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삶의 고통을 이겨낸 거인의 얼굴

곽윤섭 2009. 03. 02
조회수 9136 추천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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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섭 카쉬

[알고보면 더 재밌는 카쉬전-3]어니스트 헤밍웨이-1957
 
 카쉬는 헤밍웨이와의 만남을 앞두고 그가 쓴 소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성격을 두루 갖춘 작가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바나 근처의 집에서 만난 그는 뜻밖에도 철저하게 자기를 감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불같이 사납다는, 폭력적이라는, 그리고 신체적으로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이야길 듣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이제껏 카쉬가 찍었던 인물들 중 가장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헤밍웨이는 당시 네 번째 아프리카 원정 때의 비행기 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로 한 전날 저녁, 카쉬는 촬영 대상에 대한 사전 조사를 위해, 그리고 헤밍웨이가 즐겨 마신다는 다이키리를 맛보기 위해 그가 즐겨 찾는 술집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준비를 너무 많이 했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카쉬는 회상했다.
 다음날 아침 9시, 무슨 음료를 마시겠느냐고 묻는 그에게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다이키리라고 말하자, 그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니 카쉬!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그걸 마시겠다고?”
 다이키리는 쿠바에 있는 럼주를 생산하는 지명에서 따온 칵테일의 하나다. 럼주에 라임주스 등을 섞어 만드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발표 이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던 헤밍웨이는 바닷가에서 낮엔 낚시를 즐기고 밤엔 이 다이키리를 차갑게 해서 마시며 심신을 달랬다고 한다. 그 후 불후의 명작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해서 헤밍웨이를 구원한 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쉬는 헤밍웨이에게 말을 많이 시켰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고 또 내면의 표정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퉁명스럽게 물어봤던 것이다. 소심한 성격에 걸맞지 않게 헤밍웨이는 능숙하게 답변을 건넸다.
 그의 소설을 모방하는 사람들은 그의 소설 중에서 명백한 오류들만 끄집어낼 뿐, 그의 진정한 목표와 핵심적인 작법은 한결같이 놓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마치 많은 독자들이 헤밍웨이를 떠올리면서 주로 결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헤밍웨이의 어조가 신랄한 것은 아니었다. 내키지는 않지만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가 답변하는 동안 카쉬는 사진을 찍었다. 그는 헤밍웨이에게 놀라운 미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활기차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넓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면서 카쉬는 이 사진을 골라냈고 이렇게 말했다.
 “일생을 통해 심하게 고통을 겪어왔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은 거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열대 자연광 대신 밋밋한 인공조명 선택
 
 대문호 헤밍웨이를 찍기 위해 카쉬는 특별히 고심했다. 열대 지방인 쿠바의 자연광이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인공조명을 택했다. 희미한 백라이팅으로 그의 머리 윤곽선을 뚜렷하게 보일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 또 밋밋한 투광조명으로 얼굴의 지형과 특성을 찬찬히 살필 수 있게 만들었다.
 헤밍웨이의 인물사진에서 카쉬는 다른 인물사진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숙고하는 슈바이처와 다르며, 보리스 카로프나 헬렌 켈러의 경우와는 달리 손을 능란하게 사용하지도 않았다. 관객들로 하여금 단순히 머리만 보게 하였다. 헤밍웨이의 시선은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바깥세상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카쉬가) 절묘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찾아냈기 때문에 관객들은 편하게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1차 대전 때의 부상, 1954년 비행기 추락 때의 부상, 네 번의 결혼, 수십 년간의 음주, 투우나 사냥같이 피가 흩날리는 스포츠활동, 퓰리처와 노벨상 수상 등.
  이 사진에서 거의 감정이 없는 듯한 시선 덕에 관객들은 서로 상반되는 위의 기억들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인물을 보면서 상처투성인 채 살았던 작가로, 또 동시에 냉정하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영웅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이 사진이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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