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사진전 <공소순례>
박해를 버틴 자긍심의 공간
김주희 사진전 <공소순례>가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리고 있다. 14일까지.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를 뜻한다. 공소의 대부분이 농촌지역과 산간지역에 있고 크기가 작고 소박하다. 명동성당이나 전동성당을 떠올리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 신앙의 깊이를 어디 건축물의 규모와 나란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사진전시와 사진가를 소개하면서 서로 처음 접하는 자리에서 얼굴을 붉힌 적이 왕왕 있었다. 두 세 번 넘게 만나면서도 여전히 표정이 흔쾌하지 않은 사진가들이 아직 있다. 사진전에 걸리는 사진에 대한 나의 질문이 (그들 입장에선) 당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거 왜 찍었을까요?” 사진 작업의 명분을 묻는 질문이다.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공기가 사나워질 수 밖에 없다. 소설가가 글을 쓰고 화가가 붓짓을 하는 것이 당연하듯 사진가라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답한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내가 묻는 것은 그 사진 작업의 내용과 그 작가의 관계다. “이거 왜 찍었을까요?”라는 질문은 혹시라도 그냥 그림이 될 것 같으니까 찍은 것 아니냐는 본심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작업을 한다. 그냥 그림이 되니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것 같이 어색한 기운이 사진에서 보인다. 그걸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김주희 작가는 아래의 ‘노트’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전북 지역의 공소를 찍었다. 김주희 작가는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다. 이 두 가지만 갖고도 이번 전시의 명분이 섰다.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55곳의 공소가 담긴 영상이 돌아가고 있고 35장의 사진 속에 공소가 버티고 있다. 몇 군데를 빼고는 대부분 더 이상 공소로 기능을 하지 않는 곳이다. 3년간 전북의 시골 지역에 있는 공소 96곳을 찾아다녔는데 아예 폐허가 되어 터 밖에 남지 않은 곳을 빼고 70여 공소를 찍었다고 한다. 사람의 발길이 떠나고 손길이 닿지 않으면 건물은 주저앉고 가라앉는다. 마루가 꺼져가는 공소도 보이고 갈라진 회벽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스러운 기운을 잃지 않고 있다. 박해시대를 버티어낸 긍지를 잃지 않고 있다. 미사가 열리지 않지만 여전히 공소로서의 존재감이 있다.
사진을 말할 때 딱 한 가지만 중요한 것을 든다면 두말할 것 없이 빛이다. 빛을 찾아다니는 것이 사진가의 일이다. 마치 순례자가 빛을 찾아다니는 것과 같다.
작가노트
공소(公所). 내가 사는 전라북도에 공소가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은 공소들이 가뭇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내가 이 공소들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래 전 세례를 받아 가브리엘라라는 세례명이 있는 천주교신자인데다, 사진 소재를 늘 가까운 주변부에서 찾는 습성과도 맞았다.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를 뜻하는 말로 ‘작은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처음 생긴 17세기에는 종교 이전에 서양의 학문을 연구하는 교우촌을 의미했다.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벼슬에 참여하지 못한 양반과 중인들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만들어지고, 이들에 의해 일찍이 나눔과 섬김의 삶이 실천되어졌다. 18세기 후반에 이 생활공동체가 보다 확장되고, 여기에 서양 학문이 천주교라는 신앙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공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공소에는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일 년에 두 번 본당에서 신부가 찾아와 미사를 집전한다. 평소에는 지역의 교우들이 공소성당에 함께 모여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말씀의 전례와 공소 예절을 지낸다. 공소의 대부분이 농촌지역 그것도 산간지대에 위치한 만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당건축’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소박한 공간이 대다수다. 그러나 역사 이래 마을 주민들 즉 공소 교우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유지해 온 것이니만큼, 그 신실함과 경건성이 대성당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공소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첫 모습으로, 한국천주교회 200년 역사의 반 이상이 공소시대였다. 즉 천주교회의 모태이자 민초들의 삶이나 신앙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간직된 곳으로서 보존되고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소가, 농촌 인구가 줄고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세상의 무관심까지 더해지면서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공소를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전, 먼저 그 안색이나 살펴보자 하고 덕림공소를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배교하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던 사람들이 속으로 읊조렸을 기도문을 떠올렸다. ‘평화를 주소서.’ 그렇게, 공소 사진의 당위와 영감이 시작된 덕림공소를 시작으로 진안 어은동공소, 장수 수분공소, 정읍 신성공소 등을 차례로 촬영해나갔다. 3년 여 동안 이미 폐허가 된 공소까지 포함해 전북지역 시골마을에 있는 공소 96개 공소중 70여 공소를 사진에 담았다. 스트레이트로 대상을 기록하면서도, 내안의 느낌들을 투영시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표현해보고자 노력했다. 그 공간의 거룩한 침묵을 마주할 때면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평화를 사진 안에도 담으려했다.
침묵의 어둠속에서 공소의 빛을 촬영하는 동안 나는 순례자였다. 순례길을 걸으며 불완전한 내 자신을 탐색하는 동안, 그 빛이 무의식의 어둠을 밝혀주었다. 김주희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