을 상대하고 있고 시간여행을 했던 자동차도 아직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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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스는 아직 건재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했던 영화도 이렇게 테마 공원으로 만들면 일석이조가 될 듯합니다.
조지라는 원숭이가 노란 옷을 입은 신사와 함께 엮어 가는 동화 ‘호기심 많은 조지…’ 시리즈를 테마로 한 시설도 있었습니다. 공원 이곳저곳에 대형 책을 만들어 두고 아이들이 물놀이, 공놀이를 마음껏 하게 해 두었는데 아주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는 탓도 있었겠지만 구경을 마치고 나니 벌써 어두웠습니다. 하루치 입장권이 미국 돈으로 약 50달러가 채 안되었는데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곳간은 곽윤섭기자가 예전에 썼던 글과 사진을 갈무리해둔 곳입니다. 미국여행기는 2002년의 글입니다) 

 

글/사진 한겨레 곽윤섭기자 kwaksa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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