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순간을 위한 오랜 기다림

곽윤섭 2009. 08. 12
조회수 9343 추천수 1

PRS2-001  JUMP copy.jpg
오상택. PRS2-001 JUMP. edition 45. 100×130cm. Photographic Color Print. 2008


‘슈팅 이미지’전 ③ 오상택

 

 

사진 한 장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진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에게 매주 한 번씩 과제를 내준다. 그들의 대부분은 직장에 다니는 생활인들이며 일부는 전업주부나 학생인 경우도 있지만 모두들 바쁘다는 데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가끔 과제로 제출할 사진을 찍지 못하기도 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진 사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다. 기껏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간이 나지만 모든 모임이 그 이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과제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크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카메라 한번 못 만져보는 일도 생긴다. 5년 넘게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강생들의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제를 놓친 이들에게 겉으론 다른 이야길 한다.

 

“사진 한 장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과제를 안 하세요?”

“지난주엔 바빠서 시간이…….”

“성의가 없는 거에요. 셔터 한번 철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25초나 1/250초밖에 안됩니다. 흐린 날에는 1/30초가 될 수도 있지만요.”

 

맨 첫 시간엔 진지하게 이런 이야길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로 잘 알고 있고 또 그런 사실을 알면서 짐짓 부풀려서 농을 던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한 달이 걸릴 수도, 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과연 사진을 찍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눈밭에서 깃발을 들고 있는 남자들, 망망대해에서 뛰어내리는 맨발의 남자,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조그마한 물웅덩이에서 노를 젓는 남자…. 오상택 작가가 찍은 이 사진들을 보면서 새삼 그런 의문이 다시 들었다.

 

-사진 한 장 찍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과정을 설명하자면……. 가장 먼저 신(장면)을 구상한다. 마음속으로 한번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곤 그림으로 옮긴다. 다음으론 장소를 물색한다. 머릿속 구상이 가장 잘 펼쳐질 만한 곳이 어딘지를 찾는 일이다. 테스트촬영을 해보고 나서 시간대를 결정한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최종적으론 모델을 섭외하고 필요한 소품도 준비해야 한다.

 

매번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니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반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사진이 위대한 것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슈팅 이미지’전에 나온 작품들을 비롯해 현대사진의 경향은 찍는 것보다 만드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으므로 마치 연극이나 영화에서 무대를 설치하거나 세트를 꾸미는 것만큼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에 전혀 개입하거나 손을 대지 않은 채 촬영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가들은 어떨까? 그들이야말로 촬영시간은 1/250초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른다면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는 브라질의 금광노동자를 찍기 위해 석 달을 현지에서 머물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1년에 한 장 정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했다. 알렉스 웹은 하루종일 걷는다고 했다. 걷다가 뭔가 발견하면 상황이 완성될 때까지 끝도 없이 기다렸다. 그러다가 만약 (완벽한 장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냥 손을 털고 일어섰다. 사진을 찍든지 만들든지 간에 마음에 드는 한 장을 탄생시키기 위해선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볼 땐 툭툭 찍어내는(것처럼 보이는) 마틴 파 같은 사진가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도 늘 머릿속에서 작업세계와 작품의도를 구상하고 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셔터를 누르는 시간만 따질 일이 아니다. 마틴 파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이 위대한 것은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니 우린 절대로 훌륭한 사진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이 뭔지 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찍을지는 말할 수 없다. 나도 모르니까”

 

오상택이 남자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찍는 이유

 

전시장에서 몇 관객들에게 오상택의 사진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물었다. “쓸쓸하다.”, “지루한 삶을 벗어나려는 것 같다.”, “황량하다.”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 정도라면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잘 전달된 것 같다. 다시 말해 작가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PRS 시리즈의 모든 사진들이 뒷모습, 혹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옆모습의 남자들이 양복 혹은 정장을 입고 있다. 의도된 것인가? 

=보는 그대로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얼굴의 주인공이 누구든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들 중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뒷모습은 애잔함을 동반한다. 그 남자들은 다소 무모한 행동-헛짓을 하고 있다. 이상을 꿈꾼다고 봐도 좋다.

