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곰삭은 음악인생…저마다 한가락, 상상 이상

사진마을 2015. 12. 23
조회수 7872 추천수 1
[내 나이가 어때서] <2> 6인조 상상밴드

00547063901_20151223.JPG » 구립종로노인복지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상상밴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영준, 윤주복, 김경묵, 도융, 조봉권, 이범기씨.
분홍색 공연복 상의를 곱게 입은 신사 6명이 크리스마스캐럴 ‘창밖을 보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트럼펫이 높게 울려 퍼지고 트롬본이 낮게 깔리면서 분위기를 잡아갔다. 감미로운 색소폰이 지나가던 어르신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뒤편에서 드럼과 전자기타가 받쳐주는 가운데 단장 김경묵(73)씨가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전체 단원들의 호흡을 이끌었다. 트로트가 나올 때면 장단 맞추는 박수소리가 따라 나왔고 팝이 연주될 때는 눈을 감고 심취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이 추억에 잠기는 듯했다.

 ‘광대짓거리’라며
 아버지가 악기 부숴버려도
 좋아서, 미쳐서, 홀리듯…
 쇠로 된 악기가 닳을 정도로
 
 미군무대, 공군군악대, KBS악단…
 50년 이상 한 우물 판 베테랑
 올 한해만 20여차례 자원봉사
 
 불러주면 어디라도 가고 싶은데…
 학교에서 가르치고도 싶은데…
 문화의 힘 너무 모른다
 
 음악은 체력보다 단련
 죽는 날까지 쭉~
 
 음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알아가는 것

통이 터져 꿰매고 아교로 붙여 쓰기도

이곳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구립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소속 ‘상상밴드’는 2010년 9월에 만들어졌다. 60살 이상으로 구성된 상상밴드의 단원들은 한마디로 ‘프로선수’들이다. 모두 최소 50년 이상 음악 활동을 했으며 미8군무대, 공군군악대, 케이비에스(KBS) 관현악단 등 쟁쟁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 복지관에 모여서 연습을 한다. 2015년 한해만 해도 ‘부처님 오신 날’ 맞이 축하공연, 제2회 신노인문화 걷기대회 축하공연, 성탄 행사 ‘안녕 산타’ 캐럴 연주 등 외부에서 20여차례 자원봉사 공연을 했다.


21일 오전 복지관 내부공연을 마친 단원들과 이야길 나눴다. 단장 김경묵씨는 “우리 단원들은 사실상 평생 음악만 하신 분들”이라며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지녔기 때문에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음악을 했나?


단장 김경묵씨 “초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 되어서 시작했지. 6·25전쟁 끝난 무렵이니까. 그땐 악기가 귀했어. 악기를 만질라치면 선친이 다 부쉈어. ‘광대짓거리’라면서 악기 만지면 일 안 한다면서 맹렬히 반대를 했지. 친구가 고장 난 기타를 줘서 처음 만지게 되었는데 지금 이렇게 되었어. 하하하. 통이 터져서 꿰매고 아교로 붙이고 해서 고쳤어. 기타 책을 가지고 몇 번 선 하면서 연습했어. 음악을 좋아하니까 음악에 미쳐서 한 거지. 캄보밴드로 활동할 때 부평 미군부대에서 요청이 들어와 무대에 서기도 했어.”


00547063801_20151223.JPG » 상상밴드 단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에서만 31년


-다른 악기도 다뤘나?

“뭐 조금씩 다 했지. 건반악기로 들어가 아코디언을 했는데 당시 단독주택 한채 600만원 하던 시절에 350만원 주고 이탈리아제 ‘파올로 소프라니’를 샀으니 단단히 미친 거지. 세티미오는 사오십만원 싼 거고. 김철승 선생의 왁스밴드, 박영주 악단에서는 아코디언을 했어. 색소폰도 조금 건드리고.”


