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14명의 기발한 착상

곽윤섭 2009. 09. 02
조회수 64096 추천수 8

IMG_1266.jpg

 

 

한미사진미술관 ‘요술·이미지전’

 

사진집을 볼 땐 글로 된 책보다 훨씬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보라고 권하고 있다. 글이 아닌 시각물은 눈에 너무 쉽게 들어오니 순식간에 이해를 다 했다고 판단을 내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탓이다. 사진전시를 관람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진가가 공을 들인, 제대로 된 사진집이나 사진전시라면 긴 시간을 들여서 작품을 바라봐야 진면목이 보인다. 사진전 리뷰를 쓰기 위해 가끔 전시장을 찾는 편이다. 나는 그런 전시회에서 벽에 걸린 작품도 감상하지만 다른 관객들이 사진을 보는 방식을 관람하곤 한다. 입장할 줄이 길게 늘어져서 전시장 안에서 등을 떠밀리듯 보는 전시가 아니라면 시간 여유는 있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한 작품 앞에 서면 우선 2~3초간 사진 전체를 훑어본다. 다음엔 작품설명 혹은 제목을 찾아본다. 그리곤 다시 작품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면서 다리는 이미 옆 작품을 향해 움직인다. 작품 설명의 분량이 길지 않은 전시라면 한 작품당 채 10초가 걸리지 않는다.

 

어렵지만 재밌는 사진이 발을 붙든다

 

평소 그런 지론이 있는 나도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전시를 그렇게 오랫동안 관람하는 편은 못된다. 중점적으로 평을 써볼까 하는 작품 몇 개를 점찍어 두고 가서 선택적으로 관람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는 있다. 그러다가도 예상치 못한 특이한 작품과 조우하게 되면 시간을 더 할애해서 뜯어보긴 한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술ㆍ이미지’ 전은 모처럼 긴 시간을 투자해서 들여서 본 전시였다. 물론 누군가와 전시장에서 만날 일이 있으니 할 수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중요한 변수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보다가 지겨웠으면 잠깐 나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인데 이번엔 달랐다. 모두 14명의 작가가 50여 점을 출품했는데 거의 2시간 가까이 작품을 감상했다.

 

‘요술ㆍ이미지’ 전은 그만큼 독특한 전시였다.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살펴봐야 했다. 난해하기도 했지만 재미있고 기발했기 때문에 오래 들여다 봤다. 작가 14명이 서로 다른 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몇 가지 관점에서 입이 간질간질했다. 우선 전시장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고 할 순 없다. 솔직히 총 50여 점 중에 내 취향에 맞는 것은 두세 작품밖에 없었다. 또 다른 관점은 ‘요술ㆍ이미지’ 전이 과연 사진전시회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작품들이 사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술관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를 보면 그 어디에도 사진전이란 표현이 없다. 전시회의 영문명이 ‘The Magic of Photography’라고 되어있을 뿐인데 직역하자면 사진의 마술이란 것이지 사진전시란 뜻은 아니다. 그리고 나의 취향에 맞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독자, 관객들의 취향이 중요할 뿐이다.

 

전시회 작가 중 사진 전공자는 딱 한 명

 

‘요술ㆍ이미지’ 전의 14 작가들 중 단 한 명만 대학 때 사진을 전공했으며 나머지는 모두 회화나 조소 등 미술 전공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좀 맘이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 생각일 뿐이다. 이 작가들이 전공한 회화, 조소, 섬유미술 쪽에선 이미 “사진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는” 추세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변형하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들 작업의 최종산물을 뭐라고 이름 붙일지에 대해서도 별 중요성을 두지 않고 있다. 그게 그림이든 조소든, 또는 설치미술이든 상관없어 보인다. 굳이 규정하자면 그냥 작가의 ‘작품’ 일뿐이다.

 

전시도록엔 작품 전체를 설명하는 글이 있다. 서성록(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과 김혜영(아트파크 큐레이터)의 글이 그것이다. 두 분의 글에 따르면 출품작은 네 개의 항목으로 크게 나눌 수 있으니 그 분류를 빌어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회화를 닮은 사진

 

<배준성>

실제 모델을 명화(그림)속에 그려 넣었고 그 위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비닐을 덮어씌웠다. 전시장에 가보면 작품 위에 비닐이 펄럭거리고 있을 터인데 손으로 잡고 열어봐도 된다. 아니 열어보라고 그렇게 만들어뒀다. 열어보면 다른 이미지가 보인다. (다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절대 손을 대면 안 된다.) 작품해설이 나와 있으나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보고 각자 느끼면 된다.


