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구보씨의 ‘경이의 방’
스페이스22에서 아카이브 기획전
‘헤쳐모여’ 전시 한계를 넘기 위해
설명이 지나치게 길다는 한계
» 제14회 보은농업고등학교 졸업앨범(1962)_훈련부 일동
‘사진아카이브연구소’에 소장된 사진 자료들로 꾸며진 아카이브 기획전시 ‘사진가 구보씨의 경이의 방’이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9월 21일까지. 문의 02 3469 0822. 스페이스22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10월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전주에 있는 서학동사진관에서 다시 열린다. 서학동사진관 문의 063 905 2366.
전시의 부제는 ‘박정희시대의 사진표상과 기억의 소환’이며 9개 부분으로 나눴는데 각각의 소제목이 ‘정치인이 사진수정사를 만났을 때’, ‘별이 빛나는 밤에’, ‘중정식 분류법’, ‘반공의 일상, 일상의 반공’, ‘동상과 기념 사이’, ‘새나라 새마을 새살림’, ‘새농민·표상, 새농민표·상’, ‘새마을주택 모델하우스’, ‘테이프 커팅과 새마을 가꾸기’이니 이 기획전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1961년부터 1979년 사이의 박정희시대 때의 여러 사진을 모았다. 그 안에 정치인의 얼굴사진, 중앙정보부(현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당시 기관)가 제시한 간첩사건 관련 증거물, 반공 표어나 포스터들, 집합기억 생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상, 그리고 정부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만든 체제 선전용 잡지의 표지, 새마을 주택의 설계도, 박정희가 직접 포항제철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사진 등이다.
아카이브 기획전은 기존의 자료를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니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우선 사진전시의 제목으로 소환된 두 낱말에 대해 알아보자. 하나는 ‘경이의 방’이며 다른 하나는 ‘사진가 구보씨’다.
» 과거와 현대의 여러 가지 '경이의 방' 사진 위키피디아, 공정이용
‘경이의 방’은 <경이, 건이>라는 제목과 달리 사람이름 경이가 아니라 경이롭다는 경이다. 찾아보니 ‘호기심의 방’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경민 소장은 “근대 유럽인들의 ‘경이의 방’에는 실제 사물들이 아카이빙 되었다면, 사진술 발명 이후의 ‘경이의 방’에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촬영한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라고 썼는데 아무리 의도에 따라 재구성했다 해도 맥락이 조금 흔들린다. 여기 제시하는 경이의 방(호기심의 방) 사진자료들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듯이 근대 유럽에서 시작된 유행으로서의 경이의 방은 수집가들의 특별한 호기심 충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시키고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부자들, 사회적 명망가들의 호사스러운 취미이며 내용물도 주로 자연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희귀한 물고기 표본, 박제, 동식물의 화석 등이 많았고 보석류도 있지만 어쨌든 보기 힘든 것들을 전시하면서 자신들의 명성도 과시하였으며 소규모 자연사박물관의 기능도 있어서 교육적인 측면도 일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엔 실제 물건들을 수집하였는데 사진이 발명된 이후에는 실제 사물을 촬영한 사진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연결성이 약하다. 실제 수집품이든 사진으로 찍은 것이든 상관은 없으나 수집품의 목록과 목적에 있어 근대 유럽인들의 ‘경이의 방’과 이번 기획전 ‘경이의 방’이 다르다. 근대 유럽인들의 경이의 방에선 예를 들어 일각고래의 뿔, 희귀한 산호초, 기형적으로 태어난 동물의 박제 등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모아 전시했다. 이번 기획전의 아카이브는 박정희 시대의 여러 산물을 찍은 사진이라서 별로 경이롭지도 않고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는다. 또한 부자나 사회적 명망가들이 자신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수집한 물건들과 반공 이데올로기 주입을 위한 표어 앞 사진이나 집합기억을 형성하기 위한 동상 앞의 기념사진, 오래된 잡지 등은 서로 격이 맞지 않는다. 그냥 제목만 차용했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 중정식 분류법 (간첩 증거품사진)
» 1968년 발행 새농민 표지 모음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제촌마을의 새마을주택, 1977
» 제5중대 제9소대 단체 기념사진, 1964, 이순신 동상, 윤효중, 1952(진해)
다음으로 등장하는 낱말은 ‘사진가 구보씨’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따왔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경민 소장은 “사진가란 필연적으로 고현학적 방법론으로 현대와 현대인의 삶을 기록하고 해석하고 연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설 속 구보씨가 견지하고 있는 고현학자의 태도와 입장을 투영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했다. 사진가는 현재와 현장만 찍을 수 있으므로 고고학을 하는 게 아니라 고현학을 한다는 뜻이니 일견 그럴싸하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구보씨가 경성거리를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풍경에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생각에 잠기는 것과 이번 스페이스22에서 전시하는 박정희시대의 사진은 별로 어울리는 접점이 없다. 구보씨가 소설가가 아니라 사진가가 될 수 있고 소설 속 장면에서 카메라를 들고 경성을 배회하였다고 가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카이브를 쌓으려고 찍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접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또한 재미를 위해 그냥 구보씨라는 이름만 차용이 아니라 원용했다고 보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기획자의 권한이다.
이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사진은 찍어두면 뭐든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 별도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진을 훗날 다른 사람이 새로 편집하면 새롭게 읽힐 수 있다. 맥아더 장군 동상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다만 고대 로마 시절부터 지도자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넣거나 근대에 들어와 우표로 만들고 동상을 세워서 기억을 주입시키려는 권력자의 의도가 있을 뿐이다. 어떤 시절에 그 동전과 우표와 동상은 환호를 받았을 것이고 또 한참의 세월이 지나면 집합기억의 증거자료로 남아 의미가 변질되고 재해석될 수 있다. 보내온 보도자료가 A4 용지로 13쪽에 달한다. 여러 곳에서 각각 존재하던 자료들을 “헤쳐모여”했으니 일일이 기획자가 주석을 달고 설명을 길게 할 수밖에 없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이번 기획전은 하나의 학술연구적 의미가 더 크고 논문 몇 개를 읽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각각 사진들간의 연결고리를 글로 설명하는데 치중했으니 전시장에서 사진만 보고 나왔을 때 쉬 와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혹자는 전시장에서 설명문을 꼼꼼히 읽기도 하고 또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리스 알박스의 집단기억(어떤 번역에 따르면 집합기억)을 들고와서 일일이 관객들에게 설명을 하지 않았을 때 이 전시의 취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관객과의 소통 측면에서 크게 부족한 전시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달게 받아야할 것이다. 전시를 본 어떤 관객들은 “아 박정희 시대에는 저런 일도 있었구나”라고 간단하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긴 보도자료는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전문 인용했던 보도자료는 스페이스22쪽의 요청에 따라 삭제한다. 전시장에 가면 사진마다 상세하게 설명이 붙어있다고 하니 관객이 직접 전시장에 방문해주기를 원한다는 취지다. 보도자료의 원문은 전시장에 비치된 도록에 전문 그대로 들어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