 

50번 넘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얻어낸 사진 한 장

 

-모델은 어떻게 구하는가? (사실 이 질문을 했던 이유는 사진 속의 남자들이 다들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참 어렵다. 친구들을 동원하고 아는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인다. 사돈의 팔촌까지……. 점프에 나오는 남자는 나 본인이다. 브라질에 머물고 있을 때 평소 생각하고 있던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카메라를 세팅해서 세워두고 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50번 넘게 점프했던 것 같다. 그 중 가장 의도에 가까운 컷이 나온 것이다.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봐주길 원하는가?

=내 사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히 은유가 숨어있다거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다. 쉽다. 사진 속에서 관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이라면 내 사진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상택 작가의 작업노트 보러가기

 

오상택 작가는?

시카고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예술대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Necessaries》(주영화랑, 2005),《Process》(인사아트센터, 2007),《Sports》(브레인팩토리, 2008) 등이 있으며,《Spotlight 30 Women》(Paper Tainer Museum, 2006),《창작해부학》(경기도미술관, 2008),《한국현대사진 60년》(국립현대미술관, 2008),《핑야오국제사진페스티벌》(중국 핑야오, 2008),《Fleeting》(서울대미술관, 2009) 등에 출품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PRS2-003 PADDING copy.jpg
오상택. PRS2-003 PADDING. edition 15. 78×103cm. Photographic Color Print. 2008

 
PRS2-005 WIND copy.jpg
오상택_PRS2-005 WIND

 
PRS-003 MARCH copy.jpg
오상택. PRS-003 MARCH. edition 13. 160×252cm. Photographic Color Print. 2006

 
PRS-010 FIRE WORK copy.jpg
오상택_PRS-010 FIRE

 
PRS-012 ISLAND copy.jpg
오상택_PRS-012 ISLAND 

PRS-017 VOYAGE copy.jpg

 오상택. PRS-017 VOYAGE. edition 13. 160×198cm. Photographic Color Print. 2007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노동과 휴식에서 ‘삶’ 발견하는 성자 ‘농부’

  • 곽윤섭
  • | 2009.09.07

이 시대 진정한 성자(聖者)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갤러리M은 전민조의 ‘농부의 얼굴을 찾아서’ 초대전을 개최합니다. 그는 비 오는 날 전라도...

취재

업무로 시작한 사진이 이젠 예술의 문턱에

  • 곽윤섭
  • | 2009.09.07

[한국건설기술연구원 ‘KICT사진가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사진동아리 ‘KICT사진가족(이하 사진가족)’은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 업무에서 쌓인 스트...

취재

출사도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 곽윤섭
  • | 2009.09.07

[동아리 탐방] Urbanphoto(감성사진) Urbanphoto(감성사진·www.urbanphoto.co.kr)는 인터넷 싸이월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온라인 사진동아리다. 200...

사진책

서울 달동네 흑백 사진 속 ‘영희언니 철수오빠’ [4]

  • 곽윤섭
  • | 2009.09.07

오른쪽의 책 제목을 누르면 도서구매로 안내됩니다. ---------> 골목안 풍경 30년 김기찬 사진집 눈빛 /200쪽 / 38,000원 지난 30여 년간 골목을 누...

취재

병동 곳곳 찰칵찰칵 ‘명랑 파파라치’

  • 곽윤섭
  • | 2009.09.07

낙산공원으로 가는 언덕길에 회원들이 동네의 이모저모를 담고 있다. [동아리 탐방] 녹색병원 ‘아이리스’ 매달 조회 때 슬라이드쇼…“예쁜...

강의실

[미션 강의실] <12> 달라붙은 평면에 스피커 달아 볼륨을 높여라

  • 곽윤섭
  • | 2009.09.03

소리를 잡아라 눈으론 멋진데 찍고보면 밍밍한 건 ‘무감각’ 탓 울림은 무궁무진…셔터속도 낮추는 것도 열쇠 3차원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앞...

취재

작가 14명의 기발한 착상

  • 곽윤섭
  • | 2009.09.02

한미사진미술관 ‘요술·이미지전’ 사진집을 볼 땐 글로 된 책보다 훨씬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보라고 권하고 있다. 글이 아닌 시각물은 눈에 ...

