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은 작가와 관객을 위해

사진마을 2017.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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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사진거리 터줏대감 전시기획으로 소통 앞장

 

[김남진 갤러리 브레송 관장]

  

1천명 작가 전시 400회 이상

대관료 집착 않고 “몸으로 때워”

 

고등학교 때부터 카메라 잡아

대학에서도 전공보다 사진 몰두

 

졸업 뒤 이태원 촬영, 인생 전환점

3년 찍어 전시 열어 극찬 받기도

 

“이태원은 변할 것, 일시적인 기록”

사진 접고 공방 열어 후학 길러

 

사진이론 번역서도 여러 권 내고

새로운 사조 끊임없이 추구

 

‘폴라로이드 누드’ 전시로 주목

슬라이드쇼-클럽 DJ 출연 시도도

 

문 닫을지 모른다는 소식에 

2004년 덜컥 인수… 최근 리모델링

 

 

knj1.JPG » 11일 김남진 관장이 갤러리 브레송에서 리모델링의 감회를 밝히고 있다.


흔히 영화의 거리로 알려진 충무로는 사진의 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카메라 매장과, 현상소, 인쇄소, 액자 가게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사진전문 갤러리 ‘갤러리 브레송’은 충무로의 상징적인 존재다. ‘갤러리 브레송’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이름이 김남진(60)관장이다.  김 관장은 2000년대 초반 현재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고 전시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싫어서 덜컥 인수해버렸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하면 그동안 약 400회 이상의 전시가 이곳에서 열렸고 전시를 연 작가는 1천 명에 달한다. 대관료를 받지 않은 전시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김 관장은 누적 적자가 얼마인지에 대해 “몸으로 때웠다”라며 말을 아꼈다.


