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그리고 바이(Good and Bye)

사진마을 2017. 10. 20
조회수 6159 추천수 0

[호스피스 100일 기록 사진전 연 사진가 성남훈씨]


snh001.jpg » 전시장 2층에서 성남훈 사진가
 
사진가 성남훈(54)씨는 지난 7월부터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과 춘천기독병원의 호스피스에서 기획부터 촬영 마무리까지 100일간 사진과 동영상으로 호스피스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찍어 기록해 서울 류가헌에서 사진전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를 열고 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지난 8월부터 시행되면서 호스피스 서비스의 대상이 말기암 환자뿐만 아니라 에이즈, 만성간경화 등 비암질환 말기환자까지 확대되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란 통증 등 환자를 힘들게 하는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사회적, 영적 어려움을 돕는 의료 서비스다. 전시는 이달 29일까지 열린다. 18일 전시장에서 성남훈씨를 만나 사진을 찍었던 과정과 이 작업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성남훈씨는 전주대학교 객원교수이며 사회공익적 사진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끌고 있다. 월드프레스포토에서 두 번 수상을 한 국내 유일의 사진가이기도 한 성씨에게 이번 호스피스 사진작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성씨는 “처음에 보건복지부 쪽에서 사진을 의뢰해왔을 때는 여러 생각을 했다. 임종에 관한 전형적인 사진들이 있다. 이것을 내가 완전히 새롭게 찍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나의 오만함이 사라지는데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숱한 내전, 분쟁 현장을 다녔다. 90년대 초반 르완다 내전이 종식되고 후투족 난민의 자이레 캠프를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키상가니 지역에서 대학살이 벌어졌고 유엔의 긴급의료팀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인 활동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호스피스의 일상은 그 내전 현장 이상이었다. 호스피스에서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준 모습들은 초인적인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만 이삼십 번 이상 죽음과 마주치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기본인데다가 오랫동안 누워있는 환자들을 뒷바라지하는 장면들은 경건하기까지 했다”라고 입을 열었다.
 촬영 기획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꼬박 100일이 걸렸다는데 사진 이상의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호스피스에 오신 분들은 동선이 별로 없다. 대개 누워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어렵사리 의사 소통이 되고 촬영 허락을 받은 분이 있어서 다음날 인터뷰하고 찍으려고 했는데 그날 가보니 침상이 빠져있더라는 것이다. 호스피스라는 공간에는 간호사, 의사 등 의료진 외에도 환자와 가족들이 있고 무거운 공간이다. 어떻게 허락을 받았을까? 성씨는 “사진은 내가 맡았지만 동영상 담당 2명과 초상권 허락을 구하는 행정업무를 맡은 사람까지 4명이 한 팀이 되어 병동을 누비고 다녀야 했으니 환자와 가족들에게 불편했을 것이다. 첫날에 카메라 매고 침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일단 ‘저 사람들 뭐야?’라고 각인시키는 일부터 해야 했다. 그러다가 박옥자 할머니를 만났다”라고 말했다.
 호스피스에서 2주일 정도 계시다가 8월 13일 74살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박옥자 할머니는  친구들과 잘 놀러 다니시고 일상생활을 잘하시다가 갑자기 발병한 경우였다. 성남훈씨 일행의 사진 촬영에 대해서도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카메라가 병실에서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 “오메, 이게 무슨 난리랑가? 이제 스타가 되었네! 어머 또 찍네! 그려, 암 4기 여자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암 4기는 아무나 하나? 암 4기 여자가 카메라가 3대가 되니까 정신이 없네. 병원에선 혼자 심심했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snh01.jpg snh02.jpg snh03.jpg snh04.jpg snh05.jpg snh06.jpg snh07.jpg snh08.jpg snh09.jpg


 성씨 일행은 찍은 사진을 이틀 후엔 꼭 인화해서 당사자들에게 건네줬다. 박 할머니 덕분에 주변의 다른 환자들도 점차 마음을 열면서 환자 가족이 먼저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순간으로 남겨놓고 싶었던 것이다. 한 환자의 딸은 동영상도 같이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딸의 육성이다.