트롬본 이범기(66)씨 “중학교 때 처음 음악을 시작했다. 트롬본을 택한 이유는 음색이 좋고 사람 목소리와 비슷해서다. 중음의 매력에 빠져 혼자서 익혔다. 유포니엄으로 공군군악대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1969년에 공군본부 군악대가 여의도에 있었는데 거기서 트롬본을 제대로 만지기 시작했다. 워커힐 정서봉악단에서 2년 활동하다가 동아방송 전속악단에 들어갔고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케이비에스 관현악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전국노래자랑을 맡기 시작했다. 1995년에 악단이 분리되어 10명으로 꾸려진 ‘전국노래자랑 전속악단’에 포함되어 2011년에 정년퇴직했다. 선글라스로 유명한 김인엽 단장님이 2년 전에 세상을 뜨셨지. 30년 넘게 그분을 모시고 악단에 있었다. 상상밴드에 들어온 것은 그 후 넉달 때쯤 되었다. 음악? 평생 하고 싶지. 체력? 힘이 좋다고 소리가 잘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단련이 되어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 죽는 날까지 음악을 할 거다. 우리 상상밴드에서 트럼펫 하시는 조봉권 선생 보시라. 해 바뀌면 여든이 되시는데 소리 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음악단 시절 영화에도 출연

전자기타 윤주복(74)씨 “생생히 기억한다. 1964년 4월23일 아침 10시에 시작했어. 그 당시엔 학원 같은 게 어디 있어. 기타를 가르치는 곳을 찾아서 헤매다가 부천 자유시장에 있던 강용삼 선생의 기타연구소에 들어가서 배웠다.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게 있는데 거기 나오는 음악 ‘울며 헤어진 부산항’의 기타 전주곡이 있어. ‘따라라라 따라라 라라….’ 그거 듣고 매료되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거지. 소질이 있었냐고? 강용삼 선생이 나보고 수제자라고 했어. 하하.”

 주변에서 다른 단원들이 “쟤도 집에서 기타 꽤나 부쉈어. 수제자? 여럿 있다. 하하하”라며 장단을 맞췄다.


색소폰 도융(64)씨 “72년에 윤항기 밴드에 들어갔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 프로가 전국적으로 난리 났던 그 무렵이지. 윤항기씨가 마이크 잡으면 멋있었다. 톰 존스 같았어. 무대 매너 좋고. 부산 공연 갔을 때도 기억나고 서울 시민회관 공연도 기억난다. 70년도 초반은 그룹사운드의 전성기였는데 조용필씨가 ‘25시’를 할 때다. ‘키브라더스’ 음악단 시절에 <관광열차>라고 영화 촬영도 하고 그랬다. 경남 남해였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쾌속선이 운항할 때였지.”

상상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는 조영준(68)씨는 1966년에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며 엠비시(MBC) 텔레비전의 외부 악단과 영음 윈드오케스트라 단원을 지냈다. “좋아하니까 음악한 거다”라고 짧게 말했다. 밴드에서 가장 연장자인 조봉권(79·트럼펫)씨는 국립 경찰악대 활동을 했으며 광주 시비에스(CBS), 엠비시 방송악단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경력을 묻자 주변의 다른 단원들이 “60년쯤 됐지. 트럼펫 시작한 것도 그렇고 트럼펫으로 돈 벌기 시작한 것도 그렇고. 아! 쇠로 된 악기가 닳을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니겠어”라고 대신 답했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처럼…

애로사항이 없는지 물었다. 말을 아끼던 단원들이 조용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음악 하다가 은퇴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수도권만 해도 몇백 명 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은퇴 후엔 연주할 곳이 없다.”

“구청도 좋고 복지관도 좋고, 불러주면 가고 싶은 분들이 많을 거다.”

단원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의 힘을 모른다. 우리나라는 대중문화에 대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향해 가는 나라에서…. 우리뿐만 아니다. 굿하시는 분, 무용하시던 분 등 파트가 다양하다. 그런 분들이 은퇴 후에도 설 자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한국엔 브라스밴드가 몇 없다. 고등학교 다닐 때 스스로 다 알지 않는가. 해보다가 보면 누구는 공부가 맞고, 누구는 운동이 맞고, 누구는 음악, 누구는 미술이 더 맞는 사람이 있는 법인데…. 그런 (대안에 대한) 장치가 부족하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모범적 사례 아니냐. 범죄율이 뚝 떨어지고, 유능한 지휘자도 나왔지.”

평균 연령으로 일흔이 넘은 상상밴드의 단원들이 자리를 일어서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 좋겠다.”


글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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