전기공학도였지만 철학에 더 관심

그는 최근 숙원사업이었던 갤러리 리모델링을 마쳤고 지난 6일 리모델링 뒤 첫 전시로 석재현의 ‘틈, elsewhere’를 열었다. 11일 전시장에서 김 관장을 만나 ‘갤러리 브레송’의 연혁과 더불어 전시기획자 김남진의 사진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김 관장이 처음 카메라를 잡은 것은 배재고등학교 사진반 시절이었다. 동네 사진관에서 현상을 하곤 했는데 항아리 속에 약품을 넣고 낚시라도 하듯 현상을 하던 사진관 주인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고 했다.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엔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서클활동을 당연히 하는 분위기라서 고민할 것도 없이 사진 서클인 ‘호영회’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암실과 처음 마주쳤고 무엇보다도 사진관련 서적(주로 일본에서 나온 카메라 잡지)이 많아서 신기하고 좋았다. 김 관장의 이야기다. “우리 땐 대학사단이라고 할 정도도 대학 사진동아리가 셌다. 숙대 ‘숙미회’, 연대 ‘연영회’, 홍대 ‘모래알’ 등등. 서울대의 ‘영상’이 컨템퍼러리를 적극적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본 잡지를 번역하여 대학사단 연합회 모임에서 현대사진에 대해 발제도 하고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나는 책을 보는 게 일이었고 사진에 빠져있었다.” 김 관장은 대학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고등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늘 수업시간에 다른 책을 보거나 상념에 잠겨있는 스스로 ‘못 된 학생’이었다.  수학을 잘했던 모양이라 공대계열로 입학했으나 철학에 더 관심이 있었다. 사진 공부가 인문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그때 이미 김 관장은 깨닫고 있었다.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두툼한 사진 연구지를 내면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김 관장은 “난데없이” 전기공학과 출신이다. 공대는 고려대 안암 캠퍼스와 조금 떨어져 있는 애기능 캠퍼스에 있었으나 “사진 서클인 호영회가 안암 학생회관에 있어 그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 관장은 1984년에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직할 생각이 없었다. 한 유력 일간지에 사진기자로 특별채용될 기회가 왔으나 “신문사는 낮술도 먹고 경찰서 출입하며 취재도 해야 한다는 게 싫어서” 시험까지 보고서 슬며시 빠져나와 버렸다. 그러던 인생이 이태원을 찍으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술을 즐기지 않는 그로서는 이태원은 난생처음이었다. “호기심도 있었지만 소심한 나에 대한 자기 도전이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깡패도 있고 밑바닥 사람들도 많다는데 한 번 찍어보자!” 이태원은 밤의 거리이니 플래시가 필요했다. 한국인 여성과 함께 있는 미군을 허락도 없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찍었다. 쫓아왔고 도망쳤다. 간신히 몸을 피했는데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그때 포기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낙심한 김 관장 앞에 업소에서 공연하는 ‘품바’들이 서 있었다.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1주일에 두세 번 이태원의 밤을 찾아갔다. 몰래 찍는 스타일이 아니라 말을 붙이고 친해진 다음에 찍었다. 여자 종업원들 기념사진을 찍어주면서 서로 경계심이 풀렸다. 이 사진으로 1987년에 파인힐 갤러리에서 ‘이태원의 밤’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 당시에도 사진계의 원로였던 이명동 선생이 사진평에서 “김남진의 포토 르포르타주는 한마디로 무척 어려운 주제의 선택이었고 접근이었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라고 극찬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사진가로서 이력을 이어갈 만한데도 당시 김 관장의 선택은 달랐다. “이태원은 변할 것이다. 이건 일시적인 기록이다. 이 사진들은 그들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태원은 그만 접었다. 김 관장은 독립문 쪽에 암실이 딸린 자그마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김남진 사진공방’의 시작이었다. 이후 합정동, 양재동 시절을 지나 포이동으로 옮기면서 10년 넘게 공방을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했다. 그냥 취미로 하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전공으로 대학원에 갈 사람만 받았다. 그 숫자가 수십 명에 달했는데 당시 경쟁률이 꽤 높았던 대학원에선 ‘김남진 사진공방’에서 배우고 온 사람들이 매 학기 입학하자 놀랐다고 한다. 공방을 이어가면서 한편으로 사진이론 번역서를 여러 권 냈다. 1993년에 그가 번역해 내놓은 <현대사진의 이해>는 사진전공자들에겐 필독서였다. 지금도 현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사람 중에 ‘김남진 사진공방’을 거친 제자들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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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골목에 사진을 현수막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사조를 추구하던 김 관장에겐 책과 논문이 스승이었다. 인화지에 인화하는 방식에 염증을 느낀 그는 1993년에 폴라로이드 전사기법으로 작업한 ‘폴라로이드 누드’ 전시를 바탕골예술관에서 열기도 했는데 획기적인 시도였다. 1996년 코닥포토살롱에서 ‘신체와 의식’전이 열렸다. 이 전시는 “기존의 누드사진과 대립하는, 몸에 대한 새로운 형식과 미의식의 전개를 목적으로” 김 관장이 기획한 최초의 사진전이 됐다. 사진계에선 전시기획이란 개념조차 생소한 무렵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김 관장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서 “사진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으로 틀이 굳어갔다. 2005년에 인사동 쌈지길에서 열렸던 ‘몽유도원’전은 사진을 슬라이드쇼로 상영하고 클럽 DJ가 음악을 틀었던 신선한 시도였다. 2006년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2011년 서울사진축제 총감독까지 대형 사진행사를 여러 차례 기획하며 한국 사진계에서 1세대 전시기획자로 자리를 잡았다. 2012년 한번 열었던 충무로 사진축제는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극동빌딩 로비에다 칸막이를 넣어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는데 너무 근사해 사진계의 모 원로가 상설 갤러리로 착각하여 “나도 이 전시장에서 전시하고 싶다”라고 할 정도였다. 충무로 골목 하늘에 사진을 현수막으로 붙여 나부끼게 했고 저녁에 조명이 들어오면 장관이었다고 한다.
 갤러리 브레송 전시장 안에 있던 사무실 공간을 줄이는 대신 전시공간을 넓혀 사진을 더 많이 걸 수 있게 하는 리모델링은 김 관장의 숙원사업이었으나 비용이 문제였다. 마침 올해 환갑의 나이를 맞아 주변에서 사진전시를 하라는 말이 나왔고 1987년 ‘이태원의 밤’ 개인전을 한지 30년 만에 이태원을 새로 찍은 ‘호모나이트쿠스’ 전시를 스페이스 22에서 열 수 있었다. 이참에 김 관장은 본인 사진작품을 세트로 묶어 판매했고  그 수익의 대부분을 리모델링에 쏟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관장은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관객과 작가의 소통공간을 만든 것이 뿌듯하다. 어떻게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사진 전시의 비중이 조금 높았던 모양이라서 내년부터는 파인아트 쪽을 많이 소개해 균형 잡힌 사진갤러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더 갤러리를 끌고 가고 싶다”라고 소망을 밝혔다.
  사실상 유일한 사진전문 출판사인 눈빛의 이규상 대표는 “갤러리 브레송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사진전문 갤러리 중 하나이다. 프랑스 사진가 브레송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사진의 본질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그 상호는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새로 단장해 문을 연 갤러리 브레송은 한국사진의 전초기지로서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사진을 찾아내야 한다. 갤러리의 성패는 전시 오픈 바로 다음날 있다”라고 주문했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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