 “아빠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내가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나 어렸을 때 아빠가 나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핫도그 사주고 시장 가서 빨간 구두 사준 거 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아빠가 나를 제일 예뻐했는데.... 둘째 딸을 제일 예뻐하는 게 제일 비밀이었지....” 전시장 한 구석엔 그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는데 한 관객이 눈시울을 적시면서 보고 있었다.
 성씨는 “연명치료의 경우 이런 인사 같은 것이 안되는데 호스피스에선 가능하더라. 그게 참 좋더라”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류가헌의 2층과 지하층 양쪽에서 모두 열리고 있다. 그 중 2층에는 환자의 사진이 한 장도 없고 풍선, 새, 구름, 제주 바다, 복숭아 등을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성씨는 “환자들의 이야길 들어보니 너무 강렬하여 이 분들이나 가족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 분들의 꿈을 보여주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꿈을 형상화하여 걸었다”라고 했다. 한 가족이 남긴 이야기다. “엄마는 새가 되고 싶었는데 아들 때문에 재가도 못하시고.... 그놈의 밥 때문에, 아들 밥 챙겨주느라....”


 
 성남훈 팀은 호스피스에서 여러 명을 인터뷰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다음은 그 내용의 일부다.
 서른 살 아빠 안건호 님
-가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_ 가족들과 함께 걷고 싶어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_ 사랑하는 우리 주희, 주한이, 늘 내가 곁에 있고, 항상 곁에 있고 외로울 때면 내 사진을 봤으면 좋겠다. 나 멀리 안가니까, 주위에 있으니까 계속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김근후 할아버지 아내
  복숭아가 하나가 남았는데 할아버지가 못 먹고 가셨어. 복숭아를 매일 껍질 벗겨 드리면 잘 드셨거든요. 그거 한 개가 남아 있어요 집에. 안 먹고 뒀지. 그것 없어지면 내가 살아갈 수가 없잖아. 거 마저 먹고 가지. 그래서 하루라도 더 살지...
 
 호스피스 완화의료 도우미 김태경 님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해왔어요. 이웃이나 주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첫 환자가 임종을 맞았을 때 처음으로 타인이 내 가족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느껴졌어요. 보호자를 보면서 끌어안고 울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주도 할머니 이두규 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_ 병만 없으면 뭐라도 하고 싶어. 빨리 나아서 걸어 다니고 싶어. 스물 한 살 때 뭍으로 왔는데, 제주도에 가고 싶어. 고향이니까.. 죽기 전에 가고 싶어.
 
 호스피스 완화도우미 김선혜 님
 호스피스는 환자의 위생과 건강을 돌보고, 보호자의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노부부중 남편분이 아내분을 병간호 하던 상황이었는데, 아내의 임종 이후 ‘빨리 따라가야하는데...’ 하고 어르신이 혼자 쓸쓸히 뱉은 한마디가 잊히지 않아요.
 
 세례명 리드비나 할머니
 얼마 전에 우리 오라버니가 세상을 떴는데, 우리 올케가 속도 많이 썩고 했는데도 그렇게 많이 울고울고, 웃고 욕하고 또 울고... 자식들이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데. 내가 닥치니까, 부부라는 것이 수십 년, 아까 계산해보니 58년이래나? 그것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고, 나는 천주교 신자라 그 마지막이라는 거, 하느님 믿고 의지하고 대범하게 생각했어요. 근데 닥치니까 그게 아니네요. 그게 아니에요.


  10월 21일(토), 28일(토) 오후 4시에는 류가헌 2관(지하 1층)에서 <첫 호스피스 기록 100일의 일화>라는 내용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된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성남훈 사진가 제공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취재

오다가다 찍은 사진-담양 5경 [1]

  • 사진마을
  • | 2017.10.24

어제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내 곁으로 왔다. 그는 사진을 잘 찍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그냥 찍으세요. 그냥 찍으면 사진을 ...

사진이 있는 수필

가을 찍고 겨울 고고 [1]

  • 사진마을
  • | 2017.10.23

사진이 있는 수필 #15 일교차가 심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한낮의 잠깐 따가운 햇살을 제외하면 이제 여름은 완전히 끝장이 났다. 어젠가 오늘인...

전시회

굿 그리고 바이(Good and Bye)

  • 사진마을
  • | 2017.10.20

[호스피스 100일 기록 사진전 연 사진가 성남훈씨]   사진가 성남훈(54)씨는 지난 7월부터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과 춘천기독병원의 호스피...

사진책

독도 바닷속 430종 직접 촬영

  • 사진마을
  • | 2017.10.17

독도 바닷속 샅샅이 훑어 해양생물 430종 찾아내 다이버이자 사진가인 김지현 수산학 박사  20년 넘게 자비 들여 오가며 사진 찍어  2014년부터...

전시회

작가마당 단체전 개막 [6]

  • 사진마을
  • | 2017.10.13

사진마을 작가마당 단체전을 안내합니다. 말 그대로 작가마당에서 연재하고 있는 작가 15명이 처음으로 전시를 하게 된 것입니다. 10월18일부터 11...

