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영화, 부분의 미학

사진마을 2017.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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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있는 수필 #14


최근에 개봉한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프랑스 관광청이 제작비를 전액 지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프랑스 여행을 충동질한다. 칸에서 출발한 남녀 주인공은 “여건이 허락한다면 최대한 둘러 가며 여행하라.”라는 누군가의 격언을 지키기라도 하듯 자동차로 하루 만에 갈 수도 있는 파리를 향해 쉬엄쉬엄 길을 떠난다. 칸, 엑상프로방스, 가르 수도교, 리옹, 베즐레이를 유람하며 영화 내내 프랑스 음식과 프랑스 풍경이 꼬박꼬박 관객을 자극한다.
 하나 더 눈여겨본 것은 여자주인공 ‘앤’역을 맡은 다이안 레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던 카메라다.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카메라 전면 오른쪽 위에 붙어있던 빨간 동그라미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 명품 카메라 브랜드인 라이카의 로고다. 시대의 눈으로 불렸던 사진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평생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라이카는 사진가들의 로망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라이카는 물론 필름카메라가 아니고 디지털카메라이며 렌즈를 교환하지 못하는 하이엔드급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빨간 동그라미다. 명품 가방처럼 그냥 들고만 다녀도 값어치를 하지만 이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선 수시로 촬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식도 찍고 와인 글라스도 찍고 풍경도 찍는다.
 다이안 레인이 카메라를 들어올리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명백한 PPL이라는 확신이 생겼는데 또 하나 묘한 점을 발견했다. 단순히 찍는 장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진교육까지 하고 있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전화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알렉 볼드윈과 무관하게 테라스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이안 레인이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 아래쪽을 향해 렌즈를 들이댄다. 경쾌한 셔터 소리가 나면 영화는 정지된 컷으로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본 파라솔과 의자다. 셔터 소리가 이어지고 잼이 살짝 묻어있는 빈 접시, 크루아상, 주스가 담긴 유리컵이 역시 정지된 화면으로 등장한다. 다이안 레인이 찍은 이 사진들의 공통점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그대로 실천한다는데 있다. 영화에서 다이안 레인의 프랑스 유람을 이끌어가는 사실상의 남자 주인공 자크 역을 맡은 아르노 비야르가 다이안 레인이 찍은 사진들을 쭉 되돌려 보다가 아예 대놓고 말한다. "특징만 잘 잡아냈다"라고. 작업 멘트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영화 속 디제시스(diegesis)적 시간은 칸에서 파리까지 도착하기까지 걸린 40시간이지만 영화의 상영시간은 90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영화 주인공과 함께 40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영화 역시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 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이 글은 경제월간지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7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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