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숟가락 놓지마소

사진마을 2017.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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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수필 6

  

영도대교가 공식 명칭인 ‘영도다리’ 도개행사를 보려면 유라시아대륙의 종점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유라리광장으로 가야한다.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 있는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영도다리 근처에 형성되었던 점바치골목이 있던 곳이다. ‘점바치’는 점쟁이의 사투리다. 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란민들 사이에서 “혹시라도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중엔 가족과 친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영도다리에 가면 혹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그런 심리를 따라 전쟁과 전후에 운명을 점쳐주는 점집이 늘어나면서 점바치골목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하루 한 번 다리를 들어올리는 도개행사가 끝나고 유라리광장은 다시 한산해졌다. 광장 벤치에 앉은 이 남자가 있었다. 손에 든 플라스틱 숟가락이 눈을 찔렀다. 벤치엔 간소한 도시락이 보였고 아래쪽에 가방이 보인다.

  성철스님 어록 중에 “누구라도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108배는 할 수 있고 108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은 삼천배도 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또 세간엔 우스개로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어쩐다”라는 말이 있다. 논산 훈련소 시절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지급품목으로 M 16 소총만큼 중요하다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던 것이 숟가락이었다. 다시 한국전쟁 시절을 이야기하면 피란민들이 꼭 챙기고 다닌 필수항목에 숟가락이 빠질 수 없었다. “밥숟가락을 놓았다”는 “세상을 등졌다”는 말의 은유적 표현이다. 한국인들에게 숟가락은 식사를 위한 도구 이상의 의미로 통용된다. 금수저·은수저·흙수저를 논하는 수저계급론에서 실제로 흙수저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으니 플라스틱 수저야말로 가장 밑바닥 계층의 숟가락이다. 저토록 가벼운 숟가락이 간신히 매달려 있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아니다. 초여름 부산 바닷가의 햇볕은 매우 따가웠다. 이 남자는 노숙자가 아니고 잠시 졸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차마 이 남자의 얼굴을 찍을 수도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플라스틱 수저의 운명은 ‘점바치’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인가?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이 글은 경제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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