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14> 코로 누르고 혀끝으로 찍어 냄새·맛 찰칵

곽윤섭 2009. 09. 17
조회수 11857 추천수 0
후각과 미각
빛과 색 따라 꽃도 음식도 커피도 향 제각각
향수병엔 희미한 옛사랑 그림자가 어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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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전체를 담는 것이 아닙니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 사진을 찍지만 막상 모니터에 옮겨놓거나 인화한 상태로 만나게 되면 실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장에서 눈으로 볼 땐 좌우상하의 제한 없이 넓게 펼쳐진 그대로를 볼 수 있었지만 뷰파인더에선 여지없이 잘릴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풍경을 찍을 때는 습관처럼 뒤로 물러서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광각렌즈로도 시각을 어느 정도 넓힐 수 있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뒤로 물러서거나 광각렌즈로 화각을 확장하면 사진에 담기는 알맹이의 크기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초보사진가들의 전형적인 오류 중 하나입니다. 로버트 카파를 비롯한 수많은 사진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앞으로 다가설수록 사진이 좋아진다”는 이야길 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설수록 사진은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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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카메라를 든 사람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셔터를 눌러서 찍는 것입니다. 인간의 5가지 감각 가운데 시각은 사진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선 보이는 것만 찍는다는 것은 시각의 기본입니다. 다음으론 넓게 펼쳐진 세상에서 특히 강조할 만한 부분을 발견하고 필요없는 것은 약화시키거나 제외하는 것도 눈의 고유한 역할이며 좌우상하의 프레임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끊어서 담을지를 판단하는 것도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청각(‘소리를 잡아라’)과 촉각(‘손맛을 찍어라’)에 이어 오늘은 5감 중 나머지 두 가지인 후각과 미각을 살리는 사진을 말씀드립니다. 후각은 어떤 물질에서 공기 중으로 나온 분자가 콧속의 후세포를 자극하여 감지하게 되는 감각입니다. 미각은 혀의 입속에 든 맛을 담당하는 세포인 미뢰가 감각을 느끼는 것입니다. 청각, 촉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진에서 직접 맛이나 향기를 느끼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부의 공감각능력자가 아닌 보통사람들은 사진에 찍힌 내용으로부터 맛과 향기를 유추하게 됩니다.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뜰 안에 가득히 담겨낸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이효석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 중에서)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수필입니다. 책에 적힌 이 글을 눈으로만 조용히 읽는 것과 입으로 소리 내 읽거나 혹은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것, 텔레비전을 통해 낙엽 태우는 광경도 보며 동시에 수필 낭송을 듣는 경우를 각각 비교해보면 재밌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상을 보면서 낭송을 들을 땐 쉽게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상상력이 제한됩니다. 가장 강력한 시각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낙엽, 불꽃과 연기 이상의 것을 떠올리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라디오로 듣거나 소리 내 글을 읽을 땐 한결 낫습니다. 어떤 나무의 낙엽일지, 연기는 어떤 모양일지, 그리고 커피의 냄새와 잘 익은 개암 냄새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기억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며 풍부한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리게 됩니다. 반면에 글을 눈으로 읽을 때엔 감성이 가장 활발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눈으로  읽은 특정 어휘가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대상으로 전환되면서 나무와 낙엽과 불과 연기의 색, 불이 타오르는 소리, 낙엽 타는 냄새와 커피의 냄새와 맛까지 마음속에서 창조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살아오면서 갖가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겪은 색, 소리, 냄새, 맛으로 제한되긴 하겠지만 책을 읽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기 곁들인 향, 사람이 있는 꽃밭이 더 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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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체적으로 맛과 향기를 사진에 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궁극적으로 사진은 빛에 의존하므로 맛이나 향기가 모두 빛과 색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절에선 향 냄새가 납니다. 그냥 향보단 연기가 피어오르는 향 사진에서 냄새를 유추하기가 더 쉬울 것이며 연기의 모양이 풍부하고 맞은편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는 경우가 더 짙은 향냄새가 날 것입니다. 이제 국화의 계절 가을입니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국화를 보면서 향기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꽃만 찍어도 좋겠지만 꽃 앞에 서서 향기를 맡는 사람과 같이 프레임에 담으면 향기가 더 쉽게 전해질 것입니다. 빵집에선 갓 구운 빵을 보면서 식욕을 자극하는 구수한 빵 냄새가 납니다. 학생들이라면 하굣길에서 만나는 떡복이, 직장인이라면 퇴근길에 만나는 순대, 족발의 유혹이 강하게 발을 붙듭니다. 현실에서 찾기 힘든 짙은 빨강, 에메랄드색, 황금색의 향수병을 보면 농염하고 고혹적인 여인의 냄새가 떠오르며 날이 설 정도로 깨끗하게 면도가 된 남성의 턱에선 시원한 스킨의 냄새가 떠오를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 도시의 골목에선 간단히 형용할 수 없는 특유한 냄새가 납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겠지만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보고 들으면서 막걸리 한잔과 파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닷가에선 짠 내와 짠 맛이 떠오릅니다. 어시장의 좌판에서 냄새를 찾는 것은 더 쉽습니다. 물을 튀기며 펄떡거리는 생선, 도마 위에서 솜씨 있게 내장을 처리하여 살을 발라내는 시장상인들을 보면 비릿내와 동시에 고소하고 신선한 회의 맛이 상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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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미션ㅣ향기나는 사진을 찍어라
 
공감각 마지막 편입니다. 사진 속에 맛과 향기를 담아봅시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을 떠올릴 수 있는 음식을 적절한 빛과 함께 프레임에 담아봅시다. 여러 가지 화려하거나 소박한 꽃에서 가을의 향기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커피나 은은한 조명 아래 녹차를 담은 찻잔을 찍은 사진은 향기와 함께 생활의 여유까지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간: 2009년 9월14일부터 9월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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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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