전시회

독도 바다에서 와인 한잔

  • 사진마을
  • | 2017.10.12

 너무나 특이한 두 사진전이 지금 서울 청운동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기간이 짧아 15일에 끝나 버린다. 1관에선 김지현의 ‘독도 아리랑’...

취재

오다 가다 찍은 사진 2017년-1 [5]

  • 사진마을
  • | 2017.10.01

모처럼 사진을 올립니다. 찾아보니 근 1년 9개월 만입니다. 두서 있는 사진들입니다. 새겨서 볼 일입니다만 그냥 훅 넘겨도 무방합니다. 순서가 ...

사진이 있는 수필

사진과 영화, 부분의 미학

  • 사진마을
  • | 2017.09.29

사진이 있는 수필 #14 최근에 개봉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프랑스 관광청이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프...

취재

"사진은 이미지 산업의 쌀"

  • 사진마을
  • | 2017.09.27

“사진은 이미지 산업의 쌀, 한국적 이미지는 곧 한글”   [이철집 통로이미지 대표] 1990년대 중반 학교 컴퓨터 보고 “큰일이다” 싶었다 SW ...

사진이 있는 수필

빛을 찾는 사진적 눈 [1]

  • 사진마을
  • | 2017.09.20

사진이 있는 수필 #13 사진을 잘 찍는 전문가들은 확실히 일반인들과 다른 ‘사진적 눈’을 갖고 있다. 사진적 시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에 ...

게시판

촛불집회 1주년 기념 공모전

  • 사진마을
  • | 2017.09.14

촛불집회 1주년기념 <나의 촛불> 시민공모 사진전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이하여 <나의 촛불>을 주제로 한 사진공모전을 개최합니다. 2016년 광화문과...

취재

전시장은 작가와 관객을 위해

  • 사진마을
  • | 2017.09.13

충무로 사진거리 터줏대감 전시기획으로 소통 앞장 [김남진 갤러리 브레송 관장]   1천명 작가 전시 400회 이상 대관료 집착 않고 “몸으로 때...

사진책

32년 전 사진이 살아났다 [1]

  • 사진마을
  • | 2017.09.12

1985년 41일간 1200km 도보여행 친구 권유로 묵은 필름 5천장 꺼내 32년 만에 첫 사진집 낸 장명확씨 32년 전인 1985년 9월 1일 한 청...

사진이 있는 수필

섬바디 in 울릉도 [1]

  • 사진마을
  • | 2017.09.03

사진이 있는 수필 #12 이곳은 울릉도 나리분지 원시림. 하얀 부채처럼, 레이스 달린 양산처럼, 옛날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20원짜리 장난감 낙...

사진책

헵번이 가장 좋아했던 요리는

  • 사진마을
  • | 2017.08.31

20세기 최고 스타 오드리 헵번 아들이 쓴 <오드리 앳 홈> 출간 사랑했던 요리 레시피 50가지 미공개 사진 250점 든 사진집 [ 집밥 사진 공모전...

취재

한국을 어떻게 발견할까? [3]

  • 사진마을
  • | 2017.08.29

한국 사진계 유례없는 ‘사건’, 방법도 사진도 새 ‘눈’ [SNS로 후원 받아 사진찍는 임재천씨]   3년째 제주 강원 부산 차례대로 한 달에 ...

취재

복지도 트렌드, 잘 꾸며야 따라가

  • 사진마을
  • | 2017.08.24

복지단체 이사장 된 패션전문가  사단법인 참사람들 권오향씨       패션과 복지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낱말이다. 그런데 패션업계 ...

전시회

박정희 시대의 사진표상

  • 사진마을
  • | 2017.08.20

사진가 구보씨의 ‘경이의 방’ 스페이스22에서 아카이브 기획전 ‘헤쳐모여’ 전시 한계를 넘기 위해 설명이 지나치게 길다는 한계 ‘사진아카이...

전시회

소리에 대한 갈망

  • 사진마을
  • | 2017.08.20

장호진 개인전 ‘청(聽)사진’이 서울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리고 있다. 9월 1일까지. 관람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사진책

모마의 사진역사

  • 사진마을
  • | 2017.08.18

 ‘모마 포토그래피 : 1960-Now’이 새로 나왔다. 쿠엔틴 바작 외 7명이 엮었으며 이민재가 옮겼다. 알에치이코리아, 책값 5만원 모마는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