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보행권, 전방에 지뢰밭!

사진마을 2016. 0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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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가 어때서 <8> 베테랑 교통안전교실

kys001.jpg » 부천시원미노인복지관에서 ‘베테랑 교통안전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이 21일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부천역 로데오거리’ 일대에서 보행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직접 찾아보고 있다.  
 


 인도 광고판, 푹 꺼진 보도블록…
 툭하면 걸려 넘어지기 일쑤
 
 대부분 집 근처 잘 아는 곳에서 사고
 보행중 사망자 중 65살 이상이 절반
 OECD 회원국 평균 5배로 최고
 
 직접 확인해 위험지역 빨간 스티커
 시니어 안전지도 만들고
 ‘나만의 안전수칙’ 적어 다짐도


 

“내가 작년 가을에 저기 길 건너 슈퍼 앞에서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졌잖아.” ‘장미’모둠의  이응남씨는 정색을 했다. 다른 교육생들도 입을 모아 성토했다. “인도를 막아두었으니 여기를 지날 때는 사람들이 차도로 내몰리는 거야. 여기는 단속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 이거 오래 된 문제야.” 복지관으로 돌아오기 직전 주택가 이면도로와 인도에 걸쳐 집단 주차된 차량들이 노인 보행에 위험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스스로의 보행 안전을 확보하려고 거리로 나섰다. 부천시원미노인복지관에서 ‘베테랑 교통안전교육’을 받고 있는 노인 교육생 22명은 21일 두 개의 모둠으로 복지관에서 부천역까지의 거리를 걸으며 보행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노인들의 시선에서  본 거리는 마치 지뢰밭 같았다. 이날 이들이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부천역 로데오거리’ 일대에서 찾아낸 보행위험 요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인도에 세워진 광고판, 푹 꺼져서 빗물이 고인 보도블록,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 튀어나온 곳, 버려진 쓰레기가 방치되어 길을 막고 있는 곳…. 일반인의 시선으로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노인들에겐 안전 보행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베테랑 교통안전 교실’은 현대자동차그룹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하고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관하는 사업이다.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고령자의 안전한 보행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생활에서 습관으로 정착되는 것에 초점을 두어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전국 20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2015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살 이상 노인의 비율은 13%를 넘었다. 이들은 보행 사고에 노출돼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동안 한국에서 보행중 사망한 사망자수는 1982명이며 이중 65살 이상이 951명으로 47.3%를 차지했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 10만 명당 보행중 사망자수는 같은 해 OECD 28개 회원국 중 가장 많은 15.5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3.2명에 비해 4.9배 많았다. 

 

kys002.jpg » 부천시원미노인복지관에서 ‘베테랑 교통안전교육’을 받고 있는 교육생들이 21일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부천역 로데오거리’ 일대에서 보행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직접 찾아보고 있다. kys004.jpg » 21일 부천시원미노인복지관 ‘베테랑 교통안전교육’을 받는 노인들이 워크북을 보면서 도로교통표지판을 익히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주로  노인들의 일상생활 공간이 안전한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보행 중에 교통사고로 숨진 노인 3명 가운데 2명 이상이 집 근처에서 사고를 당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015년 서울지역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총 138명 가운데 75%에 해당하는 103명이 무단횡단 등 보행 중 사고로 사망했고 이 가운데 70%가 주거지에서 반경 1km 이내의 장소였다고 올해 2월에 발표했다. 한국노년학회의 학회지에 실린 경기연구원 지우석 휴먼교통실장의 논문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원인 분석 및 대책’(2010년)에 따르면 노인 보행사고는 일본의 경우 65%의 사상자가 집으로부터 500m 이내에서, 영국의 경우도 73%의 사고가 집에서 1km 이내에서 발생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노인들이 집 근처의 교통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규태 박사 등의 공동논문 ‘고령보행자의 도로횡단 보행안정성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서 감각과 지각 과정의 저하로 노화현상을 보인다. 이에 따라 뒤에서 오는 차의 접근에 주의를 하지 않거나 경음기를 울려도 주의하지 않고 도로 폭이 넓어지면 도로중앙부로 걷는 경향이 있고, 상점이나 포스터를 보면서 걷거나 정면에서 오는 자전거를 피할 수 있는 여력을 갖지 못하고 소리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연구는 노인들이 자기를 중심으로 세계를 구성하고 자신의 안전을 타인에게 의탁하고 보행한다고 밝혔다.
 ‘베테랑 교통안전 교육’은 총 4번의 수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체능력 테스트, 보행시 위험 및 사고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기, 각자의 보행 경로에 있는 교통표지판 확인하기, 각자의 집 주변 상황의 안전에 대해 확인하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21일은 세 번째 수업으로 복지관 주변을 교육생들이 직접 걸으면서 위험 지역을 찾아내고 찾아낸 곳을 지도에 빨간 스티커로 표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네 번째 수업 때 ‘우리 동네 시니어 안전지도’로 완성해 복지관에 게시될 예정이다.
 이날 수업 종료에 앞서 교육생들은 각자 ‘안전보행교육 워크북’에 ‘보행안전을 위한 나만의 안전수칙’을 적으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3초 후에 건너기 시작하겠다”
 “나는 밤에 외출할 때 밝은 색 옷을 입겠다.”
 교육을 마친 이원실(75)씨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좋은 교훈을 얻었다.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겠다”면서 밝게 웃었다. 부천에서 40년째 살고 있다는 노시종(74)씨는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가게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다 아는 내용이긴 한데 안 지키는 것이 문제였다. 오늘 배운 것을 널리 전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영은(74)씨는 “유치원생들은 잘 지키는데 노인들은 잘 안 지킨다. 앞으로 변화를 불러와서 법규를 잘 지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보행안전을 위해서는 교통법규 준수 등 노인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더 시급하다. 노인보호구역이 아주 부족하다.  <브릿지경제>는 2월 보도에서 경찰청 관계자의 인터뷰로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의 약 5% 수준으로 총 670곳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지우석 휴먼교통실장의 연구 ‘노인교통안전 개선방안’에는 뉴욕 북맨하탄지역의 ‘어르신을 위한 안전한 보행로(세이프 루트 포 시니어)’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다. 뉴욕주의 보건부 기금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고령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보행로를 새로 설계했다. 북맨하탄 지역의 많은 노인들과 인터뷰해 불편한 점과 요구사항, 문제점을 찾아냈고 노인 보행자의 이동과정을 관찰해 안전한 거리를 위한 디자인의 표준을 다음과 같이 정립했다.
 -거리는 가능한 편평해야 하며, 배수를 위한 최소한의 굴곡만 허용해야 한다.
 -안전지대는 가로수나 벤치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넓게 제공되어야 한다.
 -노인 회관 인근의 모든 버스정류장은 보호소와 벤치가 설치되어야 한다.
 -고령보행자는 횡단보도에서 회전차량의 방해 없이 안전한 횡단을 할 수 있도록 차량 신호의 첫 10초 동안 회전을 금지하여야 한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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