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지 않은 카메라 역이용해 특유의 화질 ‘창조’
만들어, 흐릿하게, 장노출로 찍으면 나도 작가
환상적인 가을동화 <사라 문 특별전> 폐막이 임박했습니다. 9월25일 시작해 두 달여를 이어온 전시회가 11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9일 막을 내립니다. 딱히 큐레이터나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관람한 분들도 몽환적인 작품세계를 느끼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입니다. 전시장에서 만난 관객들의 만족도가 대단히 높았습니다.
추상, 혹은 합성 사진과 만지지 않은 사진 ‘양극단’
지난 19일 저녁 예술의 전당 브이(V)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서 일일 도슨트를 하고 왔습니다. 평일이었는데도 적지 않는 분들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사라 문의 사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진의 전반적인 추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최근 2~3년 사진전시장에 다녀본 결과, 사진은 갈수록 치열하게 양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한쪽 극단은 ‘추상사진’혹은 ‘합성사진’입니다. 어떤 이들의 작품은 아예 스스로 사진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작품이라고 하는 추세입니다. 조각과 사진, 그림과 사진, 영화와 사진 등의 혼합을 통해 새로운 미술작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혼란스럽다는 말로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그 중엔 재미있고 기발한 작가정신이 빛나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의 극단은 ‘만지지 않은 사진’입니다. 셔터를 누르고 나면 그것으로 작업을 끝내는 사진입니다. 그 내용이 다큐멘터리가 되었든, 생활 속의 스냅이 되었든 상관없이 전통적인 의미의 사진입니다. 셔터를 눌러 빛을 줘서 사진을 찍는 작업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양쪽 중엔 ‘만지지 않은 사진’ 쪽을 더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한쪽에 눈을 감진 않으려고 합니다.
추상사진을 하는 쪽이나 그냥 사진을 찍는 쪽이나 공통적인 작가정신 한 가지는 꼭 함께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작품이 독창적인 것이 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미 찍은 사진과 유사한 결과물을 내고 싶은 작가는 없습니다.
합성이나 해체하지 않고 차별성 있는 사진을 찍는 팁
사진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손이지만 다음 과정에서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치다 보니 카메라의 특성에 따라 비슷비슷한 결과물이 나오기 쉽습니다. 합성이나 해체를 통하지 않고 차별성 있는 사진을 찍는 방법을 얼른 떠올려봤습니다. 제가 빼먹은 다른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1) 만들어 찍기
설치미술의 결과물을 사진에 담는 것입니다. 작가가 여러가지 재료와 도구를 써서 입체 혹은 평면의 대상을 만들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으면 유일한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상태에 이미 존재하는 곳은 누구나 그곳에 가면 사진에 담을 수 있지만, 만들어 찍는 것은 해당 작가만이 볼 수 있는 작업입니다. 구성연 작가의 사탕시리즈는 좋은 예입니다. 각양각색의 사탕을 나뭇가지에 매달아서 사진을 찍었다고 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면 사탕이 모두 녹아버려 원형은 찾을 길이 없고 사진으로 찍힌 사탕나무만 남으니 이 세상에서 유일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산지, 우포늪, 순천만 등의 사진명소엔 시간대를 맞춰 가면 누구나 비슷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과 대비가 됩니다.
(2) 흐릿하게 찍기
많은 사진가들이 원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어둡고 흐리게 찍으려고 애씁니다. 노출을 부족상태로 만들거나 어둡고 흐린 날에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은 그림과 달라 현장의 재현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한눈에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릴까봐 조바심을 칩니다. 그래서 숨기고 감추고 가려서 오랫동안 보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로모나 폴라로이드 같은 것으로 찍어서 사진상태를 좋지 않게 하려는 노력도 합니다. 카메라가 좋지 않다 보니 사진이 흐리게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앞뒤 모두 생략하고 말하자면 ‘카메라가 안 좋아서 사진도 안 좋은 것’인데 그 자체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경우입니다.
(3) 장노출로 찍기
카메라에서 셔터를 눌러 빛을 받아들이는 것을 “노출을 준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때 노출을 주는 시간이 셔터속도란 것인데 통상 대낮엔 1/250초 안팎입니다. 이 셔터속도를 아주 길게 주는 사진을 장노출이라 부릅니다. 10분씩 주는 경우도 있고 10시간씩 주는 사진도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2일, 또 어떤 작가는 1년씩 노출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찍은 사진에선 움직이는 대상은 거의 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뉴욕거리에서 장시간 노출을 준 김아타 작가의 작업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 방법은 일종의 고육지책, 그러니까 평범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짜낸 끝에 나온 방법입니다. 사진역사의 초기에도 느린 셔터속도와 만들어 찍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839년 사진이 발명(공표)된 직후부터 유럽인들은 잽싸게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하여 뭐든지 찍어와 전시만 하면 모두 최초의 사진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최초의 이집트, 최초의 신대륙, 최초의 아시아 등.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기만 해도 유럽인들에겐 새로운 것으로 보였으니 다른 인위적 방법이 필요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가벼워지면서 사진기술의 보급이 빨라졌습니다. 마침내 디지털시대가 오자 카메라 보급은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이젠 지구촌 곳곳에서 카메라를 맨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서 뭘 찍든 한 번쯤은 본 장면이 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니 새로운 것을 찍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진가들은 외국으로 발길을 향합니다. 이국적인 것을 찾아다닙니다.
기법 넘어 소재나 주제까지 읽어내야 제대로 소화
<사라 문 특별전>에 전시된 사진은 한눈에 봐도 다른 작가들과 차별성이 있는 사진입니다. 그럼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고유한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사라 문은 1941년생이며 19살부터 패션모델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모델생활이 지루해” 1970년부터 패션 및 광고 사진작가로 일하게 됩니다. 패션모델을 하다 패션사진가로 돌아선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사진세계는 패션과 뗄 수 없고, 환상적이며 모호한 선과 색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터치를 내기 위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최연하 큐레이터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라 문의 컬러는 폴라로이드(6 65필름)가 만들어내는 모노크롬에 기억의 톤으로 불리는 세피아 컬러링이 주를 이룬다. 한 화면에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공존하면서 유령(imago)을 보여주는가 하면 점 혹은 얼룩, 고의로 표면에 찍어낸 지문에 필름의 흐릿한 해상도까지 더해져 사진은 더욱 고풍스럽게, 마치 다른 세계의 것처럼 만들어진다.”
요약하면 카메라와 렌즈의 화질이 좋지 않은 것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몇몇 사진들에선 만들어놓고 찍은 것도 있지만 대체로 흐릿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기법으로 인물, 새, 코끼리, 거리풍경까지 모든 것을 소화해냈으니 그녀는 뭘 찍든 ‘사라 문답게’ 처리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법만으로 작가를 해석할 순 없고 소재와 주제까지 읽어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가의 사진을 감상할 때 책자, 큐레이터, 도슨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품 감상은 완전히 관객의 몫입니다. 한두 마디의 특징으로 한 작가를 규정해선 안 됩니다. 외부 전문가의 안내를 받을 순 있지만 그 길만이 다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 선 11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최근에 열렸던 그 어떤 사진전보다 더 환상적인 가을의 동화 <사라 문 특별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보기 어려운 사진들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