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문화에 대한 5가지 고발

곽윤섭 2009. 01. 13
조회수 1030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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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선재센터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걸어서 약 7분거리에 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열린다.

 

 좋은 기획자와 테마가 사진가와 사진을 빛나게 한다
                                    -[사진전 ‘39조 2항’ 리뷰]

 

  사진전엔 제목이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처럼 작가의 이름만을 제목으로 달기도 하고 ‘강운구 개인전-저녁에’처럼 이름과 함께 전시의 테마를 밝히기도 한다. 단체전의 경우엔 ‘사진의 힘, 21명의 프랑스 현대 사진가들’처럼 단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명칭과 테마를 함께 표기하기도 한다. ‘사진의 북쪽’ 같은 경우엔 16명의 여성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단체전을 열었던 셈인데 그냥 테마만 제목으로 뽑았다. 사진전시회의 제목을 짓는 방법이란 것이 따로 규정되어있다는 이야길 못 들었으니 그냥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진전 ‘39조 2항’은 제목 속에 테마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작가는 감춰져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장을 들어서면 입구에서 39조 2항의 내용을 읽게끔 돼 있다. 사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최근 다녀본 사진전시 중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는데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쉽게 간파되는 것을 싫어한다니 그 작가의 의도를 공감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을 것도 없다. 하지만, 눈으로는 뭘 보고 있는데 가슴이나 머릿속으로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았다.
  ‘39조 2항’은 대한민국 헌법 제2장에 있는 조항을 말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법조문답게 해석하기 어렵게 적혀 있어 취지를 알아봤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문에 시원하게 풀이가 되어있었다.
 “헌법 제39조 제2항은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에게 보상조치를 취하거나 특혜를 부여할 의무를 국가에 지우는 것이 아니라, 법문 그대로 병역의무의 이행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병역을 이행했다고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는 등의 차별대우를 부정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금현은 “39조 2항이 군복무에 대한 헌법상의 보상규정으로 원용되어 왔다”라면서 “헌법에 명시된 한 줄의 문장으로 개인의 불이익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담아 전시의 제목으로 39조 2항을 인용했다고 한다. 해석을 잘못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를 이해하는 덴 무리가 없다.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군사문화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5인의 사진가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사진작업을 했고 그 결과물도 저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전시 기획자의 몫이 사진가의 역할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마를 잘 잡으면 사진이 더 빛난다.
 

1.GyooSikKim_370gal. Fuel Tank.jpg
김규식, 370gal. Fuel Tank, 2007, Archival inkjet print, 315131 cm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가는 김규식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 무기 모형을 사진으로 찍어 장난감 실물보다 훨씬 크게 인화해 걸었다. 실제 무기보단 작겠지만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보단 몇 배 더 크다. 어떤 작품이든 한 변의 길이가 1미터를 능가하는데 그 의도가 명백하다. 사람 키 만한 비행기나 미사일 장난감은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장난감으로 보이질 않고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이 아무 거부감 없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무기가 사실은 뿌리깊은 전쟁문화에 대한 학습도구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하다. 

2.NOH Suntag_좋은,살인.jpg
             노순택, 좋은, 살인, 2008, Lambda print
 
  에어쇼 현장에 놀러 온 사람들을 찍은 노순택은 더 노골적으로 전쟁무기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실전에 투입되면 대량살상무기가 될 비행기, 기관총 앞에서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 유격훈련체험을 시키면서 미소를 짓는 젊은 부부들도 보인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이 가장 신나게 떠들 수 있는 공통의 화제가 군대이니 만큼 우리는 군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알게 모르게 군에 익숙해진 사회라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3.SeungWooBack_Utopia#007.jpg

             백승우, Utopia #007, 2008, Digital c-type print, L: 113X160 cm, R: 124X160 cm


 백승우는 북한의 모습을 담았다. 직접 찍은 사진도 걸렸고 북한에서 만든 홍보책자에 등장한 사진으로 합성한 작품도 전시되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의 경우 원본 필름의 부분을 확대시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냈는데 원본에선 전혀 떠오르지 않던 이미지가 되살아난다. 북쪽 사진에서 바로 전쟁이나 군사물자가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만연되어있는 전쟁과 군의 분위기는 북한을 빼놓곤 설명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북의 풍경이 보여주는 의미는 어렵지 않게 전해진다.
 


 

1.YoungHoonLee_Paradise.jpg

                               이용훈, Paradise, 2008, Inkjet print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진을 찍은 이용훈은 군인과 비슷한 옷을 입은 예비군의 여러 면모를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느슨한 동작의 예비군 사진은 초점이 흐린 것들이 많다. 몰래 찍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흐린 초점 자체가 예비군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JaeHongJeon_한일은행강경지점.jpg
전재홍  한일은행 강경지점. 충남 논산시 강경읍, 1997
1913년 서양 고전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재활용 모색 중 Gelatin silver print, 50X60 cm



 마지막 5번째 작가는 전재홍이다. 10여 년간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 남아있는 일본강점기의 건축물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도 그 사진들 중 미발표작이 걸렸다. 일본강점기의 건물과 전쟁이 무슨 관계가 있나 싶었지만 대한민국 군사문화의 뿌리는 일본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엔 일본인 지주의 주택, 은행, 신사로 썼던 건물들이 이제 용도가 바뀌었지만 건물의 형태에서 여전히 일제 잔재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진다.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군사 문화와 전쟁의 흔적을 실감할 수 있다. 틀림없이 이 사진들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군사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사진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전시로 195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된 인간가족전을 꼽는 데 많은 전문가와 관객들이 동의한다. 전시를 기획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의도는 명백했다. 전시의 제목에서 바로 떠오르는 것처럼 지구촌 모든 인류들의 보편성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시기적으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무렵이었다. 전쟁의 참상에 질려 있던 인류에게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희망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전 세계를 돌면서 1000만 명 가까운 관객이 전시를 봤고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진전시로 기록되고 있다.
 스타이켄이 인간가족을 기획하기 전에 비슷한 의도로 열었던 전시에 대해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궁극적 메시지는 마찬가지였는데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어 더 이상 지구상에 전쟁이 생기지 않길 희망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전시는 싸늘한 반응을 불러왔다. 스타이켄은 여러 전쟁에서 끔찍하고 비참한 사진들을 모두 모아 전시장에 걸었는데 전쟁사진으로는 걸작 중의 걸작만 모은 셈이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생생한 전쟁의 상처 앞에서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런 사진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큰 교훈을 얻은 스타이켄이 다시 기획한 것이 인간가족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인간이 태어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다시 병들고 늙어가는 모습들을 일상의 담담한 시선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관객들은 더 편하게 인류의 자화상을 대할 수 있었고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희망을 향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쉽게 읽으며 공감할 수 있었다.
 
 테마는 사진가의 사진보다 중요하다. 간혹 사진가가 직접 전시기획까지 개입하여 사진을 고르고 배치하고 흐름을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전문기획자가 테마를 정하고 전시를 설계하는 경우가 더 보편적이다. 그림과 달리 사진은 셔터를 누른 다음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적으로 기획자의 몫이다. 사진집이라면 편집자의 몫이다.
 테마를 정하고 사진가의 사진을 엮어나감에 있어 직접 설명할지 은연중에 보여줄지 결정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이다. 전쟁의 공포를 극복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터의 참상을 보여줄지 아니면 지구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줄지를 결정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이다. ‘39조 2항’은 정공법을 택했고 관객들의 이해를 끌어내는 데 무리가 없는 사진전이다.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은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시를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테마를 정하고 테마를 풀어나가는 것이 사진을 찍는 것만큼 중요하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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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선재센터앞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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