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어라

사진마을 2018.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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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정글을 소재로 그림을 여럿 그렸다. <꿈>(1910년 작)은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로 볼 때마다 그림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니 대단히 신비스럽다.  “이국에서 온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루소가 말했다. 사진의 발명 및 공표와 더불어 정교하게 그리는 경쟁에선 사진을 당할 수 없게 된 화가들이 (실제와) 다르게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인상파 탄생의 배경이다. 다르게 그리는 다양한 방법들이 다양한 인상파 화가들을 낳게 했다. 루소는 선명하지만 특이한 대비를 발생시키는 색을 촘촘하게 나열했고 정교하게 묘사했으나 비현실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동물과 식물이 구석구석 숨어 있어 한 눈엔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스멀스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림이니까 숨겨서 그리는 것이 가능한데 과연 사진에선 이게 될까? 강의를 하면서 “사진은 숨바꼭질이다”라는 표현을 만들었다. 숨바꼭질의 묘미는 꼭꼭 숨어서 술래가 찾기 힘들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숨바꼭질엔 불문율 같은 규칙이 있다. 숨는 사람들이 술래를 남겨두고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으면 이 놀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한눈에 다 드러나 버리면 감상할 맛이 없어진다. 어떻게든 오래오래 들여다보게 하여야 사진의 가치가 시시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장을 떠나버리면 안 된다. 술래의 가상적인 울타리 안에 머무르면서도 잘 잡히지 않아야 한다.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의 <오감도>중에서 제1호 시의 끝 부분이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30회를 목표로 연재가 시작되었으나 “너무 난해하다. 미친 놈의 잠꼬대” 등 열화와 같은 비난이 쏟아져 중간에 막을 내린 <오감도>의 마지막 제15호 시의 시작은 이렇다.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거울속의나는역시외출중이다.나는지금거울속의나를무서워하며덜고있다.거울속의나는어디가서나를어떻게하려는음모를하는중일까.
  
  “사진을 찍는다”라는 문장은 “다르게 바라본다”라는 문장으로 대체되어도 좋다.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중의 하나로 숨바꼭질을 추천한다. 꼭 숨겨 두되 사진 안에 있긴 있어야 한다.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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