배준성_The_Costume_of_Painter_2008_oil_and_lenticular_on_canvas_193.9_x_130.3cm.jpg
 Ó배준성

 

<유현미>

현실의 내부공간에 일상사물을 닮은 오브제를 설치하고 그 위에 회화처럼 덧칠을 한다. 빛과 그림자도 마치 실제 조명이 비친 것처럼 붓으로 그린다. 여기까지 하고 말았으면 사진을 이용한 작품이 아닌 설치미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현미가 출품한 작품은 이상의 설치미술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고민하다 작가의 변을
발견했다. “새로울 것, 그리고 반드시 아름다울 것” 작가의 변이다. 충분하다. 더 할 말이 없다.

유현미_공룡과전화기_2007_C-print_150×120cm.jpg

              Ó유현미



사진과 입체의 경계

 

<권정준>

아크릴박스 위에 사과를 프린트해서 붙였다. 아크릴박스는 육면체다. 둥근 비정형 구체인 사과를 정육면체에 붙여두니 기괴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은 평면이니) 아무리 복잡한 입체라도 평면이 돼 버리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뭘 찍어봐라. 입체가 되나. 둥근 것도 평면, 튀어나온 것도 평면이다” 평면으로 사실을 재현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글을 읽거나 여기 있는 사진을 봐도 별 느낌이 없을 것이다. 전시장에서 직접 작품을 봐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전시물은 입체다.
 

IMG_1275.jpg


 

연극 같은 사진, 영화 같은 사진

 

<전소정>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전소정 작품의 형태는 사진(평면)과 영상물이다.

 

사진의 내용이나 동영상의 내용은 모두 연극 무대의 장면을 옮겨온 것처럼 보인다. 실제 공연장의 무대는 아니며 사진과 영상을 위해 세트를 설치하고 그 위에 인물을 올려서 촬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설치세트 자체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위한 과정이나 도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한미미술관에선 사진과 영상밖에 없지만 다른 전시에선 설치세트 자체도 전시를 했고 관람객들이 세트 위에 등장인물로 올라가게끔 해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니 작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역시 이글만 읽고 사진만 봐선 이해할 수 없다. 전시물에선 소리가 나오니 가 봐야 제대로 듣고 본다.

전소정_The Finale of a Story 5_110x110cm_inkjetprint_2008.jpg

Ó전소정


 
디지털기법(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가상 이미지

 

<임택>

‘옮겨진 산수유람기’ 다섯 작품이 벽에 붙어 사진의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실제 설치물을 촬영한 사진 이미지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합성하여 디지털로 프린트한 것이다. 전시장 한쪽엔 임택 작품의 원천이미지가 미니어처 형태로 전시장에 설치되어있다. 카메라를 들고 앵글과 초점거리를 바꿔가며 들여다봤으나 어떤 시점에서도 벽에 걸린 작품과는 달랐다. 미술관 쪽에 문의했더니 미니어처는 관객의 작품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가 설치해둔 것이라고 한다. 미술관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다. 그냥 손가락 프레임을 들고 미니어처 주변을 둘러보면 앵글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임택_옮겨진산수유람기082_2008_람다프린트_165x110cm.jpg

Ó임택

 
작품소개에서 빠졌다고 재미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여기 소개하지 못한 나머지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발랄하거나 때론 심각하다. 직접 가보면 각자 취향에 맞는 작품이 따로 있을 것이다. 좋은 사진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요술ㆍ이미지’전의 작품들은 (사진이라 부르든 말든 상관없이) 관객들을 매우 다양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으니 사진 찍는 사람들도 꼭 봐야 할 전시다.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찍던 분들이 전시를 보고 나서 설령 사진의 해체를 통한 다른 장르를 꿈꾸게 된다고 하면 또 어떠리.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한미사진미술관은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2번 출구 옆에 있다.

전시는 10월 1일까지.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9월 5일(토요일) 오후 1시 김준, 배준성

9월 19일(토요일) 오후 1시 강영민, 조병왕


 

홍성철_String Mirror_eye_2377_print on elastic string, steel frame _102 x 80 x 14 cm)_ 2009.jpg

Ó홍성철


 

김준_bird_land-chrysler_2008_120_x210cm.jpg

Ó김준


 

이명호_2006_Tree_2__Archival_Ink-Jet_Print_on_Paper_1250x1000mm.jpg

                  Ó이명호


 

이중근_CATCH_ME_IF_YOU_CAN___나_잡아봐라_2008_Photograph_ComputerGraphic_Lightjet_Print,_Diasec_150×150cm.jpg

Ó이중근


 

장승효_That I am_Daphne,_포토꼴라쥬_170 X 88cm.jpg

                                           Ó장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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