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숟가락 놓지마소

사진마을 2017. 06. 22
조회수 4687 추천수 0

photosay6.jpg

 

사진이 있는 수필 6

  

영도대교가 공식 명칭인 ‘영도다리’ 도개행사를 보려면 유라시아대륙의 종점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유라리광장으로 가야한다.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영도다리 근처에 형성되었던 점바치골목이 있던 곳이다. ‘점바치’는 점쟁이의 사투리다. 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란민들 사이에서 “혹시라도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중엔 가족과 친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영도다리에 가면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그런 심리를 따라 전쟁과 전후에 운명을 점쳐주는 점집이 늘어나면서 점바치골목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루 한 번 다리를 들어올리는 도개행사가 끝나고 유라리광장은 다시 한산해졌다. 광장 벤치에 앉은 이 남자가 있었다. 손에 든 플라스틱 숟가락이 눈을 찔렀다. 벤치엔 간소한 도시락이 보였고 아래쪽에 가방이 보인다.

  성철스님 어록 중에 “누구라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108배는 할 수 있고 108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삼천배도 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또 세간엔 우스개로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어쩐다”라는 말이 있다. 논산 훈련소 시절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지급품목으로 M 16 소총만큼 중요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던 것이 숟가락이었다. 다시 한국전쟁 시절을 이야기하면 피란민들이 꼭 챙기고 다닌 필수항목에 숟가락이 빠질 수 없었다. “밥숟가락을 놓았다”는 “세상을 등졌다”는 말의 은유적 표현이다. 한국인들에게 숟가락은 식사를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로 통용된다. 금수저·은수저·흙수저를 논하는 수저계급론에서 실제로 흙수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니 플라스틱 수저야말로 가장 밑바닥 계층의 숟가락이다. 저토록 가벼운 숟가락이 간신히 매달려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다. 초여름 부산 바닷가의 햇볕은 매우 따가웠다. 이 남자는 노숙자가 아니고 잠시 졸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차마 이 남자의 얼굴을 찍을 수도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플라스틱 수저의 운명은 ‘점바치’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이 글은 경제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내 인생의 사진책

영화와 사진 속 계단

  • 사진마을
  • | 2020.05.17

스티글리츠, (퍼블릭 도메인) photosay#42 영화와 사진 속 계단 지하철역 같은 큰 공공시설물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지만...

사진이 있는 수필

당신의 시간은?

  • 사진마을
  • | 2020.05.06

photosay#41 당신의 시간은? 한 번 찍고 나면 내가 추가로 후보정을 하지 않는 한, 사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사진을 묵혀두었다가 나중...

사진이 있는 수필

여수밤바다에서 신나게

  • 사진마을
  • | 2020.04.07

#photosay 40 ‘여수밤바다’, ‘오마이뉴스’, ‘신나게’ 이 낱말들을 맞춤법 검사에서 돌리면? 글을 쓰고 나면 응당 퇴고를 하는 것으로 배...

사진이 있는 수필

손으로 쓴 소원 쪽지

  • 사진마을
  • | 2020.03.03

사진이 있는 수필 #39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에 책을 사러 갔다가 한편에 있는 전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손글쓰기대회’ 수상작들이 걸려...

사진이 있는 수필

사슴이 침 흘리는 사연

  • 사진마을
  • | 2019.10.30

사진이 있는 수필 # 37 회사 근처에 효창공원이 있다. 8월에 접어든 어느 날 공원 옆길을 걸었는데 매미 우는 소리가 작렬했다. 여름풍경...

사진이 있는 수필

사진을 찍는 이유

  • 사진마을
  • | 2019.05.22

사진이 있는 수필 #33   자연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행위를 탐조라고 부른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버드 워칭’이란...

사진이 있는 수필

서울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3]

  • 사진마을
  • | 2018.12.07

서울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는가? 적어도 20년 전의 나에겐 몹시 힘든 일이었다.   ...

사진이 있는 수필

플로피디스크의 기적 [2]

  • 사진마을
  • | 2018.11.30

사진이 있는 수필 #28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야 했다. 대략 90년대 말과 00년대 초반의 글이다. 당시 디지털의 초창기에 가까웠던 신문사에선 기...

사진이 있는 수필

달나라행 비행기 [8]

  • 사진마을
  • | 2018.09.14

사진기자들은 움직이는 물체를 잘 보는 ‘동체시력’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뛰어난 편이다. 또한 사진기자들은 시선의 초점을 정면에 두고 있...

사진이 있는 수필

앞만 보고 달려라

  • 사진마을
  • | 2018.08.10

사진이 있는 수필 #25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등 널리 알려진 소설을 쓴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모음은 재치있는 명언도 여럿 남겼다. 그중엔...

사진이 있는 수필

꼭꼭 숨어라

  • 사진마을
  • | 2018.07.02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정글을 소재로 그림을 여럿 그렸다. <꿈>(1910년 작)은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의...

사진이 있는 수필

시각적 문맹에서 벗어나려면

  • 사진마을
  • | 2018.05.04

사진이 있는 수필 #23 내가 하겠다고 먼저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어쩌다가, 하다 보니” 사진교육을 시작한 지 10년이...

사진이 있는 수필

총 함부로 쏘지 마라 [1]

  • 사진마을
  • | 2018.03.22

사진이 있는 수필 #22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군인 복장을 한 배우가 연극을 홍보하려고 가짜총을 들고 ‘shooting’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

사진이 있는 수필

'느린 동네' 까치밥 [2]

  • 사진마을
  • | 2018.01.06

사진이 있는 수필 #20 2017년 11월에 한국형 농촌 힐링스테이 시범운영팀을 따라 경상남도 하동군을 다녀왔다. 지리산 자락의 악양에서 하룻밤 잤...

사진이 있는 수필

찍는 순간 달아나 버린다

  • 사진마을
  • | 2017.12.21

사진이 있는 수필 #19 <존 버저의 글로 쓴 사진>(원제 Photocopies)는 한글판 제목에서 보듯 소설가, 사회비평가, 예술평론가로 이름을 떨친 존 ...

사진이 있는 수필

하지 않을 자유

  • 사진마을
  • | 2017.11.05

사진이 있는 수필#16 서머싯 모음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소설 10선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스탕달의 <적과 흑>,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사진이 있는 수필

총 든 모나리자, 누구를 향하는가

  • 사진마을
  • | 2017.08.17

사진이 있는 수필 11 전유(appropriation)는 동의없이 뭔가를 도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적 전유라고 한다면 문화상품, 예술품 등에서...

사진이 있는 수필

세월을 낚는 꼬마 파이터 [1]

  • 사진마을
  • | 2017.06.30

사진이 있는 수필 7 부산 국제시장엔 ‘꽃분이네’도 있고 ‘청년몰609’도 있다. 2016년 11월에 문을 열었는데 부산경제진흥원이 글로벌 명품시장 ...

사진이 있는 수필

밥 숟가락 놓지마소 [4]

  • 사진마을
  • | 2017.06.22

사진이 있는 수필 6 영도대교가 공식 명칭인 ‘영도다리’ 도개행사를 보려면 유라시아대륙의 종점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유라리광장으로 가야...

사진이 있는 수필

면도를 했어야 했다 [7]

  • 사진마을
  • | 2017.05.24

 사진이 있는 수필 4 면도를 했어야 했다. 지하철을 탔다. 요즘은 나도 ‘중년여성들’처럼 빈자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편인데 그날은 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