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뒤바뀐 ‘20세기 사진의 거장전’

곽윤섭 2009. 10. 15
조회수 12039 추천수 0
거장은 잘 보이지않고 기획자만 불쑥불쑥
작품-관객 잇는 다리 역할 넘어 흐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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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 사진의 거장전’은 확실히 볼 만한 전시다. 케르테츠, 만 레이, 브랏사이 등의 작품 180여 점이 대거 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히 매력적이다. 이들이 동시대에 파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서로의 시각을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둘러본 전시장의 구성은 혼란스러웠고, 전시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가들의 작품을 기획자가 자의적으로 ‘헤쳐 모여’시켰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케르테츠와 브랏사이가 생전에 서로 교류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주인공은 누구인가’ ‘좋은 형태를 찾아서’등의 테마를 공유하면서 작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시장은 7개의 주제에 따라 7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르테츠와 로베르 두아노가 기획자가 정해준 방안에서 서로 어색하게 조우하고 있다. 이 대목은 이미 세상을 뜬 사진가들이 아닌 전시기획자의 책임이다.
 
사진가 휩커와 아트디렉터 휩커의 이율배반적 회고
 
로저페리 copy.jpg대부분의 사진가들은 2차 공정과정에서 작품의 본질이 훼손되었다는 호소를 한다. 2차 공정과정은 신문, 잡지, 책 등의 인쇄물 발행과 온라인, 오프라인의 전시를 통한 독자, 혹은 관객과의 만남을 위한 작업을 뜻한다. 매체와 책의 경우 편집자가 이 역할을 하고, 전시의 경우엔 기획자가 그 자리에 있다. 독일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슈테른>에서 오랫동안 사진기자 일을 했으며 나중엔 그 잡지의 사진담당 편집장을 역임했던 매그넘 사진가 토마스 횝커는 사진가와 편집자 간의 역학구조에 대해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인 회고를 남겼다.
 
“사진의 스토리가 완성단계에 접어들 때면 문자 그대로 내 사진을 늘 망쳐놓곤 하는 훼방꾼인 아트디렉터가 끼어든다. 가장 좋은 아트 디렉터는 사진가의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저널리스트적 관점에서 일을 해야 하며 그들의 기호나 시각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 슈테른에선 사진가들도 레이아웃 단계에서 늘 의견을 낼 수 있었다. 아트디렉터들의 어깨너머로 작품을 보면서 토론을 할 순 있었으나, 최종단계에선 전설적인 편집장인 헨리 난넨이 결정을 내리곤 했다. 나는 결과물을 보면서 열 번에 여덟 번 정도는 늘 불만스러웠다. 너무 많은 요리사가 있었고, 너무 많은 관점이 있었다. 글을 쓴 기자는 사진이 지저분한 그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글을 설명해줄 장면이라면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한 장짜리가 아닌 여러 장의 스토리에서 편집이란 사진 선정부터 배치, 순서, 트리밍 등 모든 공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여 장의 사진을 아트디렉터, 혹은 편집자에게 넘기고 그 중 10여 장의 최종결과물이 지면에 실린다면 애초 사진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진가 횝커는 자기 사진이 지면에 올라갈 때 편집 당하는 것에 대해 늘 불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발짝 물러나,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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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횝커가 드디어 편집자(아트디렉터)가 되자 입장이 싹 변한다.
 
“어느 한 사진가의 작품이라 부르는 것은 완성된 레이아웃의 형태다. 스토리가 출판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외의 것은 모두 부차적이다. 당신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시작하는 흥분 곡선의 정점이 스토리의 완성이다. 레이아웃 과정은 날 매혹시켰다. 그래서 결국엔 나 자신이 아트디렉터가 되었고 편집자가 되었다. 나는 다른 사진가들이 찍어온 사진들을 레이아웃하는 작업을 즐겼다. 사진가는 제품의 구성요소들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며, 아직 완제품이라 할 수 없다. 아트디렉터는 사진가와 글쓴이와 상의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사람인 것이다. 상황이 역전되어 몇몇 사진가들은 분명히 나에게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시선을 느꼈다는 것을. 또한 레이아웃 공정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결론은 이렇다. 사진가가 현장에서 찍은 사진의 느낌은 최종 결과물에서 전해지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신문, 잡지, 책과 같은 인쇄물이 아닌 전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는다. 기획자가 사진의 선정, 배치, 순서 등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며, 최종 결과물에선 사진가의 냄새가 아닌 기획자의 냄새가 더 강하게 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주객이 전도된 경우다. 좋은 책, 좋은 전시가 되려면 편집자나 기획자는 작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본인은 한발짝 물러나,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 사진가와 사진가들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넘겨줘야 한다. 
 
