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추상을 찍자
디지털시대 크로스 오버, 사진일까 다른 무엇일까
문제는 내용…상상의 창고 열면 현실보다 더 현실

사진은 발명 초기부터 “고작 눈에 보이는 것밖에 찍을 수 없다”는 혹평을 받아왔습니다. 작가(사진가)의 상상력이 작품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사진의 특성 때문에 나온 지적입니다. 화가들 중에선 사진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관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사진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진의 해체를 바탕으로 사진과 회화, 사진과 조각, 사진과 동영상의 만남 등을 통해, 뭐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의 예술작품들이 나타나고 있고, 전시도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작 눈에 보이는 것밖에 찍을 수 없는 게 운명일까?

예술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니 이런 방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크로스 오버의 작품들을 ‘사진’이라 부를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해선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기에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어쨌든 “사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많은 사진가와 관객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의 의견은 이런 것입니다. 사진은 다른 분야의 예술과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진은 셔터를 눌러 생산되는 산물입니다. 붓이나 목탄이나 조각칼을 이용해 그리거나 다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이미 완성돼버리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이용해 빛을 받아들여 종이(혹은 다른 재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에 고정하는 것이 사진의 초기형태였고, 그 공정의 기본 맥락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에선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작품을 인화지가 아닌 모니터에 띄워놓고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카메라를 이용해 셔터를 눌러 빛을 고정한다”는 큰 틀이 사진의 단점이자 특징입니다. 단점이란 주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상상력이 사진 속에 개입할 여지가 희박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진의 특징이자 장점을 너무 쉽게 폐기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해체와 합성을 통한 작품이 갈수록 득세하겠지만 저는 그럴수록 사진 본연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 작업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며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필름카메라로 흑백작업을 하고 다큐멘터리만을 찍어야 한다는 이야긴 절대로 아닙니다. 만년필이나 볼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든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든 상관없습니다. 글의 내용이 중요할 뿐입니다. 심각하고 글로벌한 사진만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진의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정된 형태의 대상보다 느낌을 놓고 생각 넓혀가기

‘포토스페셜-테마 있는 사진 강의’ 21강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내용을 찍어보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진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끝이 나는 단순한 작업”이란 주장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사진에 찍히겠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사람, 바위, 건물, 자동차, 풍선, 모자 같이 눈앞에 그 형체가 규정된 것이 아닌, 무형의 것을 찾아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추상적인 것을 찾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해야 하며, 이는 곧 사진을 보는 관객의 상상력과 연동될 것입니다. 작가와 관객의 의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화가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사진가들은 관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추상의 형태를 찍는 것에 대해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나 풍선, 볼펜 등의 구체적인 물체는 어느 특정 제품 한가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어떤 것이든 바로 찾아서 찍어올 수는 있습니다. 숙제를 제시하면서 “아무 것이나 좋으니 모자를 찍어오시오”라고 하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모자를 찍어올 수는 있다는 이야깁니다. 추상적인 테마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가벼움, 쓸쓸함, 기쁨, 피곤함 등은 고정된 형태의 사물이나 대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막연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추상적인 느낌을 놓고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하면 실마리를 찾는 게 대단히 어려울 것 같진 않습니다.
살아가는 모양 따라 생각대로 하면 되고!

사진 강의시간에 ‘따뜻함’을 테마로 제시하고 찍어올 것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1주일의 시간이 지나 각자가 생각한 ‘따뜻한 사진’이 과제방에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다양성과 기발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는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친구를 찍었습니다. 어떤 이는 낮잠 자는 고양이를 찍었습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는 어떤 커플의 뒷모습을 찍은 이도 있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식판이나 아기의 목에 털목도리를 둘러주는 엄마를 찍은 이도 있었습니다. 호빵, 군고구마, 출근길의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부인, 할머니의 손길, 아빠의 웃음, 노란 꽃을 바라보는 꼬마 등의 사진도 모두 따뜻했습니다.
기쁨, 쓸쓸함이란 테마가 주어진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까? 이런 테마를 받아든 사진가마다 모두 다른 것을 떠올릴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모양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기쁘고 쓸쓸한 것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추상적인 테마는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을 찍을 때보다 훨씬 아이디어 의존도가 높습니다. 일단 그 테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평소 눈썰미가 있는 사진가라면 한층 유리할 것이고, 남들보다 발품을 많이 파는 스타일의 사진가라면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사진가는 메모를 즐깁니다. 어떤 계절에 어떤 장소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늘 기록해두는 것은 모두 자신만의 보물창고를 살찌우는 방법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디지털시대 크로스 오버, 사진일까 다른 무엇일까
문제는 내용…상상의 창고 열면 현실보다 더 현실

사진은 발명 초기부터 “고작 눈에 보이는 것밖에 찍을 수 없다”는 혹평을 받아왔습니다. 작가(사진가)의 상상력이 작품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는 사진의 특성 때문에 나온 지적입니다. 화가들 중에선 사진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관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사진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진의 해체를 바탕으로 사진과 회화, 사진과 조각, 사진과 동영상의 만남 등을 통해, 뭐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의 예술작품들이 나타나고 있고, 전시도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작 눈에 보이는 것밖에 찍을 수 없는 게 운명일까?

