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찍은 여성으로 명품달력에 새역사

곽윤섭 2009. 09. 15
조회수 68534 추천수 9
예술의전당 ‘사라 문 사진전’
‘누드+섹시’ 넘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작품 선봬
‘톱모델+작가에 한정판’ 피렐리 명성 업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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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4월 달력에 실린 사라 문의 사진. 피렐리


피렐리 달력은 세계 5위(매출액 기준)의 타이어 업체인 피렐리(Pirelli)가 1964년 처음 제작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 세계의 선별된 VIP 고객과 관계자, 유명인사들에게만 한정 배포하고 있다. 연간 3만 부 가량을 제작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엔 약 500부만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어회사인데 타이어보다 더 유명할 정도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수집가들에게도 인기있는 품목으로 떠오른 피렐리 달력은 세계 최고의 명품 달력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피렐리타이어보다 피렐리 달력이 더 유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지난 40여 년간 피렐리 달력에 등장한 모델은 모두 당대 최고의 모델이나 배우. 제니퍼 로페즈, 시에나 밀러, 나오미 캠벨, 지젤 번천, 케이트 모스, 신디 크로포드, 밀라 요보비치, 소피아 로렌, 페넬로페 크루즈, 힐러리 스웽크, 브리트니 머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하다. 피렐리 달력 제작에 참가한 사진가들의 면면은 모델의 명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고의 패션·상업사진가만이 피렐리 달력을 위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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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2월 달력. 피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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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9월 달력. 피렐리


첫해인 1964년 달력은 비틀즈가 가장 좋아했던 사진가였으며 비틀즈의 앨범사진 촬영을 담당했던 로버트 프리드먼이 맡았고 2009년 달력은 아프리카 사진으로 유명한 피터 비어드가 맡았다. 그 사이의 주요작가를 보면 이네즈 반 람즈워드, 버트 스턴, 애니 레보비츠, 리처드 아베돈 등으로 사진가 자체가 스타급이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2010년 달력은 테리 리처드슨이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모델에서 사진가와 영화감독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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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12월 달력에 실린 사라 문의 사진. 피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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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6월 달력에 실린 사라 문의 사진. 피렐리


자동차 타이어 브랜드인 피렐리 달력의 내용은 주고객층인 남성들을 겨냥해 여성의 아름다움을 테마로 제작했으며 예술적인 누드를 포함해 섹시한 사진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1972년은 획기적인 변화의 해였다. 그때까지 피렐리 달력이 쌓아놓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특별한 사진들을 창조해내야 하는 문제는 늘 골칫거리였다. 달력제작 총책임자인 예술감독 데렉 포사이스는 거리마다 넘쳐나는 저속한 이미지와 포르노 같은 사진들로부터 피렐리 달력만의 차별성을 두고 싶어했다. 대중들도 벗은 몸을 클로즈업한 사진에서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뭔가 새로우면서도 순수하게 여성적인 것을 원했다.
 
그래서 내린 모험적인 결단이 남성사진가들이 찍던 관행을 깨고 최초로 여성사진가 사라 문에게 피렐리 달력을 맡긴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인상파 사진가로 알려진 사라 문은 입자가 거친 35밀리 카메라로 부드러운 확산광과 환상적인 배경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문은 인생경력을 카메라 렌즈의 반대쪽에서 시작한 인물. 그녀는 패션모델이었다. 그러나 모델 일에 지쳐있던 문은 어느샌가 사진가와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그녀 스스로는 사진과 회화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지만 문의 사진은 그림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나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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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달력-작가 리처드 아베돈. 피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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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달력-작가 애니 레보비츠. 피렐리


낱장 1장씩 떼내 액자 넣어 고가에 파는 얌체꾼도

 
사진촬영 장소로 정해진 파리는 사라 문이 열렬하게 사랑하는 도시. 파리의 빌라 레 티이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게쉬타포의 본부가 있었으며 그 후 버려져 황량하게 된 곳이었다. 이곳을 촬영지로 이용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했는데 모든 일을 문이 직접 했다. 그 결과 촬영장은 지구상의 땅이 아닌 환상적인 분위기가 났다. 1972년의 테마는 ‘여성’이었는데 에로틱한 메시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여성성을 담아야 했다.
 
사라 문은 모델을 직접 선택했다. 믹 린드버그, 수잔 몬커, 보니 파이퍼, 잉거 해머 등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담한 몸집이었으며 풍만한 관능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라는 그 모델들과 어울려 끈기 있고 세심하게 배려해가며 작업했다. 덕분에 사진가와 모델 사이에 서로 우정을 키우면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아름답지만 결코 섹시할 필요가 없는 진정한 이미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 바람에 일부 남성들로부터 “달력이 레즈비언 취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언론은 문이 제작한 달력을 좋아했고 1972년 판은 대성공이었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사라 문이 촬영한 사진이 실린 달력 낱장을 한 장씩 액자에 넣어 1백 파운드씩 받고 거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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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전당에 걸릴 사라 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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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전당에 걸릴 사라 문의 작품.


피렐리 측에선 아직도 사라 문의 1972년도 판을 역대 달력 중 가장 아름다운 작업의 하나로 손꼽고 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 문은 작품 속에서 다양한 시각을 추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환상적인 사라 문의 작품세계를 9월25일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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