강의실

[미션 강의실] <11> 사진에 눈 코 귀 달아 감각을 섞어라

  • 곽윤섭
  • | 2009.08.28

공감각 만들기 교향곡을 혀로 맛보고 하늘에 귀를 기울인다면? 풍경에 코 대고 손짓에서 5천 개 말을 읽는다면? 공감각(합감, synesthesia)이란 한...

취재

밀림의 제왕도 뙤약볕은 싫어 

  • 곽윤섭
  • | 2009.08.21

[동물들의 여름표정]<4> 사자 원로들은 원두막에, 아랫것들은 맨바닥에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인도 북서부에 분포. 주로 사는 곳은 초원지대. 수...

강의실

세상은 색이다

  • 곽윤섭
  • | 2009.08.21

[5~9강 클리닉]무궁무진한 상징과 이야기의 세계 6강부터 9강까지는 색을 찾는 미션을 진행했습니다. 1강 선, 2강 면, 3강 사람, 4강 상징 편에 ...

강의실

[미션 강의실] &lt;9&gt; 보라, 남과 여· 감각과 정신 혼융 ‘마법의 색’

  • 곽윤섭
  • | 2009.08.14

보라색과 회색 자연에서 가장 드물고 바래지않아 ‘권력’ 흔히 널려있는 회색, 중립이면서도 엉큼 색을 찾는 미션을 위해 강의를 진행하면서 먼저 ...

취재

짜릿한 순간을 위한 오랜 기다림

  • 곽윤섭
  • | 2009.08.12

오상택. PRS2-001 JUMP. edition 45. 100×130cm. Photographic Color Print. 2008 ‘슈팅 이미지’전 ③ 오상택 사진 한 장 찍는 데 걸리...

취재

재개발 현장의 파노라마들

  • 곽윤섭
  • | 2009.08.11

강홍구-계단 2009, digital photo, print,220x90 슈팅 이미지전②-강홍구의 ‘은평뉴타운 연작’ 파노라마카메라라는 것이 있다. 렌즈가 좌우로 회전...

취재

호랑이 입은 얼마나 클까

  • 곽윤섭
  • | 2009.08.07

동물들의 여름표정<3> 동물원에서 만나는 호랑이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낮잠을 자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가 어...

취재

사탕으로 만든 화려한 색감

  • 곽윤섭
  • | 2009.08.06

[전시회 현장] 포토코리아 ‘슈팅, 이미지’전 ① 구성연의 ‘사탕 시리즈’ ▲ 사탕시리즈, 2009년 ⓒ구성연 2000년대 이후 변화무쌍한 형태의 ...

강의실

[미션 강의실] &lt;8&gt;가장 밝으면서도 불안정해 상징 ‘극과 극’

  • 곽윤섭
  • | 2009.08.06

  두얼굴의 노랑    다른 색과 섞이면 둔하고  조금만 더러움을 타도 못 견딘다  아이들의 천진함이자 세월의 땟자국  경고로도 사랑의 징...

취재

끝없는 밀밭... 소나기 끝 무지개 꿈

  • 곽윤섭
  • | 2009.08.06

홋카이도의 배꼽 후라노, 비에이 여행기 온 사방에서 고수의 셔터본능을 자극한다. ▲ 밀밭위로 덩실 무지개가 떠올랐다. 서울이 곧 한국이 아니...

취재

꽃보다 기린

  • 곽윤섭
  • | 2009.08.04

동물들의 여름 표정 <2> 그물무늬기린 초원의 저목지대에 주로 삽니다. 수명은 20~30년 정도. 몸무게는 500kg~ 1930kg, 어깨 높이 360cm. 포유동물 중...

취재

“아~ 시원하다” 배영하는 북극곰

  • 곽윤섭
  • | 2009.07.30

동물들의 여름 표정 <1> 장마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는지 평일인데도 고속도로는 막히고 시내는 차량이 별로...

강의실

[미션강의실] (7) 인간이 가장 먼저 이름을 붙여준 색

  • 곽윤섭
  • | 2009.07.30

‘열정의 색’ 빨강 선호도에선 밀리지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색 사랑이나 증오 같은 인간의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어서일까? 불온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