예술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니 이런 방향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크로스 오버의 작품들을 ‘사진’이라 부를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해선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기에 이 자리에서 더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어쨌든 “사진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많은 사진가와 관객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의 의견은 이런 것입니다. 사진은 다른 분야의 예술과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진은 셔터를 눌러 생산되는 산물입니다. 붓이나 목탄이나 조각칼을 이용해 그리거나 다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이미 완성돼버리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이용해 빛을 받아들여 종이(혹은 다른 재질이 될 수도 있습니다)에 고정하는 것이 사진의 초기형태였고, 그 공정의 기본 맥락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에선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작품을 인화지가 아닌 모니터에 띄워놓고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카메라를 이용해 셔터를 눌러 빛을 고정한다”는 큰 틀이 사진의 단점이자 특징입니다. 단점이란 주장은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의 상상력이 사진 속에 개입할 여지가 희박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진의 특징이자 장점을 너무 쉽게 폐기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해체와 합성을 통한 작품이 갈수록 득세하겠지만 저는 그럴수록 사진 본연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 작업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며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필름카메라로 흑백작업을 하고 다큐멘터리만을 찍어야 한다는 이야긴 절대로 아닙니다. 만년필이나 볼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든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든 상관없습니다. 글의 내용이 중요할 뿐입니다. 심각하고 글로벌한 사진만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진의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고정된 형태의 대상보다 느낌을 놓고 생각 넓혀가기

‘포토스페셜-테마 있는 사진 강의’ 21강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내용을 찍어보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진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끝이 나는 단순한 작업”이란 주장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론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사진에 찍히겠지만 프레임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사람, 바위, 건물, 자동차, 풍선, 모자 같이 눈앞에 그 형체가 규정된 것이 아닌, 무형의 것을 찾아내자는 이야기입니다.
추상적인 것을 찾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해야 하며, 이는 곧 사진을 보는 관객의 상상력과 연동될 것입니다. 작가와 관객의 의도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화가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사진가들은 관객이 자유롭게 작품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추상의 형태를 찍는 것에 대해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동차나 풍선, 볼펜 등의 구체적인 물체는 어느 특정 제품 한가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어떤 것이든 바로 찾아서 찍어올 수는 있습니다. 숙제를 제시하면서 “아무 것이나 좋으니 모자를 찍어오시오”라고 하면 어떤 형태의 것이든 모자를 찍어올 수는 있다는 이야깁니다. 추상적인 테마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가벼움, 쓸쓸함, 기쁨, 피곤함 등은 고정된 형태의 사물이나 대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막연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추상적인 느낌을 놓고 생각을 확장하기 시작하면 실마리를 찾는 게 대단히 어려울 것 같진 않습니다.
살아가는 모양 따라 생각대로 하면 되고!

사진 강의시간에 ‘따뜻함’을 테마로 제시하고 찍어올 것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1주일의 시간이 지나 각자가 생각한 ‘따뜻한 사진’이 과제방에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 다양성과 기발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는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 친구를 찍었습니다. 어떤 이는 낮잠 자는 고양이를 찍었습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는 어떤 커플의 뒷모습을 찍은 이도 있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식판이나 아기의 목에 털목도리를 둘러주는 엄마를 찍은 이도 있었습니다. 호빵, 군고구마, 출근길의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부인, 할머니의 손길, 아빠의 웃음, 노란 꽃을 바라보는 꼬마 등의 사진도 모두 따뜻했습니다.
기쁨, 쓸쓸함이란 테마가 주어진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까? 이런 테마를 받아든 사진가마다 모두 다른 것을 떠올릴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모양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 기쁘고 쓸쓸한 것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추상적인 테마는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을 찍을 때보다 훨씬 아이디어 의존도가 높습니다. 일단 그 테마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어디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평소 눈썰미가 있는 사진가라면 한층 유리할 것이고, 남들보다 발품을 많이 파는 스타일의 사진가라면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사진가는 메모를 즐깁니다. 어떤 계절에 어떤 장소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것을 늘 기록해두는 것은 모두 자신만의 보물창고를 살찌우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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