사라 문 “원래 사진 더 좋았는데 달력 다소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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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진의 거장전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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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사진의 거장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1층에선 ‘패션사진의 거장 사라 문 한국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개막식을 앞두고 사라 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필자가 사진마을에 쓴 ‘명품 달력 피렐리를 바꾼 사라 문’ 기사를 언급하며, 피렐리 달력에 실린 사라 문의 사진이 아주 환상적이었다고 덕담을 건네자 그녀는 대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편집자 쪽에) 넘겼던 원래 사진은 더 좋았는데 만들어진 달력은 다소 실망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편집자에 대한 불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많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1세대라 불리는 강운구는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7년 만에 개인전 ‘저녁에’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강운구는 “사진 인화, 배치, 동선까지 직접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기획자를 구하지 못해서 그랬을 리는 없다. 자신의 사진에 대한 2차 공정과정마저 직접 챙기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아직 회화나 다른 분야의 예술에 비해 사진의 토양이 약하다. <한겨레>가 ‘매그넘 코리아전’을 성황리에 열던 시기를 전후해 대형 사진전시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리곤 있지만 사진가의 이름이나 작품까지 알려지진 않은 단계다. 그러므로 ‘20세기 사진의 거장전’은 대가들이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낯선 사진가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브레송의 파리와 윌리 호니스의 파리는 분명히 다르고, 로베르 두아노와 에두아르 부바의 파리도 크게 다르다.
 
매그넘 코리아전의 여러 의의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20명의 매그넘 사진가들이 한국을 서로 다르게 기록했고 그 관점, 방식의 차이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대목에서 매그넘 코리아전의 기획자도 자의적으로 여러 작가를 한 테마에 몰아넣어 개인적 특성을 씻어버리고 말았다. ‘20세기 사진의 거장전’도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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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 최고 작품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이번 전시장엔 케르테츠의 사진이 가장 많이 걸려 있다. 브레송이 “우리가 해온 것은 모두 다 케르테츠가 처음으로 했던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프레임 구성, 빛, 질감, 형태 등 사진의 기본적인 추구를 케르테츠는 모두 다 시도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케르테츠처럼 작품이 많은 이들은 작가별로 방을 만들어 모으고, 그의 이력과 더불어 특성에 대해 안내를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너무 친절한 것이 때론 독이 될 수가 있다.
 
‘20세기 사진의 거장전’에선 케르테츠가 보이지 않고 만 레이나 에두아르 부바도 보이질 않는다. 대신 기획자가 전시장 곳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흐름을 뚝 끊는다. 7개 주제로 나눈 전시장의 구획 칸막이마다 기획자가 쓴 것으로 짐작되는 글들이 있다. 각 주제를 설명하고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큰 글씨로 여러 곳에 붙여두어 사진 감상에 해가 되었다. 마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려는 것 같았다. 표어와 포스터가 난무하는 민방위교육장이나 운전면허적성검사장의 교육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같은 사진을 보고도 관객들은 각자 다르게 감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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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여 점의 사진들 중엔 그렇게 어려운 것도 별로 없다. 당시엔 첨단적인 기법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시장에 등장한 사진들은 거리에서의 일상을 주로 담았기 때문에 시대만 다를 뿐 현대의 사진가들도 즐겨 찍는 대상들이다. 차분하게 관람하게 내버려뒀으면 좋았겠다.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다가 출구에서 입구 쪽을 다시 봤는데 작가들의 얼굴사진이 아닌 전시기획자의 얼굴사진이 배너에 걸려 있었다. 누구를 위한 전시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하루였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필자의 개인적 느낌일 뿐, 이번 전시가 최고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엔 틀림없다. 전시는 10월29일까지 열린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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